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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습기와 그늘 _ 매혹당한 사람들, 소피아 코폴라

그냥_ 2022. 11.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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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똬리 틀고 돌아보는 뱀.

이름 모를 버섯의 군락.

습기. 그늘. 그리고 매혹이란 이름의 독.

 

 

 

 

 

 

 

 

소피아 코폴라 감독,

『매혹당한 사람들 :: The Beguiled입니다.

 

 

 

 

 

# 1.

 

1864년 전쟁으로 인해 모두가 떠난 인적 드문 마을. 심각한 다리 부상으로 죽음 직전 상태에 놓인 군인 '존'이 구조되고, 7명의 여자들만 살고 있는 비밀스러운 대저택에 머물게 된다. 유혹하는 여인 '미스 마사'부터 사로잡힌 처녀 '에드위나', 도발적인 10대 소녀 '알리시아'까지 매혹적인 손님의 등장은 그녀들의 숨겨진 욕망을 뒤흔들고, 살아남으려는 '존'의 위험한 선택은 모든 것을 어긋나게 만드는데...

 

# 2.

 

기본적으론 제목에서처럼 [유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잘생긴 남정네 하나를 두고 일곱 명의 여자들이 각자의 습하고 어두운 욕망을 투사하다 파멸에 이르는 서사죠.

 

다만 주고받는 사람들의 감정선이나 관계 변화에 대한 섬세한 탐구보다는, 억눌린 욕망의 밀도와 그 욕망이 배반되었을 때의 낙차를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작품에 훨씬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욕망을 표현하는 각기 다른 제스처라거나, 충족되기 직전의 환희를 상징하는 과시적인 드레스, 존을 '처분'하기로 결정한 순간의 일사불란한 의사 결정을 지나, 결말에 이르러 존의 주검을 지극히 여성적인 형태로 감싸 두는 장면의 위화감과, 다 씹어 먹고 남은 빈 껍질을 퉤 하고 뱉어내기라도 하는 듯한 차가운 뉘앙스는 작품의 정체성이 닿아있는 바를 분명히 하고 있죠.

 

 

 

 

 

 

# 3.

 

감독은 영화를 버섯이 자라는 음습한 숲으로 소개합니다. 자신이 펼쳐놓고자 하는 이야기를 '습하고 그늘진 곳, 그 안에서 소리 없이 자라는 무언가'로 규정하는 것이죠.

 

다각적 여성성은 그림자 속 다른 각도로 돌아선 모습으로, 억눌린 욕망은 불쾌한 습기로 확장되어 스크린을 지배합니다. 대조를 위해 존에게는 빛과 마른나무를 정돈하는 모습 따위의 건조하고 거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부여하고 있죠. 일곱 여자들이 가지고 있던 본연의 순수성을 하얀 천으로 상징한 후 피에 물들어가는 방식으로 욕망이 퍼져나가는 정서 변화를 시각화하고 있기도 하구요. 다쳤다가 회복된 후 잘려나가는 존의 다리는 남성기의 온건한 은유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겁니다.

 

인물들이 줄지어 다니는 장면들에선 긴 드레스 차림과 어우러져 미끄러지듯 지나는 것이 이들 전체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뱀 같아 보이기도 한데요. 뱀의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다면, 각 인물들이 존을 힐끔 거리는 건 자신의 방식으로 존을 포식하기 위해 혀를 낼름 거리고 있는 모습으로 상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식당에서든 교실에서든 마사를 중심으로 키 순서대로 둘러앉은 모습 등은 똬리를 틀고 있는 것만 같아 보이기도 하구요. 레이스 달린 커튼은 마치 뱀의 허물 같아 보이기도 하군요. 여하튼 뱀 역시 버섯과 마찬가지로 습기와 그늘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에 자연스럽게 기여합니다.

 

얇은 캐릭터성과 단조로운 서사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몰두하는 데 지장이 없었던 것은 설득력 있는 지배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각본이 좋다는 감각은 다소 희미할 지라도 나름의 연출적 묘에 힘입어 장르적 재미를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을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 4.

 

얼핏 얇은 캐릭터성이 단점이라 말씀드렸는데요. 그렇습니다. 인물들은 대단히 평이합니다.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납작하다 해도 무리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정서를 중심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스릴러 드라마에서 인물이 납작하다는 것은 분명 치명적이죠.

 

니콜 키드먼의 마사는 어린 학생들을 책임지는 여학교의 교장, 전형적인 권위주의 여장부입니다. 원칙적이고 배타적이고 강압적이죠. 이런 캐릭터는 보통 누적된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규율로 통제하는 방법론이라는 것이 녹록할 리 없으니까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은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압박합니다. 지쳐있지만 지쳐있다는 것을 드러낼 수 없는 처지 역시 압박감을 더욱 가중하죠.

 

커스틴 던스트의 에드위나는 학교의 선생님입니다. 아이들을 관리하는 책임과 교장으로부터의 통제를 동시에 받는 중간자적 인물이죠. 7명의 여자들 가운데 유일한 외지인이기도 한데요. 그렇기에 마음 속 깊이 권태를 느끼며 자유를 갈망하지만 실행할 용기는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구원해 줄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공주님을 전형적으로 따라갑니다. 그 외에 엘 패닝의 알리시아는 남자가 고픈 반항형 사춘기 소녀 캐릭터구요. 제인은 아빠의 손길이 그리운 어린아이, 그나마의 나머지 학생들은 제인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분배받은 보조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일련의 전형적 인물들이, 전형적으로 가지고 있을 법한 욕망을, 전형적인 남성상에 투사해, 기계적으로 배분하는 과정이 영화 볼륨의 2/3을 차지합니다. 마사는 자상하면서도 믿음직한 강건한 남편을, 에드위나는 리더쉽과 낭만을 겸비한 애인을, 알리시아는 성적으로 충족시켜줄 섹시한 남자가, 제인을 비롯한 아이들은 머리를 쓰다듬어줄 아빠를 욕망하는 식이죠. 파국에 치닫은 후 존의 캐릭터 변화 역시 여자들이 욕망하는 남성상의 대칭에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대입됩니다. 마사를 위한 술잔은 샹들리에를 부수는 총으로, 에드위나를 위한 키스는 추악한 배신으로, 알리시아를 위한 성기는 볼품없이 잘린 다리로, 제인을 위한 자상함은 윽박지르는 고성으로 치환됩니다. 상투적이죠.

 

 

 

 

 

 

# 5.

 

캐릭터의 성격을 파악한 관객은 자연스럽게 인물들이 다각적으로 변화하거나 충돌하는 것을 기대하기 마련일 텐데요. 그런 내용이 없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일방향적인 단조로운 서사 역시 큰 단점이라 말씀드린 이유죠. 다양한 목적의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모두가 같은 차에 올라 같은 방향으로 가면서 가벼운 새치기 정도를 위해 눈치싸움을 하는 식이라 설정이 가진 잠재력만큼의 긴장감을 발전시키지 못하지 않았나 싶달까요.

 

씬마다 턴을 교체하며 각기 다른 여자들이 존을 찾지만 모두 각자가 욕망하는 방식으로 존을 소유하겠다는 단일한 방향으로 내달릴 뿐입니다. 그러다 존의 다리가 잘려버리는 순간 일곱 명 모두가 존을 가지지 못하게 되며 욕망은 칼로 자른 듯 종료되어 버리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존의 다리가 잘려나간 순간 이야기는 사실상 종료된 것과 같기에 이후는 장르적 에너지로 출구를 향해 돌파할 수 밖에는 없었을 겁니다. 존이 샹들리에를 총으로 쏘고 난동을 피우다 독버섯 먹고 누에고치가 되는 과정에서의 폭발력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는 심심한 이유라 할 수 있겠죠.

 

다만 한가지 긍정적인 점을 찾자면 앞서 말씀드린 새치기의 리듬이 빠르고 유기적이라는 점입니다. 마치 일곱 면을 가진 주사위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만 같은 인상이랄까요. 어느 순간에 접어들면 다양한 여자들 사이에 인격 경계가 무뎌져 소학교라는 집단 전체가 하나의 존재처럼 느껴지는 감각이 생경합니다. 납작한 인물들이지만 이들이 무수히 교차하는 방식으로 집단 전체에는 입체성을 부여하는 경험은 독특하군요.

 

 

 

 

 

 

# 6.

 

얇은 캐릭터성과 단조로운 서사 덕에 혹은 탓에. 인물 해석은 좋게 말하면 배우가 자신의 해석을 펼쳐놓을 자유로운 공간으로 나쁘게 말하면 '네가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전가됩니다. 때문에 인물에 대한 매력을 넘어 영화 전반의 감상까지 배우의 연기에 상당 부분 종속되고 말죠.

 

니콜 키드먼은 강렬한 에너지를 담아 마사를 친절하고 편안하게 표현하지만 그 이상의 입체감을 확보하지는 못합니다. 반면 커스틴 던스트의 연기력에 힘입어 에드위나는 갈등하는 인간의 서정성과 질투심, 배신감과 애환 따위의 두께감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고 있죠. 알리시아는 엘 패닝에 의해 부분적인 퇴폐미를 얻을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제인을 비롯한 아이들은 군집한 무리 이상의 의미를 표현하지 못합니다.

 

너무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만 했나요? 콜린 패럴은 언제나의 영화들처럼 이번에도 리액션을 담당합니다. 존은 가증스러운 악당이 아니라 변모하는 욕망의 의인화처럼 비쳐야 하는 배역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최적의 캐스팅이라 할 법하고, 콜린 패럴은 자신의 맡은 바를 여지없이 수행합니다. 이 영화가 '소학교에 들이닥친 어느 용병의 이야기'가 아니라, '용병이라는 사건에 대응하는 소학교라는 집단의 반응'으로 중심을 단단히 잡을 수 있었던 것에는 콜린 패럴의 기여가 큽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 <매혹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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