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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다섯 번째 유령 ⅱ _ 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그냥_ 2019. 10.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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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유령 ⅰ _ 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 0. 삶의 이유를 지배하는 유령. 불안함과 두려움을 대변하는 유령. 금기에 대한 숨겨진 욕망을 끄집어내는 유령. 희망과 안식의 도피처로서의 유령. 그 한 가운데 표류하는 주인공의 내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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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모린'의 정체성은 다면적입니다. 영매가 주목될 수도 있었구요. 쌍둥이가 핵심이 될 수도 있었죠. 날아다니는 혼령에 대한 이야기를 심화할 수도 '루이스'에 엮인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굳이 영화의 제목으로 <퍼스널 쇼퍼>를 결정합니다. 타인을 위해 물건을 대신 구매해주는 사람. 그런 직업적 역할 관계를 내면화한 삶과 영혼에 대한 내제적 접근을 풀어 보겠노라 규정합니다. 돌이켜 보면 영화는 처음부터 반전을 고백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매니 혼령이니 살인이니 메신저니 하는 요소들 모두 그녀의 '퍼스널 쇼퍼'라는 정체성을 능가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덕분에 미스터리 스릴러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아래 진중한 심리분석적 드라마의 냄새를 짙게 풍기게 됩니다. 낡은 수납장 위에 쌓인 먼지처럼 파편적으로 분화되어 흩어져버린 자기 자신의 영혼을 찾아 헤매는 동안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한 인격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시종일관 스쿠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도, 공간이 미친 듯이 전환되는 것도, 와중에도 몇몇의 일적인 관계를 제외하면 어떠한 사람들과도 대화하지 않는 것도 이 이유에서 입니다. 일관되게 생기 없이 무기력한 주인공의 표정과, 시종일관 멈추지 않는 적극적인 발버둥 간의 극명한 대조는, 이 영화가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고유한 영역이라 할 수 있겠군요. 영화 속 '메신저'와 처음 나눈 대화 "who is this?", "have a guess", "no answer my question"는 어떤 면에선 영화의 서사를 가장 잘 압축하고 있는 대사라 할 수 있을 겁니다.

 

 

 

 

 

 

# 8.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길 잃고 방황하는 영화를 만들 수는 없죠. 그건 너무 지루하잖아요. 감독은 수개월이 넘도록 이어진 따분한 방황에 균열을 불어넣습니다. 평온한 호수 한가운데 큰 돌멩이 하나를 던지듯 모린의 위태로운 균형을 붕괴시키는 파괴, '잉고'입니다. 

 

키라와 육체적 관계로 맺어진 비밀 애인 잉고는, 모린에게 "키라의 코디네이터가 정말 최선이냐" 질문하며 등장합니다. 영화 내내 시종일관 모린을 위로하고 등을 두드리는 라라와 달리, 잉고는 그녀의 내면에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입니다. 모린의 마음에 균열의 단서를 밀어 넣은 그는 결국 키라를 살해합니다.

 

키라'라는 이름의, 모린 밖에 존재하던 '모린의 이유'가 살해됩니다. 떠밀리듯 자신의 문제를 목격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자, 그럼 그녀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요. 억압이 사라졌으니 욕망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일까요. 루이스와 이름 모를 유령에 대한 집착까지 함께 벗어던질 수 있을까요.

 

 

 

 

 

 

# 9.

 

키라는 죽었습니다. 루이스는 존재하지 않고, 메신저 속 익명의 인물은 누군지 알지 못하며, 게리와도 끝내 만나지 못하죠. 잔인하군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모린이 이해하는 결말'일 뿐입니다. 그녀보다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진 관객의 입장에선 영화가 다르게 보이죠.

 

결말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모린의 자기 성찰이 아닙니다. 관객들이 '루이스'의 혼령을 직접 목격했다는 것이죠. 하늘을 나는 잔과 모린의 뒤를 흐릿하게 지나가는 투명한 형상과, 혼자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와, 조용히 열렸다 닫히는 호텔의 문 말입니다. 네, 모린의 생각과 별개로 쌍둥이를 돌보는 루이스는 존재한다는 거죠마지막 모린의 질문에 대한 시그널은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모린이 외부로 자꾸만 돌리고 있던 자신의 불안정한 내면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구요, 다른 하나는 그게 혼령 루이스의 의도된 메시지라는 거죠.

 

즉, 모린을 괴롭히는 번뇌들은 그녀의 바스러진 내면이 스스로 만들어 낸 허상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루이스의 혼령은 존재했으며, 그는 자신의 쌍둥이 남매인 모린이 불안을 극복하길 기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에서 서사를 메운 대부분의 장면들은 주인공 '수미'의 내면이 은연중에 투영된 허구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귀신은 실제로 존재했었던 것과 유사합니다.

 

초현실적이고 영적인 코드로 관객의 이목을 확 휘어잡은 후, 깊이 있는 메시지의 심리드라마로 마무리하나 싶더니 마지막에 오싹한 반전을 주는군요. 주제의식과 장르적 매력을 함께 잡는 이 영화의 결말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대단히 능숙합니다.

 

 

 

 

 

 

# 10.

 

사족을 살짝 덧붙여 볼까요? 영화의 장르적 매력은 '비행기 모드'가 상당 부분 부담하고 있는데요. 모린의 뜻과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폭력적으로 보내지는 메시지들은 누군가로부터 짓눌리듯 추궁받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비행기 모드'는 이런 스트레스와 공포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죠. 

 

대화를 하는 동안 내면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이를 회피하기 위해 '비행기 모드'를 걸어두면 잠시 동안은 쉬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행기 모드'를 다시 풀어놓는 순간 꾹 압축된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받아내야 합니다. 키라가 살해당한 후 '비행기 모드'를 풀자마자 쏟아지는 메시지들은 그녀를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살인자에 쫓기며 몸을 숨기는 여자'의 상태로 몰아가게 합니다. 간결한 설정과 화면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하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비행기 모드'를 단절로만 이해하는 건 어디까지나 장르적인 측면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주제의식을 기준으로 본다면 되려 반대의 의미에 가깝죠. 모린의 내면에서 중요한 건 '비행기 모드'를 걸었다가 아닙니다. 스스로 '비행기 모드'를 풀었다는 데 있죠. 그녀는 자신을 꿰뚫고 있는 자신을 추궁하고 쫓아오는 존재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위태롭고 두렵고 무섭지만 메신저와의 대화를 통해 내면으로 파고들고 또 파고듭니다. '비행기 모드'는 그 자체로 공포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극복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 11.

 

영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관념적으로 해체한 후 구체적인 요소들에 대입해 설득력 있는 서사로 풀어냅니다. 순간순간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아이템들이 서로 얽혀가며 회수되는 감각이 신선합니다. 숨죽여 움츠러들게 하는 정적과, 정적을 깨는 순간의 긴장감을 구성하는 기술적 역량이 눈부십니다. 감독이 관객의 호흡을 자유자재로 조율하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중심을 잃고 폐허가 되어버린 사람의 고행을 위로하는 영화입니다. 부서진 잔해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 헤매는 고고학자의 손길 같은 영화입니다. 

 

없는 시간 쪼개가며 글을 다듬고 또 다듬어 보지만 제 눈에조차 이번 두편의 글은 특히나 번잡하군요. 손에 잡히는 것은 분명 있는 데, 그걸 글로 풀어놓기는 참 어려운 영화. 리뷰를 하는 동안에는 괴롭긴 합니다만, 그런 영화들이 하나같이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퍼스널 쇼퍼>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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