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순간의 가축을 누리기 위해 망각하고 있었던 시간 속 동물들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
『군다 :: Gunda』입니다.
# 1.
노르웨이의 한 농장에서 태어난 암퇘지와 새끼돼지, 한쪽 다리가 없는 닭, 건장한 소 몇 마리는 작품에 등장하는 전부로, 90분의 런타임을 동물들에 대한 애정에 정직하게 할애한다. 폭압적으로 단순화되어 버린 존재들의 외면하고 있던 복잡성에 대한 성실하고 끈질긴 조우가 평화롭게 그려진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개성적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에서, 가축은 소비되기 위한 상품으로 재해석되기 이전의 자율적 존재로 회귀한다. 전향적인 생태주의 실천가로 알려진 호아킨 피닉스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처럼 목적은 명확하다. 복종적이고 도구적인 가치로만 치부되던 가축과의 관계를 재고하는 다큐멘터리다.
익숙한 동물들의 익숙하지 않은 모습은 집중을 끌기 충분하다. 관객은 금세 영화라는 사실을 잊고 다정한 눈빛을 가진 동물학 연구자가 되어 느긋하게 관찰하게 된다. 결말에 이르러 배회할 뿐인 암퇘지의 모습에서 그 의미를 반추하게 되는 타종 간의 공감은 작품의 지향이다. (작중에서 확인되진 않지만) 제목 Gunda는 암퇘지의 이름으로, 영화의 가치는 가축으로서의 암퇘지가 비로소 군다가 되는 것. 특히 그 변화를 스크린 속 동물에 의한 것도 논평하는 내레이터에 의한 것도 연출하는 감독에 의한 것도 아닌 온전히 인간 스스로 자백하게 하는 것에 있다.
# 2.
색깔이 없어짐으로 인해 농장은 사유의 공간이 되고, 인간이 없어짐으로 인해 가축은 동물이 되며, 새끼가 없어짐으로 인해 동물은 다시 어미가 된다. 재잘거리던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후 한참을 배회하는 군다의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낮은 울음소리가 길게 울리는 장면은, 상실이란 순간이 아닌 시간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순간과 시간은 감독이 생각하는 가축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이며 고의로 망각해 온 인간의 치부다. 촬영이 끝난 이후에도 이어질 긴 시간 동안 새끼들을 생각할 군다의 축사로 돌아가는 쓸쓸한 모습과 함께 작품은 마무리된다.
직관적인 작품은 이면에 비언어적인 표현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흑백의 화면은 색을 배제함으로써 산만함을 줄인 후 절약된 집중력을 디테일에 대한 몰입감으로 환원한다. 특별한 서사화의 도움 없이도 지루하다는 인상 없이 진중하게 관찰하듯 관람할 수 있었던 이유다. 자유로운 동물과 구속된 가축의 관계를 빛과 어둠으로 대비시키는 효과도 있다. 전반부의 좁고 짙은 그림자의 비장미로 표현되던 화면이 점차 은은한 빛이 온화하게 뻗어 나오는 공간으로 확장되다, 마지막 사건으로 말미암아 추락하는 비언어적 내러티브 역시 유효하다.
외다리 닭은 장애가 아닌 상품성의 하자로, 건장한 소는 생명이 아닌 높은 가격으로 이해되는 관성적인 인식을 환기하는 장치다. 새소리와 울음소리와 날벌레 소리가 정직하게 담긴 사운드 역시 영화의 진실성을 떠받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돼지와 같은 눈높이의 낮게 깔린 카메라는 이 프로젝트가 시점에 관한 것임을 표현하는 주요한 연출 요소다. 관객은 낮은 시선의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다 거친 엔진소리의 농기계로 말미암아 자신의 시선이 낮게 잡혀있었음을 자각하게 되고, 이는 드라마틱한 군다의 비극으로 연결되어 반성을 촉구한다.
# 3.
언제나 그렇듯 동물권 논쟁은 유명 제작자의 의지와 별개로 답하기 쉽지 않다. 특히 흥미본위의 사냥이나 가학적인 동물실험 등과 달리 섭생의 문제는 포식의 당위도 충분히 탄탄하기 때문이다. 진화생물학적 측면에서 잡식으로 진화된 인간의 천부인권적인 식생을 윤리와 결부시키는 순간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차적 문제제기 역시 가볍지 않다. 물론, 호아킨 피닉스는 채식의 강요가 아닌 공장형 축산에 반대하는 것이라 항변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영화 내적으로만 보자면 축산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되는 것이 타당하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안드레아 아널드의 <카우>(2022)의 경우 명시적으로 그 대상을 가축으로 고정한 후 그들의 비참함을 조명했던 것에 비하면 차이가 크다. 때문에 논리가 다소 느슨하고 헐겁고 부분적으로 비겁하다 평할 수도 있지만, 일련의 간접성 덕분에 비건 프로파간다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유리한 지점이다.
작품은 감정에 호소하는 서사화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하면서도 돼지의 삶에 밀접히 다가가 관찰하고 반추하도록 폭넓은 공간을 제공한다. 다소 평화롭고 명상적인 논픽션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 각각의 변수가 적절히 조화하는 서정적인 내러티브가 육중하게 흐르게끔 만든 것은 성취다. 그 덕에 논쟁적 어젠다를 즐기는 활동가적 의도가 숨어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날카롭거나 공격적인 형식을 피함으로써 담대하고 감동적인 자기고백적 경험을 자아낸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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