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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메카뽕에 꼬라박으면 _ 퍼시픽 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그냥_ 2025. 4.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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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덕중에 덕은 양덕일지니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퍼시픽 림 :: Pacific Rim』입니다.

 

 

 

 

 

# 1.

 

장편 영화 하나를 냅다 메카뽕에 꼬라박으면 어떤 결과물이 만들어질까. 퍼시픽 림이다. 진부한 스토리를 대충 방기한 채 거대 로봇 액션에 몰빵한 영화라는 것엔 호평하는 사람도 혹평하는 사람도 이견이 없겠으나, 다소 둔탁해 보이는 경험에 비해 작품의 시청각적 스펙터클의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다채롭다. 글에선 그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연출한 메카 영화의 정체성은 어쨌든 예거다. 각각의 예거는 다양성을 위한 다양성의 무작위적 수집이 아닌 대표하는 국가의 문화적 인상, 군사적 역사, 장르적 전통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기체마다 서사 안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인격체로 받아들여진다. 가령, 집시 데인저의 디자인은 전형적인 미국형 히어로의 문법을 따른다. 이름에서부터 오지랖으로 점철된 근현대 미국의 자의식이 묻어남이다. 외형은 20세기 중반 미국의 산업 디자인, 특히 철제 항공기와 군함 등에서 영감을 받은 듯 둥글고 무거운 금속 질감으로 구성된다. 왼팔에서 튀어나오는 플라스마 캐논과 오른팔의 체인소드, 등 뒤의 원자로 냉각구조까지. 기능과 미학이 정밀하게 결합된 로봇은 스스로를 핵전쟁 이후 살아남은 고전 영웅이자, 과거에서 살아 돌아온 인류 최후의 희망으로 상정하고 있다. 한편, 체르노 알파는 전혀 다른 결로 설계된다. 소련식 장갑차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두터운 외피, 압도적인 머리 크기, 관 모양의 증기 냉각 구조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기체가 얼마나 ‘구식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존재인가를 직관적으로 각인시킨다. 흔히 메카물이 빠지기 쉬운 추상성의 유혹은 최대한 배제되고, 현실의 기계공학을 시뮬레이션한 느낌이 강조되는데, 이는 델 토로가 로봇을 단순히 공상적 존재가 아닌 기술적 상상력의 연장선에서 제안하고 있음이다.

 

이처럼 영화의 디자인 철학은 단순한 양식적 기호화를 초월한다. 일본풍의 늘씬하고 날렵한 코요테 탱고, 3인 조종으로 개성을 준 크림슨 타이푼까지, 예거 각각을 독립적인 문화 단위로 설정함으로써 로봇의 개성 자체가 관객의 감정 반응을 다르게 유도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퍼시픽림은 분명 거대해서 흥미롭지만, 왜 이런 디자인인가, 왜 이렇게 싸우는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내적 논리를 갖추고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 2.

 

예거의 외형이 시각적 압도감을 제공한다면 내부의 시스템은 감정적 밀착감을 선사한다. 전통적인 로봇물과 선명하게 차별되는 조종 체계다. 드리프트는 두 명의 조종사가 뇌를 공유하며 로봇을 움직이는 것으로 상호 감정적, 정신적 개입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예거는 고도로 진화된 기계이면서도, 그 작동의 핵심은 인간의 감정과 기억, 나아가 상호 신뢰에 기반한 유대감에 있는 것이다. 덕분에 파일럿은 고도로 숙련된 기술자에서, 기꺼이 마음과 기억을 나누는 존재로 재정립된다. 드리프트 안에서 공유된 기억, 고통, 트라우마는 영화의 전투를 물리적 갈등을 넘어 심리적 화해와 연대로 확장되게 한다는 면에서 다분히 핵심적이다.

 

기존 로봇물은 천재 소년이나 에이스 조종사가 로봇을 단독으로 조종하며 신격화되는 구도를 따른다. 초반 설정에서 토크쇼에 출현해 환호받는 파일럿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퍼시픽 림은 스스로 확인한 과거의 공식을 과감히 폐기한 후 빼곡한 스태프들의 환호로 대표되는 ‘공감’과 ‘협력’이야말로 문제를 극복하는 원동력임을 강조한다. 거대 로봇물의 클리셰를 인간 중심의 드라마로 전환시킨 일련의 조작은, 다시금 관객을 로봇의 조종석에 직접 위치시킴으로써 액션을 체험하게 한다는 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 3.

 

감정선을 부여하는 드리프트라는 엔진과, 기체를 인격화시키는 디자인적 기어는 실제 전투 장면을 통해 역동적으로 작동된다. 퍼시픽 림의 전투 지향이란 ‘빠르고 화려하게’가 아닌 ‘무겁고 정확하게’를 관철하는 것이다. 카이주와의 전투는 속도감보다 체중을 실은 주먹, 휘청이는 균형, 부서지는 도시의 질량감을 통해 구현된다. 주먹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공기의 저항, 구조물과의 충돌, 모터의 회전 등이 다층적으로 표현되어 단순히 '맞췄다'가 아니라 거대한 질량 덩어리가 '충돌했다'는 감각을 성실하게 전달한다. 날렵하게 날아다니기보다는 무게를 감당하며 발을 딛는 장면들이 유달리 많은 것은 그런 이유다. 전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충돌을 맞는 듯한 체험. 퍼시픽 림이 달성한 시청각적 쾌감의 핵심이다.

 

감독은 다시 고전 괴수영화의 카메라 앵글을 차용하고, 그것을 느리게 연출함으로써 진중한 충격을 재차 강조한다. 집시 데인저가 화물선을 들고 휘두르는 시퀀스 등은 대표적이다. 건물에 준하는 선박을 몽둥이처럼 쓰는 장면은 초현실적인 발상과 현실적인 물리감이 기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로봇이니까 가능한 과장이지만, 동시에 철제의 구체적 실체를 놓지 않았기에 가능한 연출이고, 스파크와 마찰음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관객들이 그것이 가상임을 반복적으로 망각할 수 있었던 이유다.

 

물론 일련의 경험은 소리와 함께 완성된다. 영화의 음향은 일관되게 물리적 충격과 감정적 긴장을 함께 건드린다. 예거가 움직일 때마다 바닥이 울리고, 모터가 회전하는 굉음에 온몸이 떨리는 경험은 독점적이다. 단순하게 크기만 한 소리가 아닌 장면의 중량을 보강하려는 설계의 힘이다. 사운드는 종종 시각보다 먼저 관객을 전투 상황에 몰입시키는 식으로도 쓰인다. 청각적 전조는 곧 시각적 클라이맥스로 이어지며, 쾌감은 일정하게 배신 없이 상승하게 된다.

 

 

 

 

 

 

# 4.

 

영화는 자신이 발들인 장르적 문법이 어떤 역사 속에서 누적되어 왔는가를 명확히 인식한다는 면에서도 탁월하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스스로 괴수물과 로봇물의 열정적인 팬임을 숨기지 않는다. 울트라맨, 고질라, 마징가 Z 같은 작품들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로봇이 도시에 등장해 괴수와 격돌하는 장면의 클리셰'를 명확히 재현하는 데,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이 왜 효과적이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작동시켰는지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조립한 것은 감독의 역량을 가늠케 하는 것이다. 일련의 존경심은 오마주가 되어 설정 곳곳에 두텁게 드러난다. 카이주라는 괴수의 명칭부터가 일본 특촬물에서 유래되었음에 틀림없고, 각 괴수에게 클래스를 부여하는 분류 방식 또한 고질라 시리즈 등의 생태학적 설정과 유사하다. 등장씬 역시 장르적 문법을 충실히 따른다. 각 기체가 와이어에 매달려 출격하는 모습은 분명 기대감 이면에 익숙한 반가움이 숨어있다. 또한 오마주는 단순한 향수 자극에 머무르지 않는다. 퍼시픽 림은 장르의 틀을 빌려오되, 그것을 서사 안에서 재배치한다. 이를테면 도시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전투 장면은 고전 특촬의 미니어처 파괴 연출을 고스란히 재현하면서도, 실제 도시 구조를 고려한 카메라 워크와 충돌 궤적을 새롭게 삽입한다.

 

물론 쾌감은 예거의 완성도만으론 충분할 수 없다. 상대가 얼마나 위협적인가에 따라 감정의 밀도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카이주의 존재감은 더없이 중요한 요소다. 감독은 카이주를 생물로 설정한 후 외형, 무기, 행동양식 따위를 체계적으로 분류한다. 1에서 5까지의 등급 체계를 통해 위협도를 객관화한 후 정직하게 에스컬레이트시켜 예상된 기대감을 정직하게 보상하게 한다. 예거의 디자인이 무작위적이지 않았던 것처럼 카이주 또한 단순히 괴상하게 생긴 생물이 아니라 깊은 바다의 포식자처럼 생태적 구조를 성실히 갖춘다. 갑각류, 파충류, 심해어, 익룡형 등 익숙한 테마의 외형과 그 특성이 충실히 반영된 전투 전략의 연계도 돋보인다. 카이주에 공을 들인 결과 단순히 때려잡기 위한 몹이 아닌, 실제로 맞서 싸워야 할 적으로 인식되고 전투는 힘겨루기가 아닌 감정의 투쟁으로 확장된다. 이걸 어떻게 이기냐. 감정적으로 충분히 이입된 관객이 압도감을 느낀 후 반격에 성공함으로써 승리감을 보상하는 방식은 괴수물의 정석이라 평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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