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결국 뱀에 물리고만 의사였다.
웨스 앤더슨 감독,
『독 :: Poison』입니다.
# 1.
넷플릭스가 주도하고 웨스 앤더슨이 연출한 4편의 로알드 달 단편 프로젝트 중 하나다. <기상천외한 핸리 슈거 이야기>에서 자유로운 이야기의 역동성을, <쥐잡이 사내>에서 절륜한 문장력의 위력을 증명했던 감독은 <독>을 통해 간결한 이야기로 녹여낸 인간 탐구를 서늘한 촉감으로 구현한다.
인도 땅에서 인도 뱀의 위협을 피해 인도 의사의 도움을 받게 된 영국 군인 해로 포프의 이야기다. 해리의 부름을 받은 우즈와 함께 영화는 시작되는 데 이후로도 우즈는 사건의 관찰자로서 화자를 겸한다. 침대에 곧게 누은 해리는 배 위에 치명적인 독을 가진 우산뱀이 잠들어 있어 옴짝달싹할 수 없다. 깜짝 놀란 우즈는 잠시의 혼란 끝에 의사 간더바이에게 도움을 청하고, 능숙한 인도인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왕진한다. 긴장이 극에 대한 해리는 점점 평정심을 잃지만 그럼에도 간더바이는 최선을 다한다. 이윽고 이불을 들춰내는 순간. 배 위에 있다던 우산뱀은 사라진 건지 애초에 없었던 건지 찾을 수 없다. 안도한 의사의 헛웃음에 한껏 흥분한 해리는 표독스러운 독설을 내뿜고. 늦은 밤 홀로 허탈해진 의사는 처량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 2.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독'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입체적인 것이다. 가장 낮은 층의 독은 우산뱀에 물리는 순간 감염되게 될 생화학적 독이다. 다음은 그 위협으로부터 공격당하고 있다 생각하는 자의 불안이라는 독이다. 해리의 배 위에는 우산뱀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분명 무언가로부터 공격당하고 있고, 그가 보인 경직된 안구와 입꼬리의 증상은 독성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다음은 해리 포프가 입과 눈과 호흡으로 뿜어내는 독으로, 이때의 독은 다시 두 가지 층위로 구분된다. 하나는 생명이 위협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일 법한 보편적인 불안으로 인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따른 인종차별적 공격성이다. 각기 다른 성격의 두 독을 분류할 방법은 없지만, 붉게 충혈된 얼굴의 해리가 내뱉는 표독스러운 대사는 영화에 등장하는 것 중 가장 농축된 독임에는 분명하다.
실체와 별개로 해리가 느낀 우산뱀은 당연히 뱀이고 움추러든 그를 옥죈 불안 또한 뱀이지만,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면서도 입으로는 독을 내뿜는 해리 역시 스스로 뱀이다. 영화 내내 인도인은 조심스레 뱀을 다루는 듯 보이지만 그보다 더 조심스럽게 영국인을 다루고 있다. 우산뱀이 없다는 걸 알고서 침대 위로 벌떡 일어나 내려다보는 구도는 마치 차분히 누워있던 뱀이 머리를 쳐드는 듯하고, 그것을 올려다보며 긴장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마치 독사에 물리지 않기 위해 움추러든 생쥐가 된다. 두텁게 적층 된 독에 절여진 맥락이 상처를 비집고 삐져나오는 순간이다. 작품은 뱀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선명한 뱀에 대한 영화이며, 독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진한 독에 대한 영화다.
# 3.
경험적인 측면에서 영화는 대단히 촉각적이다. 로알드 달과 웨스 앤더슨이 탐구하는 '독'이란 주장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닌 감각하는 것이다. 오프닝에서 사건에 들어가는 주인공과 함께 세트가 해체되는 건 관객 역시 그날 밤 같은 공간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귀를 간지럽히는 속삭임의 서늘함과 배 위에 뱀이 놓여 있는 듯한 저릿함이 최대치의 형용으로 묘사된 이유이자, 침대에 누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극단적으로 화면과 밀착된 모습으로 표현되는 이유이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무언가가 일어난 듯한 서스펜스의 이유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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