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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장인의 오르골 _ 인비저블 게스트, 오리올 파울로 감독

그냥_ 2019. 4. 1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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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불륜을 저지르는 주인공은 가족을 속이고 있습니다. 교통사고에 연루된 불륜녀 역시 거짓말을 하고 있죠. 살인자는 전도유망한 사업가의 탈을 쓰고 있고 피해자의 부모는 가짜 기자 행세를 합니다. 변호사는 사건을 조작하고 살인사건은 교통사고로 둔갑하며 가해자는 보험회사 직원이 되고 피해자는 횡령범이 되죠.

 

억지로 십자가에 메어진 교활한 마녀가 죄를 고백하는 동안 순진한 표정의 부자는 흉기를 휘두릅니다. 부끄러운 밀회와 사슴 한 마리에서 시작된 사건은 결국 두 사람의 목숨을 무참히 앗아갑니다. 작은 곤란함은 사소한 거짓말과 만나 점점 더 큰 곤란함으로 이어집니다. 거짓말의 연쇄 속에 사건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르죠. 관객은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어느 부분을 믿고 어느 부분을 의심해야 할지 끊임없이 시험받습니다.

 

 

 

 

 

 

 

 

오리올 파울로 감독,
『인비저블 게스트 :: Contratiempo』입니다.

 

 

 

 

 

# 1.

 

시간대에 따라 사건의 레이어가 나뉘어 있는 구성입니다. 변호사와의 미팅이라는 현재에서 출발한 영화는, 변호사를 만날 이유가 되는 호텔 밀실 살인사건에 대한 회상으로 전개됩니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 되었던 더 이전의 교통사고에 대한 회상으로 이어지죠. 감독은 리드미컬하게 액자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가지고 놀다가 마지막엔 시간을 순행하며 실체를 밝혀냅니다.

 

이야기의 완성도는 인상적입니다. 죄를 피하기 위한 인간의 비겁함과 조급함, 자식 잃은 부모의 처절한 복수를 멋들어지게 담아냅니다. 각자의 목적에 충실히 부합하는 인물들과 충돌이 만들어내는 파열을 과감하게 전개하면서도 상식적인 합리성을 잃지 않습니다. 도입의 설정 전개, 본론부 주고받는 신경전, 결론부 연쇄적인 반전 모두 각자의 매력을 지켜냅니다. 밸런스 역시 훌륭해 늘어져 지루할 여지도 없죠.

 

공간 연출은 특별히 인상적입니다. 이질적인 4개의 공간. 교통사고가 일어난 안개 낀 숲과 호수, 주인공과 내연녀의 거짓말이 쌓이는 바르셀로나, 첫 번째 숲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눈 덮인 황량한 호텔, 따뜻하고 편안한 이미지의 변호사 접견실이라는 각기 다른 공간이 직관적으로 전달됩니다. 덕분에 카메라가 자유롭게 시간을 넘나듦에도 관객의 입장에서 어떤 순간의 어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지를 효과적으로 이해하게 되죠.

 

클라이맥스에서 거짓말이 탄로 나며 실체가 드러나고, 인물들의 정체가 밝혀지는 상황에서 이 켜켜이 쌓인 레이어가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져 나가는 데 쾌감이 있습니다. 잘 만들어진 마트료시카를 펼쳐놓는 기분이랄까요. 반전의 연쇄는 특별히 흥미롭습니다.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할 만큼 어지럽게 꼬여있지만 실체가 밝혀진 이후의 정리된 상황은 대단히 합리적입니다. 양산형 반전물과는 달리 인물들의 동기와 입장, 수단의 개연성이 착실히 확보되어 있습니다.

 

 

 




# 2.

 

장르 특성상 서사의 지배력이 강한 영화라 연기력이 도드라지는 작품은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아드리안 역의 마리오 카사스와 내연녀 로라역의 바바라 레니, 희생자의 엄마 엘비라 역의 안나 와게너의 연기는 충분히 인상적입니다. 감독이 장소를 섭외하고 대사를 준비하고 구도를 설정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영화의 핵심이 될 모호함을 전달하기 위한 중의적 표현은 배우들의 몫이었을 텐데요. 말씀드린 세 배우의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속마음을 읽기 힘들게 만드는 애매한 표현'은 영화의 매력을 한 단계 끌어올립니다.

 

국산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우리 관객들에겐 접하기 쉽지 않은 스페인 영화답게 바르셀로나의 모습을 즐기는 것도 이색적입니다. 고전적 문법의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은 장 누벨의 아그바 타워나, 파티장으로 쓰인 미스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공간이 주는 심미성은 영화에 숨은 묘미라 할 수 있겠네요.

 

 

 

 

 

 

# 3.

 

다만 지적 유희를 즐기는 미스터리 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관객이 소외되어 있다는 점은 아쉽다 해야 할 겁니다. 거짓말을 다루는 작품에서 그 대상이 관객이 되어버리면 자칫 기만이 될 수 있다는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관객을 내버려둔 채 혼자 달려간다는 인상이 너무 강합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거짓말들이 탄로 나며 반전과 복선이 회수되긴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내부자 정보들을 활용한 논박이 반복되기에 관객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영화가 내내 거짓말을 반복하는 터라 몇몇의 떡밥조차 충분한 힘을 받지 못하죠. 관객이 '어라? 저게 복선인가!'라고 생각해 봤자, 인물 중 한 명이 '그거 그냥 거짓말이야!'라고 하면 말짱 도루묵이랄까요.

 

관객과 극 간의 거리감을 만들어 놓을 거라면 보통의 추리물들처럼 관객이 스스로 지적 유희를 즐길만한 요소, 이를테면 주인공 아드리안이나 내연녀 로라의 본심이 담긴 내레이션이라든지, 의심의 여지없는 확고부동한 물증 같은 걸 관객에게도 어느 정도는 주는 게 좋았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아니라면 심정적으로 밀착해 스릴러로서 영화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편이 나았겠죠.

 

 

 

 

 

 

# 4.

 

마지막 4개의 레이어 마다의 반전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오는 클라이맥스.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3개의 반전은 나름 개연성도 있고 흥미로웠습니다만, 마지막 레이어 즉 변호사 접견에서의 반전은 조금 아쉽습니다. 살짝 노골적이기도 하고 억지스런 감도 없잖아 있거든요. 좋게 보자면 앞선 3방의 반전을 정리하는 무난한 마무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박하게 평하자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나저나, 결말이 핵심인 영화라 반전을 이야기 안 하려니 힘드네요.

 

# 5.

 

정리하자면 잘 쓰여진 장편 추리소설을 한 권 읽는 것과 같은 직품입니다. 격앙된 인물들의 연기를 정갈하게 관람하는 연극 같은 느낌도 있구요. 섬세하게 잘 빚어진 수공예 오르골 같은 영화랄까요. 한 손에 들어올 듯 작은 이야기를 세심하게 다듬어 복잡하지만 훌륭한 균형의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대로 관객이 이 오르골을 직접 연주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오르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어야 할 뿐이죠. 오리올 파울로 감독, <인비저블 게스트>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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