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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유망주는 유망주 ⅰ _ 콜, 이충현 감독

그냥_ 2021. 1. 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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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연출이 능숙합니다. 포인트마다 연출자의 의도와 대화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감각이 전달됩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김은희 작가의 『시그널』이 연상되지 않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이 정도면 아이템의 구성과 테마의 차별점 역시 충분히 참신해 보입니다.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음악도 불필요한 이물감 없이 작품에 잘 녹아들고 있으며 배우의 연기 또한 대부분 탁월합니다.

 

반면, 서사는 아이템의 잠재력을 충분히 살려냈다 할 수 있을 만큼 미려하지는 못합니다. 편의적인 전개 역시 다수 발견됩니다. 적지 않은 아이템들이 작품과 따로 놀고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해줘야 할 결말은 다소 실망스러우며 쿠키 영상은 그 실망스러운 결말만큼도 못합니다. 감각은 살아 있지만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은 애써 외면하기도 하는. 전형적인 유망주의 그것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충현' 감독,

『콜 :: The Call』입니다.

 

 

 

 

 

# 1.

 

탁 트인 공간에서 시작한 영화는 좁은 산길을 지나 폐쇄적이고 음습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저택으로 이어집니다. '박신혜'가 연기한 주인공 '서연'은 어두운 집의 문을 열어젖히고 다시 기다란 복도를 지나 창고의 문을 열죠. 이 순차적이면서 일방향적인 공간 이동의 종착지는 낡은 전화기입니다.

 

감독은 이 전화기에 그동안 누적해 온 <음습한 분위기>를 부여함과 동시에, 전화기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 될 것임을 선언합니다. 비가역적인 듯한 다층적 레이어를 넘어오는 일련의 시퀀스는 관객을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 아이템과 자연스럽게 합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습니다.

 

 

 

 

 

 

# 2.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동선의 집. 숨겨진 비밀의 벽. 소름 돋게 만드는 날카로운 '못'의 이미지와, 금기된 비극을 엿보는 듯한 '구멍'의 상징성, 불안한 정서를 끌어안고 아래로 가라앉는 계단과, 한기가 스며드는 듯한 텅 빈 지하실 한가운데 놓인 의자와 인형 따위 등. 이해하기 편안한 오브제들을 다수 동원해 감독이 의도하는 이미지를 관객의 무의식에 적층 시킵니다. 큰 이물감이나 위화감이 들지 않도록 부드럽게 조직하는 솜씨 역시 썩 유려합니다.

 

 

 

 

 

 

# 3.

 

오프닝이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일방향적 공간>을 제시하고자 한 시퀀스라 한다면, 이어진 두 번째 파트는 주인공 '서연'이 홀로 고립되어 있음을 반복적으로 은유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전화를 주은 사람은 돌려주기를 거부합니다. 잘못 걸려온 듯한 전화 또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무례하게 끊깁니다. 이어 거실 한 복판에 홀로 선 '서연'을 하이 앵글로 담아낸 후, 인물을 중심으로 화면을 살짝 회전시킴으로써 '고립'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강화합니다. 잃어버린 디바이스의 위치는 끝내 검색되지 않고, 그 위로 병증을 가진 엄마의 뇌 사진이 겹쳐집니다. 엄마와의 갈등 역시, 앞서서와 마찬가지로 이 인물이 자의든 타의든 고립되어 있음을 설명하죠.

 

 

 

 

 

 

# 4.

 

<폐쇄적 공간>과, <무기력하게 고립된 상황>이라는 전제가 묘사되었다면, 이제 사건을 천천히 쌓아나가야 합니다. 연이어 등장하는 '영숙'이라는 인물의 존재와, '선희'라는 이름. 익숙한 이름의 슈퍼 앞에 앉은 여자의 모습과, 무당이라는 설정을 가진 '영숙'의 엄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불'과 '화상'의 이미지, 정신병원이라는 코드 등은 어두운 테마의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를 위해 동원될 아이템들을 다소곳이 나열하는 대목입니다. 흥미롭죠. 여기까지가 도입 20분입니다.

 

 

 

 

 

 

# 5.

 

잠시 숨을 돌릴 시간입니다. '서태지'나 '스마트폰' 따위에 대한 이야기나, 이사 온 어린 '서연'의 가족에 얽힌 이야기와 같은 긍정적 소재들은, '과거와 소통하고 수정할 수 있다'는 아이템이 가지는 본연의 매력을 활용해 쉬어가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인상적인 지점은, 그저 관객 경험 중심의 편의적 기능뿐 아니라 서사 안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씬을 알뜰하게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순간순간 '영숙'이 가진 본연의 기질에 대한 묘사를 곁들인다거나, 관객이 본격적인 서사가 진행되면서 감정을 공유하게 될 주인공 '서연'과 동화될 수 있도록 최대한 돕도록 하는 것들 말이죠.

 

 

 

 

 

 

# 6.

 

과거의 '영숙'이, 오프닝의 '서연'이 집으로 들어갔던 동선을 역방향으로 달려 나와 '서연'의 아빠를 구하러 오는 장면은, 순리를 거슬러 인과를 역행하는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을 물리적 동선을 활용해 표현하는 대목입니다. 이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관객의 심장박동을 고조시키는 음악이 효과적으로 곁들여집니다.

 

 

 

 

 

 

# 7.

 

여기까지의 전반부는 쉽게 흠을 찾기 힘들 정도로 안정적이고 높은 몰입감을 선사합니다만,

안타깝게도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면서부터 영화는 다소 힘을 잃는 듯한 인상입니다.

 

작품의 박력은 대부분 '이엘'이 연기한 '영숙'의 엄마 '선우자옥'의 오컬트풍 그로테스크 표현이나, 밝을 때와 광기에 빠질 때의 큰 낙차가 돋보이는 '영숙'의 연기, 과거가 수정됨으로 인해 현재가 뒤바뀌는 순간을 묘사하는 화려한 영상 연출과, '서연' 역의 '박신혜'가 쉴 새 없이 선보이는 오열 등, 파편적인 묘사가 담당할 뿐, 이야기의 특별함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막말로, <'영숙'이 거리낌 없이 사람을 줄줄이 살해하다가 '서연'의 엄마에게 역관광 당했다.>가 후반부 서사의 전부인데, 감독이 스스로 만든 쿠키 영상에 따르면 그마저도 기만에 불과하죠.

 

 

 

 

 

 

# 8.

 

슬쩍 넘어가기는 했습니다만, 도입부에서 '서연'이 자다 말고 야밤에 망치로 벽을 때려 부수는 상황은 다소 뜬금없는 전개라 할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숨겨진 문을 여는 것도 아니고, 야밤에 망치로 벽을 때려 부수는 건 영 무리수입니다만, <전개 상 필요하니 대충 모른 척 넘어가자>라는 식의 접근인 거죠. 이와 같은 특유의 단편적 효과를 위한 느슨한 전개는 본론부에서 수차례 반복적으로 발견됩니다.

 

 

 

 

 

 

# 9.

 

너무 자주 등장하는 듯한 '서태지'의 음악들은, '영숙'의 잔혹함 이면에 숨겨진 본질적 순수성을 대변하는 것이라 이해한다 하더라도. '영숙'의 엄마 '선우자옥'을 중심으로 한 <무속 코드>는 아무리 생각해도 서사와 조응하는 바 없이 겉돕니다. 기껏해야 영숙의 '차가운 광기'와 대조되는 '뜨거운 불'의 이미지를 담당하는 정도의 부차적 기능으로서만 역할할 뿐이죠.

 

 

 

 

 

 

# 10.

 

방금 전까지 같이 있던 사람이 사라짐으로 인해 생기는 위화감은 왜 '서연'만 느끼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서연'만큼은 이 위화감을 느낄 수 있어야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으니 적당히 그런 것으로 치자>라는 식 말고는 이해할 도리가 없죠.

 

되살아난 아빠가 '영숙'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을 눈 앞에서 보고 절망하던 '서연'이, 멘탈을 다잡고 하필 운 좋게도 인근에서 발생한 사고를 찾아 역관광을 설계하는 걸 <스마트폰 하나랑 달력 쪼가리 몇 장만 가지고 고작 1시간 만에> 해냈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집니다. <끝까지 간다>에서 '조진웅'이 탄 차를 '이선균'이 폭파시키는 모습이 연상되는 것만 같은 이 장면 또한 <영화 내내 시종일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던 '서연'이 한 번쯤은 반격하는 구도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목적하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넣은 듯한 인상이 너무 짙죠.

 

 

 

 

 

 

# 11.

 

알고 봤더니 엄마가 아니라 사실은 어린 '서연'이 집에 불을 질렀다는 설정 역시 서사적으로나 주제의식에서나 특별히 기능하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선악의 구분이 너무 획일적으로 지어지는 듯한 캐릭터 구성에 변주를 주기 위함>이 아녔을까 추측합니다만, 서사 안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인위적으로 악역을 만들었다가 인위적으로 책임을 역전시키는 구성이라, 작위적인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 수밖에 없죠.

 

쿠키 영상은 느슨한 전개의 백미라 할법합니다. 이 쿠키 영상의 반전 혹은 멀티 앤딩으로 인해 병렬적으로 진행되던 영화의 전개 구조가 통으로 날아가게 되기 때문이죠. 과거의 특정 시간대와 현재의 특정 시간대가 1대 1로 묶이며 다시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라는 기반 위에서 전개되는 작품이, 이와 같이 고작 쿠키 영상 따위를 위해 스스로의 기반을 날려버리는 건 사실상 영화가 자해하고 있는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겁니다.

 

 

 

 

 

 

# 12.

 

일련의 느슨한 전개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캐릭터는 단연 영화의 진-주인공이자 메인 빌런인 '영숙'입니다. 이미지와 분위기에 연출이 치중된 사이 설득력이 부재한 탓에 그녀는 그저 대단하다니까 대단한 악역 정도로 전락하고 맙니다. 정상적인 영양 공급도 힘들었을 왜소한 소녀가 온갖 장정들을 살해하는 대목들마다 그냥 적당히 살해했다고 넘어가는 걸 보며 몰입도가 뭉텅이로 떨어져 나갑니다.

 

희생자 캐릭터들이 아무런 기능 없이 제물로서 낭비되는 건 넘어간다 하더라도. 날카로운 무기가 아니라 소화기, 그것도 소화기를 뿌리는 것을 통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억지를 이해한다 허더라도. 백번 양보해 방심한 채 뒷모습을 보인 경찰 '민현'이나 '서연'의 아빠는 죽을만 하다는 걸 납득한다 하더라도. 농사를 업으로 하는 '성호'나 고물상이 살해되는 대목들의 설명까지 부재하기에 '영숙'에 대한 공포심 이전에 희생자들에 대한 비웃음이 먼저 생기게 됩니다. (소화기를 둔기로 쓰는 것이 아니라 쏘는 것으로 활용하는 점 또한, '불을 끈다'라는 이미지를 위해 개연성을 포기한, 느슨한 전개의 예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계속...)

 

 

유망주는 유망주 ⅱ _ 콜, 이충현 감독

# 13. 후반부 아쉬운 서사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구요. '영숙'을 거론한 김에 배우와 배역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요. 단편 영화 <몸값>으로 주목받았던 '이충현' 감독의 장편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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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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