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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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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렌타~ 네코! _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그냥_ 2019. 2. 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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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렌타~~~~~~~ 네코! 렌타~~~~~~~ 네코! 네코, 네코! 외로운→ 사람에게↗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렌타~~~~~~~ 네코! 렌타~~~~~~~ 네코! 네코, 네코! 외로운 사람에게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 レンタネコ 입니다.

 

 

 

 

 

# 1.

 

벌써 1월도 다 지나고 음력설이 찾아왔네요. 글을 쓰는 지금은 연휴의 시작인 토요일입니다만, 올라가는 월요일이 되면 연휴도 반환점을 넘어 지나가겠군요. 언제나처럼 한 것 없이 시간은 참 빠릅니다. 후다닥 첫 달이 지나기 무섭게 티비에선 특선영화 광고를 하고 예능에선 조카들에게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 같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겠죠. 커뮤니티에선 불편한 자리에 대한 취준생들의 투덜거림과 모처럼만의 휴일에 흥분하는 직장인들의 글이 적당히 오르내릴 거고, 당일날 인터넷 검색어엔 새해인사문구가 뜰 겁니다.

 

하지만 저는 스무 살이 넘은 이후로 친척들과 명절을 보내본 기억이 없네요. 독립하면서부터 워낙 일가와 떨어진 곳에 혼자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타고나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이 더 크기도 합니다. 때문에 제가 기억하는 명절 연휴는 뭇사람들의 그것과는 제법 다릅니다. 그냥 빨간 날의 향연이죠. 나이스!! 여유가 나면 국내 여행을 가고 그렇지 않으면 방에 처박혀 영화나 밀린 드라마들을 몰아보는 시간들로 기억됩니다. 보통은 해외여행들 많이 가시는데요. 한 번쯤 국내 여행을 해보세요. 문 닫은 식당이 많아 먹는 게 좀 불편하단 것만 빼면 생전 처음 보는 텅 빈 도시의 광경과 분위기를 색다르게 경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가족 친지 모두모여 왁자지껄하게 노는 게 익숙하신 분들은 알아서들 잘 지내시겠죠? 그런 분들을 위한 설 명절 추천 영화! 이런 것들은 어차피 구글링을 하든 다음이나 네이버를 긁든 드글드글하게 많잖아요? 영화가 보고 싶으시면 어른들 모시거나 조카들 데리고 영화관 가시면 되고, 티켓팅에 실패하신 분들은 티비 켜서 적당히 설 특선 영화 같은 거 보시면 되구요. 그러니 저는 혼자 자취방에서 명절을 보내실 분들, 명절 스트레스니 하는 것들과도 연이 없으신 분들, 그런 분들을 위한 영화를 한편을 추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2.

 

고양이입니다.

 

감독도 고양이고 배우도 고양이고 주제도 고양이고 플롯도 고양이입니다. 시간도 고양이고 공간도 고양이고 인물도 고양이고 대사도 고양이죠. 공기도 고양이고 분위기도 고양이고 음악도 고양이고 색감도 고양이입니다. 네. 이 영화는 몽땅 고양이예요.

 

적당히 덥고 적당히 선선한 초여름날. 길가에 내놓은 누런 장판 덮인 나무 평상에 드러누워 멈춘 듯 안 멈춘 듯 애매한 속도로 나긋나긋하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는 듯한 영화입니다. 휴일 오후 삐걱이는 침대에 누워 너무 많이 읽어 손때가 거뭇거뭇하게 묻은 만화책을 멍청한 표정으로 보는 것만 같은 영화입니다. 하필 운이 좋아 텅 빈 카페 2층에 홀로 앉아 창밖으로 뜨문뜨문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데, 마침 지나가던 웬 꼬마애와 눈이 마주치자 그 아이가 고개를 까딱하고 목례를 건네는 걸 흐뭇하게 보는 듯한 영화입니다. 쉬는 날 아침 늦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힐끗 보곤 안도하는 표정으로 다시 얼굴을 배게에 묻고 깊은 쉼을 내쉬는 것만 같은 영화입니다. 여기에 주제가 어디 있고 이야기가 어딨을까요. 그냥 있으니까 보는 거고 그냥 그렇게 보는 걸로 좋은 거죠.

 

# 3.

 

단돈 천 엔에 고양이를 빌려주는 여자 '사요코'와 고양이를 빌리려는 외로운 사람들에 대한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아끼던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끼지만 새로운 고양이를 들이기엔 내 나이가 너무 많아 책임져 주지 못할 것만 같은 할머니가 손님으로 찾아옵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동안 아빠와의 추억 없이 부쩍 커버린 아이를 둔, 가족이 있지만 그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서글픈 아빠가 손님으로 찾아옵니다. 

 

A클래스, B클래스, C클래스. 무언가를 등급으로 나누는 게 익숙해져 버린, 그래서 자신 조차 C클래스라고 체념해버린 여자. 자동차를 빌려주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12년간 한 번도 차를 빌려보지 못한 렌터카 직원이 고양이를 빌립니다. 양호실에 틀어박혀 살던 '사요코'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거짓말쟁이 남자애가 그녀에게 무더운 여름날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잔의 맛을 알려줍니다.

 

 

 

 

 

 

# 4.

 

고양이와 외로운 사람들. 그게 전부입니다.

 

주어진만큼의 외로움을 짊어진 사람들이 고양이를 매개로 세상 둘도 없이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냉장고를 가득 메운 손님용 푸딩. 구멍 난 양말. 혼자 먹기엔 너무 많이 산 도넛. 차가운 아이스크림.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시원한 메밀국수, 그리고 무수히 많은 고양이가 소소한 대화들이 만드는 더 소소한 틈새를 빈틈없이 메웁니다.

 

눈으로 보는 영화가 아닙니다. 눈 앞에 두는 영화죠. 귀로 듣는 영화 역시 아닙니다. 귓가에 두는 영화죠. 인물을 목격하고 판단하고 이야기를 찾고 내러티브를 따라가려 해봐야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어 한없이 지루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신발장에서 케이크를 찾는 것과 같죠. 그냥 멍청히 앉아 초점도 반쯤 놓은 채로 '영화를 놓아둔다' 정도의 나이브한 감각으로 보면 좋습니다.

 

# 5.

 

냉정히 말해서, 없는 시간 만들어서까지 볼 영화는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인생 역작이라기에 부족한 지점들도 많습니다. 당장 감독의 영화들 중에서도 이 영화보다 괜찮은 것들도 있습니다. 『카모메 식당』만 해도 이보다 좋죠. 고양이를 싫어하시는 분껜 시간 아까운 영화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일본 영화 특유의 표현, 오그라드는 감성에 대한 합의는 필요합니다. 대체 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단호한 대답을 할 때면 딱 돌아서서 정면으로 하이! 하고 대답하는 걸 견뎌야 합니다. 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남자 배우에게 여장을 시킨 후 할머니라고 우기는 연출도 견뎌야 합니다. 밑도 끝도 없이 들이대는 만담 꽁트가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인공 여배우가 고양이들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수긍할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합니다. 소소해도 너무 소소한 이야기들에 심드렁해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남아도는 데 그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도,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잠도 다 잤고, 배도 적당히 부르고. 그럴 때 시간을 태운다는 느낌으로 볼만한 영화입니다. 만, 다행히도 우리에겐 지금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도 '마땅히 할 일'도 없어 '적당히 시간도 남아돌아 태워도 상관없는' 연휴가 남아 있습니다. 설 연휴 혼자 작은 자취방 침대에 걸터앉아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과 바나나우유나 초코우유를 까먹고 계실지도 모를 당신에게 어쩌면 딱 들어맞을지도 모를 영화라는 거죠.

 

 

 

 

 

 

 

# 6.

 

외로움을 달래는 영화지만 그 외로움에 특별함을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의 '특별한' 외로움이 '특별한' 고양이와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 치유받는다는 영화의 습관에서 이 작품은 벗어나 있습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외로움이 가지는 평범성과 일상성을 담담하게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런 외로움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듯 미미해 보이는 소소한 관심과 작은 고양이 한 마리로도 확실하게 채워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그립니다. 이 영화는 점점 고립되어가는 현대인들을 위로하는 천진난만한 동화입니다.

 

# 7.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지만 때론 그 사실을 잊곤 합니다. 어떤 이들은 마치 자신만이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건 아닐까? 라는 두려움과 고독함에 파묻히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내면화된 외로움을 방치하듯 수용한 채 살아가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외롭지 않아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상처 받기도 합니다. 슬픈 일이죠.

 

부디 이 영화와 영화 속 고양이들이 어쩌면 텅 빈 도시를 혼자 보내느라 외로울지도 모를 당신의 마음속 외로운 구멍을 확실하게 채우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창밖으로 작은 확성기에 담긴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면, 고양이 한 마리 빌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렌타~~~~~~~ 네코! 네코, 네코! 외로운→ 사람에게↗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였습니다.

 

# +8. 가족들에 둘러싸인 사람들보다 혼자 휴일을 보내고 있을 당신. 새해 복 곱절로 더 많이 받으세요! :)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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