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한국인에게 당할 줄 몰랐다.
『갈등을 배우지 못해서』
# 1.
<흑백요리사>가 연일 화제다. <냉장고를 부탁해> 이후 오랜만에 만나게 된 요리 예능은 필자 역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20명의 스타셰프와 80명의 은둔고수가 뒤엉켜 자웅을 겨룬다는 콘셉트의 버라이어티 쇼는 걸출한 캐스팅, 컬트적 캐릭터, 각각의 드라마에 힘입어 폭발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다만 1차 공개분(1회~4회)까지만 하더라도 호평 일색이었던 것과 달리 점점 비판도 늘어가는 듯한 모양새다. 2차 공개분(5회~7회)의 팀전에서 드러난 다소의 혼란을 지나, 3차 공개분(8회~10회)의 장사 미션룰은 인간성을 기망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크게 받고 있는 데, 불쾌감을 표하는 사람들의 지적은 개인적으로도 무리 없이 동의하게 된다. 만든 이의 인격을 의심하게 만드는 탐욕적 연출의 화는 언제나 이름과 얼굴을 대신 내걸게 되는 사람들의 몫이다. 몇몇의 라운드를 보는 동안 아찔한 마음이 들었던 건 착실히 누적된 기시감 때문이다. 저 사람이랑 저 사람 인스타는 난리가 나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스스로도 지키지 못할 규율을 함부로 요구하는 무자격 도덕선생님들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익명의 교편을 휘두른다. 책잡힐 거리가 없었던 몇몇의 출연자들이 민망할 정도의 찬사를 받는 동안, 적지 않은 출연자들은 비하인드 코멘터리 대신 애처로운 해명과 연약한 저항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겨우 '원만하게 팀에 복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밉상으로 지목된 한 출연자는 지독한 악플에 시달린 끝에 이렇게 한탄했다 전해진다. "한국인에게 당할 줄 몰랐다." 그녀가 생각했던 '한국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 2.
돌이켜 보면 우리는 갈등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듯하다. 정확히는, 갈등을 조정하고 재구성해 평화로운 대안과 생산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방법과, 그 효용성에 대한 신뢰를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를 막론하고 한국은 갈등을 기회가 아닌 위기로 이해했고, 그 결과 시간을 투자해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살해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돌파했다.
친구끼리 왜 싸워. 싸우지 마. 씁. 토 달지 말라고 했지. 화해해. 악수. 너는 사과하고, 너는 받아줘.
다툼이 생기면 다툼의 근거나 맥락이 아닌 다툼 그 자체를 지적당한 경험은 생각보다 가깝고 흔하다. 대체 무엇을 화해해야 하는 것인지 모를 아이들은 당장의 혼나는 상황을 면피하기 위해 억지로 손을 맞잡고 우스꽝스럽게 위아래로 흔든다. 소임을 마친 어른들이 한 건 했다는 듯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가고 나면, 남겨진 아이들은 엉거주춤하게 서서 한 가지 명확한 메시지에 길들여진다. 갈등은 나쁘다. 갈등하는 사람은 더 나쁘다. 힘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짓밟아 죽여야 한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고, 거울에 비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또다시 갈등을 감시하고 검열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당할 줄 몰랐다 말한 사람에겐 유감스럽지만, 이곳은 '갈등을 유발하는 듯한 존재를 짓밟는 짓'에 상당히 최적화되어 있는 사회 중 하나다. 안타깝게도 당신의 이유나 사정은 애초부터 중요하지 않았다. 신나게 발길질하는 사람들조차 평생 자신의 이유나 사정을 존중받아본 적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3.
Agree to disagree.
직역하자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 정도의 의미로, 결론짓지 못한 토론을 마무리하며 쓰이는 말이다. 둘 이상의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논쟁하다 설령 완결성 높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각자의 입장을 늘어놓았던 과정의 가치는 긍정한 채 종료하는 것이다. 굳이 영어를 빌려와 미안하지만 적어도 한국인에게 당할 줄 몰랐다는 말보다는 훨씬 근사한 말처럼 들린다. 다름에 동의하고 갈등을 인정하듯, 자신에 대한 겸손과 상대에 대한 존중이 통용되는 사회라면 적어도 지금 보이는 것과 같은 피로한 검열은 한풀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고민스러운 것은 결국 방법이다. 갈등의 긍정을 문장의 형태로 암기하는 것과 삶의 습관으로 끌어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런 사람이 하나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화로 자리하게 하는 것 또한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선험적일 수 없어 지극히 경험적인 '갈등의 유용함'을 집단적으로 합의하는 것은 짐짓 불가능해 보이는 것만 같아 막막하다. 이기적인 다수에게 협조적이지 않은 갈등 유발자를 색출하고 팔매질하는 일련의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걸까. 갈등하는 사람들과 갈등을 감시하는 사람들 모두 심벌에 얹어 한데 비벼버릴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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