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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Horror

번뇌와 번민에 빠진 건 누구? _ 제8일의 밤, 김태형 감독

그냥_ 2021. 7. 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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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애매하게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기보단 각 잡고 하나를 제대로 하는 편이 낫습니다. 특히나 데뷔작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영화는 크게 불교, 오컬트, 범죄 스릴러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요. 안타깝게도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작동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은 각각의 코드가 서로의 발목을 붙잡기 때문인 듯 보입니다.

 

 

 

 

 

 

 

 

'김태형' 감독,

제8일의 밤 :: The 8th Night입니다.

 

 

 

 

 

# 1.

 

시작과 동시에 부처님은 눈깔 뽑기 장인이 됩니다. 흔히 불교 하면 떠올릴법한 자비나 참선 등의 이미지와 배치된 다소 폭력적인 설정이지만, 뭐 그럴 수 있죠. 감독은 이 부분의 문제를 후반부 관념화를 통해 극복합니다. 빨간 눈깔은 번뇌하는 눈, 검은 눈깔은 번민하는 눈이라는 건데요. 확실히 이 토대에서라면 요괴 눈깔 분리 설화도 설득이 가능하죠.

 

'자비로운 부처님이 중생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번뇌와 번민이라는 감정의 요괴를 갈라 세상 끝에 떨어트려 놓으셨다.' 는 식의 종교 가치를 통속적 설화로 재구성한 것이라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숫자 8을 옆으로 돌리면 무한대(∞) 모양이 되듯 번뇌와 번민이 만나면 무한히 이어지는 현실의 지옥에 갇히게 된다는 둥의 사족들 역시 이런 맥락 하에서라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2.

 

이 같은 종교적 메시지 중심의 영화를 만들고자 한 거라면 당연히 서사 구조까지 모조리 관념화했어야 합니다. 공간과 주요 캐릭터와 아이템들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7개의 징검다리에는 번뇌와 번민이 만나는 과정을 상징하는 개념을 부여했어야 하죠. 가톨릭의 7대 죄악을 모티브로 만든 데이빗 핀처의 <세븐>처럼요.

 

각 희생자들이 불교적 교리에서 경고하는 번뇌와 번민의 유형을 명확히 대변하게 함으로써 희생자들 사이에 일정한 인과관계나 분류 체계를 읽을 수 있게 여지를 열어뒀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진수'가 붉은 눈과 검은 눈의 의미를 말할 때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감독은 이 희생자들을 그저 죽을 팔자였지만 죽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부실한 설정으로 취급합니다. 혈서 오지게 쓰는 오컬트 분위기에 집중했기 때문인 듯한데요. 그럼 오컬트는 잘 작동되느냐? 에이~ 설마요.

 

 

 

 

 

 

# 3.

 

오컬트는 원래 비현실적입니다. 따라서 오컬트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비현실성을 납득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타 감독들이 특정한 집이나 마을, 시대 따위의 닫힌 세계를 새로 제시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관객의 입장에서 감독이 임의 설정한 저 시공간 안은 오컬트의 법칙이 합의되어 있는 곳이라는 걸 동의해야 이야기든 나발이든 굴러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홍진의 <곡성>은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나 감독은 오프닝에서부터 짙은 안개로 둘러싸인 곡성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충실히 묘사합니다. 널브러진 굿판과 기묘한 분위기의 장독대, 미스터리한 무명이라는 인물 등으로 충분히 분위기를 쌓았기에 후반부 황정민이 훈도시 입고 엉덩이를 까도 위화감이 들지 않을 수 있었던 거죠.

 

 

 

 

 

 

# 4.

 

이 영화는 그 작업, 오컬트로 합의된 닫힌 공간을 연출하는 것을 대단히 등한시합니다. 냉정히 말해서 작품 전반의 분위기를 상징할 법한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공간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모든 인물들이 미친 듯이 싸돌아 다니기까지 하죠. 버스 타고 택시 타며 공간을 한번 한번 옮길 때마다, 정보 수집한답시고 피시방 가고 빵 산다고 편의점 가는 순간들 마다마다 오컬트의 매력은 뭉텅이로 떨어져 나갑니다. 세계관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다 보니 징검다리의 비밀을 쥐고 있는 처녀보살은 동네에서 부적 써주는 싼마이 무속인이 되구요. 오컬트의 초현실성이 작동하는 순간들 모두 대충 피로 그리면 무작위 초능력이 발동된다는 식의 슈퍼히어로물이 되고 말았죠.

 

불교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자니 정작 핵심 서사 속 메시지의 구축이 전무합니다. 오컬트의 장르 경험을 중심으로 영화를 보자니 지배적 배경 설정을 통한 분위기 조성이 전무합니다. 이 영화가 재미있으면 그게 이상한 거죠.

 

 

 

 

 

 

# 5.

 

작품의 방향을 확실히 규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설프게 들이미는 말초적 몸개그들이 안 그래도 빈곤한 영화의 질을 지하 끝으로 끌어내립니다. 폴리스라인 끌어안고 벌이는 쌩쑈나 발싸개 머리에 뒤집어쓰는 장면은 할 말을 잃게 만들죠. 아무도 낚이지 않을 아무도 웃지 않을 맥도널드 아이스크림 씬 따위는 영화 스스로를 해치는 자해라고 밖엔 달리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수습되지 않는 떡밥들과 개연성 붕괴 역시 여기저기 너무 많이 발견됩니다. '놈이 돌아왔다'는 둥의 능동적 표현이나 후반부 자기주장에 적극적인 빨간 눈깔의 설정에 따른다면 눈깔 스스로 의지가 있다는 뜻일 텐데요. 그럼 눈깔이 고고학자를 타락시키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있어야 자연스럽습니다만 없죠. '레드 문'이니 하는 것들도 모조리 휘발되구요. 야밤에 산에 올라 투시경 쓰고 토끼 잡는 미친놈은 뭐하는 인간인지 끝내 설명 안 되죠. 모텔에서 의미심장한 척 대화하는 바보들도 분위기를 위한 분위기 외엔 아무런 가치가 없구요. 처녀보살 찾는다는 진수 앞에 나타난 엑스트라가 반말 찍찍 내뱉으며 센 척한 것도 결국 회수되지 않습니다. 너 거기 가면 죽는다? 지가 뭔데요.

 

청석이 묵언 수행한 이유도 끝내 아무 설명이 없구요. 절간에 굿판 느낌의 촛불들이 뒤엉킨 디자인도 영 조잡하죠. 진수가 하정의 곁을 떠나 건설 노동자로 사는 계기도, 식당 잔반을 꼬박꼬박 받아오는 이유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구요. 눈깔 봉인 풀리자마자 하정을 귀신으로 만들어 진수 곁에 펫으로 붙인 것 역시 설명충으로 쓰기 위한 것 말고는 전혀 설명이 안 될뿐더러, 진수의 곁에 매달린 아카펠라 귀신들 역시 아무런 가치가 없긴 매한가지입니다.

 

 

 

 

 

 

# 6.

 

개중에서도 특히 조잡한 것은 산스크리트어 입니다.

진짜 이 놈의 외국어에는 아무런 맥락도 의도도 효과도 없거든요.

 

상식적으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야 자막의 도움을 받는다지만 작중 인물들은 산스크리트어를 못 알아듣지 않을까요? 중이라고 해서 무조건 필수 교과 제2 외국어로 <산스크리트어 일반회화>를 배우는 것도 아니거니와 진수는 애초에 승려 사칭한 땡중이죠. 이런 식이면 해당 씬들은 아무도 못 알아듣는 말을 그냥 방언처럼 주절거리는 것 밖엔 안 됩니다. 차라리 눈깔의 의지로 내뱉어지는 말은 모조리 산스크리트어로, 징검다리들의 말은 모조리 한국어로 하게 하는 일관성이라도 있던가.

 

설정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산스크리트어는 결국 오컬트와 호러 비스무리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작위적 장치 1에 불과합니다. 자막이 강제된다는 것은 관객 입장에서 분명 불필요한 비용임에도 불구하고 그 비용을 치른데 대한 리워드가 없다는 건 감독이 자기 작품에 취해 넣은 낭비적 설정으로 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죠.

 

 

 

 

 

 

# 7.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난감한데 그 위로 어설픈 범죄 스릴러가 올라탑니다. 경찰의 활용은 최악이죠.

 

호태는 경찰이라는 직위를 활용해 정보를 조사한 후 관객에게 전달하는, 영화를 굴리기 위한 배경과 전개를 썰로 푸는 설명충에 불과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징검다리들이 별 특색 없이 폼만 잡아야 했던 건 피해자들의 관계가 모호해야 호태가 진수에 앞서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구요. 한반도 방방곡곡 뛰어다니다 못해 슬램덩크식 북산 엔딩으로 귀결된 것 역시 호태와 진수 사이의 적당한 거리 유지를 위해서라 해야겠죠. 실제 영화 속 의미 있는 추격은 모조리 진수가 담당하고 있어 호태를 비롯한 경찰 전체를 뚝 떼어내도 전개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습니다. 호태를 억지로 욱여넣으려다 보니 결국 남는 건 싱싱한 동진을 눈깔 귀신에게 배달한 후 벽걸이 장식이 되는 것 밖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김유정이 연기한 애란의 정체 역시 장르적 재미를 위한 소소한 반전 요소를 하나 더하기 위함이었을 텐데요. 의도와 달리 안 그래도 산만한 영화가 더욱 산만해지는 결과만 낳을 뿐입니다. 빨간 눈깔도 깜짝 놀라 피부 봉합할 만큼 눈뽕 필터 겁나 때려 넣어 누가 보더라도 귀신이겠거니 싶게 만든 연출의 허술함은 둘째 치더라도 말이죠.

 

 

 

 

 

 

# 8.

 

반쪽짜리 종교물과, 반쪽짜리 오컬트와, 반의 반쪽짜리 범죄 스릴러가 누더기처럼 기워져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결국 그 결과물은 반의 반의 반쪽도 되지 못했네요. 전개는 범죄 스릴러로 적당히 비비고, 분위기는 오컬트 아이템에 기대고, 메시지는 불교 교리 중 몇몇 어휘에서 가져옵니다만 그렇게 뚝딱뚝딱 조립한다고 해서 여러 장르가 쉽게 비벼질 리가 없죠.

 

그 위로 앞서서도 말씀드린 싼마이 개그가 안 그래도 난감한 작품의 질을 떨어트립니다. 결말이 뻔히 보이는 어설픈 육아일기 메타가 전개에 대한 최소한의 호기심마저 거세합니다. 이야기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좋은 배우들이 안간힘을 쏟아 보지만 그마저 중국산 저렴이 CG가 관객 전두엽에 막타를 갈기며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네요. 어쩌면 번뇌라는 빨간 눈깔과 번민이라는 검은 눈깔에 제일 심각하게 갇혀 있었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감독이 아녔을까요. '김태형' 감독, <제8일의 밤>이었습니다.

 

# +9. 그래도 8일이라 다행입니다. 열흘이나 보름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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