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SF & Fantasy

원기옥 _ 지옥행 특급택시, D.C 해밀턴 감독

그냥_ 2020. 2. 25. 06:30
728x90



# 0.

 

그런 영화들이 있습니다. 다 덮어놓고 반전 한방 딱! 보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영화들 말이죠. 주머니 사정을 가늠케 하는 지극히 단출한 세트와, 이를 가리면서도 최대한의 가성비를 뽑기 위한 다양한 광원과 화각의 화면 연출. 그리 비싼 개런티를 지불하지는 않았을 것만 같은 많아야 세명 안쪽의 주인공 라인업과, 이들의 개인기를 사골처럼 쥐어짜 표정연기와 대사를 쏟아내는 걸로 간신히 버티는 수다스러운 서사 진행. 2/3 지점에서 터지는 한방 반전과, 그 반전을 최대한 거창한 것으로 포장하기 위한 후반부의 호들갑까지.

 

이렇게만 말하면 혹평을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말씀드린 2/3 지점에서의 반전만 확실하다면 창의적인 아이템을 활용해 경제적으로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수작이 될 수도 있죠. 

 

 

반전 영화에서 반전을 이야기하지 않고 썰을 풀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혹시 이 영화를 반전 없이 보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이후의 글을 읽지 않고 페이지를 나가시기를 권합니다.

 

 

 

 

 

 

 

 

'D.C 해밀턴' 감독,

『지옥행 특급 택시 :: The Fare』 입니다.

 

 

 

 

 

# 1.

 

소위 '저예산 독립 반전영화.' 이 영화가 딱 그러합니다. 대충 한 달에 사람 한 명 정도 간신히 지날 것만 같은 사막과 초원 비스무리한 미국 중부 어딘가에 낡은 택시 하나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비용절감을 위해 최소한의 인원을 촬영 스텝으로 동원하되 그럼에도 최대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린 화각과 과감한 화면 필터로 부실함을 메우려 용을 씁니다. 훤칠하긴 하지만 제대로 된 대형 영화의 주인공을 하기엔 뭔가 애매하게 잘생긴 남자 주인공과, 개성은 있지만 개성 있음 이상의 무언가를 표현하지는 못하는 여자 주인공이 대단히 수다스럽게 떠드는 걸로 묘사는 때워져 있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역시나 2/3 지점 즈음해서 이전의 이물감들을 설명하기 위한 나름의 반전이 등장하고, 이후의 1/3은 그 반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 지를 풀어놓는 데 소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의 평가 역시 앞서 말씀드린 대로 반전 한방에 달려 있다 할 수 있겠네요.

 

 

 

 

 

 

# 2.

 

반전은 생각보다 더 괜찮습니다.

 

결국 여자 주인공은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딸이자 저승의 신 '하데스'의 부인인 '페르세포네' 였으며, 남자 주인공은 그런 '페르세포네'와 사랑을 나눈 것으로 인해 '하데스'의 미움을 산 탓에 영원히 저승의 뱃사공을 해야 하는 저주를 받은 인물이라는 것이죠. 저승의 강은 도로로 배는 택시로 변주해 관객을 낚으면서도 동전이나 '승객'이라는 코드는 그대로 두어 관객을 기만한다는 누명으로부터는 벗어나고 있습니다. 택시 회사의 상사가 된 '하데스'와 나누는 대화 속에 순간순간 비치는 떡밥과 위트도 썩 나쁘지 않구요.

 

'페르세포네'가 처음 스스로를 창부로 소개하는 대목은 '하데스'에게 납치당한 불운한 처지에 대한 은유로 보이구요, 원래 직업은 꽃을 만지는 것이라 말하는 대목은 자신이 대지의 여신의 딸이자 봄과 씨앗의 여신임에 대한 은유가 되겠군요. '페니'라는 극 중의 이름 역시 '페르세포네'의 별칭이면서 남자 주인공을 둘러싼 실체에 대한 떡밥이자, 그녀만은 왜 동전을 내지도 않고 택시를 탈 수 있었는 지를 설명하는 힌트라 할 수 있을 테구요. '해리스'에게 단단히 매여있던 벨트를 풀어내는 '페니'에게서 초월적인 무언가와 같은 이물감을 받게 되는데 이걸 억지스럽기 않게 회수한다는 점에서도 나쁘지 않습니다.

 

 

 

 

 

 

# 3.

 

루프물인 듯 최대한 위장을 했지만 사실은 루프물이 아니었다는 것도 나름 반전이라면 반전이구요, 동시에 그것이 단순한 킹님 갓고식 설정 변경이 아니라 '페니'의 이마에 새겨진 상처라는 형태의 떡밥으로 이야기 속에 녹여 두었다는 것 역시도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나 '페니'가 사라진 이후 대단히 찝찝하고 미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노인을 투척해 한번 더 낚아내는 솜씨는 대단히 재치 있다 할 수 있겠네요.

 

미국의 영화에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를 둘러싼 그리스 로마 신화를 가져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선합니다. 스페인이나 그리스와 같은 우리에겐 더더욱이나 생소한 남부 유럽의 몇몇 영화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영미권의 판타지 영화들이 예수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걸 감안한다면 이 영화의 의외성은 조금 더 높이 평가되어도 좋겠죠.

 

 

 

 

 

 

# 4.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예산 B급 영화의 제한된 제작 여건이라는 걸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 연출이 유려하다는 인상은 약합니다. 특히나 나름의 컬트적인 스타일로 밀어붙이던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 남자 주인공이 살아 있던 시절의 현실 세계에 대한 묘사는 조잡하다 하지 않을 도리가 없죠.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볼륨에 비해 런타임이 너무 길다 싶기도 하구요. 1시간 10여분 안쪽으로 콤팩트하게 치고 빠졌더라면 차라리 더 좋았을 텐데요. 인물들이 보이는 감정선 역시 애매모호해 관객의 몰입을 해칩니다. 십분 양보 해 상황의 전말을 알고 있는 '페니'야 그렇다 쳐도 '해리스'는 충분히 당황하고 공포스러워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루프에 갇혀 있음을 너무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이래서야 곤란하죠.

 

영화의 매력을 차곡차곡 모은 반전 부분을 하데스의 입을 빌어 설명문처럼 말로 풀어내는 것도 너무 아쉽습니다. 높게 올라간 번지점프를 걸어 내려오는 것과 같죠. 굳이 마무리를 교훈극의 형태로 받아내야만 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그냥 쿨한 비극으로 마무리 짓던가 아니면 '페니'와 '해리스'가 저주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스릴러로서의 변주를 하던가 하는 쪽이 이보단 더 나았을 텐데요.

 

그 외에도 한국인 관객의 입장에서 미국식 짙은 화장을 한 동양인 여성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인다는 것도 감상을 방해하긴 합니다. '해리스'와 함께 관객 역시 '페니'를 지옥의 왕마저 사로잡을 만큼 마력에 가까운 매력을 가진 인물로 느껴야 함에도 그것에 성공했다 말하기는 솔직히 힘들죠. 아... 그런데 찾아보니 '페니' 역의 '브리아나 켈리'가 이 영화의 주연이자 제작자이자 각본가였군요... 어쩐지... 뭐 물주가 여신을 하시겠다면 이건 뭐 그러려니 해야죠.

 

 

 

 

 

 

# 5.

 

영화의 반전을 알고 보면 한국어 제목을 지은 놈이 대체 누군지 궁금해집니다. 누군진 몰라도 얜 개 맞듯이 처맞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건 인간적으로 너무 무식한 제목이잖아요? 이건 식스센스의 제목을 '브루스 윌리스는 귀신이다'라고 지은 것과 다를 바가 없잖아요? 유주얼 서스펙트의 제목을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로 지은 것과 다를 바가 없잖아요? 아니 어떤 미친 놈이 반전영화의 반전 요소를 제목에 때려 박습니까. 원제는 『The Fare』. 우리말로 하자면 『운임 중』, 『손님』 정도의 무난한 제목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어처구니가 하늘 넘어 승천하게 됩니다.

 

총평하자면 "수작까진 못 되더라도 이만하면 킬링타임 용으론 나쁘지는 않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제법 짜임새도 있고 관객을 빨아들이는 흡입력도 있습니다. 반전을 만나기 전까지의 관람을 방해하는 덜컹거림이 없잖아 있지만 참기 힘들 정도는 아니구요, 그걸 넘어설 수만 있다면 앞선 내용을 곱씹어가며 썩 기분 좋게 앤딩 크레디트를 보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D.C 해밀턴' 감독, 『지옥행 특급 택시』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