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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송곳니를 지킬 수 있겠나 _ 송곳니,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그냥_ 2023. 2.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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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언어는 인식을 조직한다.

인식은 사고를 통제한다.

사고는 상상을 지배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송곳니 :: Kynodontas입니다.

 

 

 

 

 

# 1.

 

<더 랍스터>, <킬링 디어>, <더 페이버릿> 등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출세작입니다. 불쾌하고 찝찝한 영화 깎는 장인답게 호불호를 많이 타는 감독임엔 분명하지만, 특유의 초현실적 설정과 음울한 분위기, 치밀하고 절제된 미장센 덕에 수많은 팬을 거느린 인물이기도 하죠. 몇 년 전 <꽃을 찢고 질문하다>라는 제목으로 이야기 나눈 게 어렴풋이 기억나는데요. 오랜만에 요르고스 란티모스를 다시 보게 되었군요.

 

끔찍한 가족입니다. 아빠는 보호라는 명목 하에 가족을 고립시킨 후 왜곡되고 통제된 정보들로 자녀를 세뇌합니다. 장성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어른의 행동과 말투를 보이지 못하는 아이들을 지나, 가족 모두 네 발로 엎드려 개처럼 짖는 모습까지 다다르면 불쾌감에 몸서리치게 되죠.

 

오프닝을 왜곡된 단어의 정의를 왜곡된 장소에서 교육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영화는 언어가 인식을 조직하고 인식이 사고를 통제하며 사고가 상상을 지배하는 과정을 점층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외부인에 의해 통제를 벗어난 정보가 침투하게 되고, 결국 바깥 세계를 욕망하게 된 큰 딸이 가족을 탈출한다는 내용의 작품이죠.

 

 

 

 

 

 

# 2.

 

단순화하자면, 차갑고 정적인 호흡으로 응축되던 스트레스가 급격한 전개와 함께 폭발하며 완성되는 구성이라 말씀드릴 수 있을 텐데요. 자연스럽게 영화의 핵심 역시 차곡차곡 누적되던 이미지가 폭발하는 결말에 응축되어 있다 해야 할 겁니다.

 

큰 딸이 집을 나가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집을 벗어나기로 마음먹은 딸이 스스로 송곳니를 부쉈다는 것이 훨씬 중요하죠. 집을 탈출하겠다는 상상조차 '집을 나서려면 송곳니를 뽑아야 한다'는 사고의 한계를 극복하진 못합니다. 딸이 아빠 차 트렁크에 숨은 것 역시 같은 의미의 반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욕망조차 '차량을 타지 않고 울타리 밖으로 나가선 안된다'는 인식의 통제를 극복하진 못합니다.

 

제 아무리 큰 의지와 욕망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과 무관하게 언어가 허락하는 만큼만 인식하고 사고하고 상상하는 인간의 한계를 서늘하게 전시합니다. 폭발적인 충동 끝에 탈출했지만 그래봐야 딸의 세계는 좁고 어두운 트렁크 안에 갇혀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죠. 독재나 학대, 혹은 가족의 의미에 대한 재고 따위가 영화의 핵심이었다면 앤딩 컷에서 트렁크를 나와 자유를 쟁취해 낸 딸의 모습이 어떤 식으로든 묘사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인식에 대한 영화이기에 트렁크 안에 갇힌 딸의 모습을 건조하게 전시하며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죠.

 

 

 

 

 

 

# 3.

 

차 트렁크를 길게 잡는 앤딩은 중의적 해석 또한 가능케 합니다. 집을 탈출하려 한 딸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아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딸이 차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생각하는 것처럼, 아빠는 딸이 차 트렁크에 들어있으리라 상상하지 못합니다. 트렁크는 물건을 싣는 공간이지 사람이 타는 공간이 아니라는 인식과, 자유란 마땅히 더 넓은 공간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사고가 그의 상상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죠. 아빠의 일터가 공장이라는 설정은 그가 사는 바깥의 세계 역시 어쨌든 하나의 시스템일 수밖에 없음을 상징합니다. 왜곡된 가족이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딸과, 일반의 세계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빠는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그 역시 크기만 다를 뿐 울타리 안에서 인지하고 사고하고 상상할 뿐이죠.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한계란 스크린 넘어 관객 역시 공통적으로 적용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똑같은 사람이니까요. 딸이 갇힌 좁고 어두운 자동차 트렁크와, 남겨진 가족이 개처럼 짖고 있는 평화로운 울타리와, 공장이 돌아가는 아빠의 바깥 세계가 동일한 것처럼. 영화 <송곳니>를 보고 있을 관객의 현실 역시 적어도 그 안에 속한 사람의 사고를 통제한다는 점에서 만큼은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엔딩에서 길게 비추는 차 트렁크는, 딸과 아빠뿐 아니라 카메라라는 눈을 빌려 관객 저마다가 가지고 있을 인식의 그릇을 뚜렷하게 직시하는 연출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 4.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은 이상한 설정, 이상한 행동, 이상한 구도, 이상한 연출에 의한 불쾌감에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느꼈을 겁니다. 이상하고 불편하다는 것은, 비교군으로서의 '이상하지 않은 정상 상태'라는 것이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정상 상태'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상 상태로 합의된 설정과 행동과 구도와 연출이라는 '언어' 속에서 관객 역시 인식하고 사고하고 상상하고 있음을 증명하죠. 관객이 영화를 보는 동안 느끼게 될 불쾌감이란 곧 자신이 정상 상태라 믿던 울타리 그 너머를 들여다보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벽 너머 가상의 형을 향해 빵과 돌멩이를 던지던 남매와 같은 것이죠.

 

관객의 인식이 가족을 둘러싼 울타리와 같고, 영화를 보는 과정이 울타리 너머를 탐구하는 것과 같다면, 중요한 질문은 결말에 이르러 인식의 담장을 넘어서게 될 관객은 큰 딸과 달리 자신의 '송곳니'를 부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것입니다. 영화 <송곳니>는 제목에서처럼 그 자체로 관객의 머릿속 송곳니로 기능합니다. 이 작품을 학대나 세뇌, 가족, 독제와 같은 일반의 규범적 기준에서 평가한다면 결론이 어떤 것인지와 무관하게 그 순간 기계적으로 스스로의 송곳니를 부순 것과 같습니다. 정적인 표현과 대조적이게도 대단히 도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적지 않은 평론가들이 스스로 송곳니를 부수는 모습들은 그 자체로 영화의 메시지를 완성시키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 5.

 

일련의 메시지는 비단 영화 뿐 아니라 문화적인 접근을 가능케 하기도 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고립된 사회라거나, 계급 관계라거나, 같은 소리를 가지지만 다른 의미로 쓰이는 언어 따위는 현실 세계에서도 얼마든지 존재할 법한 것이니까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다른 인식과 다른 사고와 다른 상상을 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위화감으로 느끼는 것은 상대가 특별히 이상하기보다는 그들을 지켜보는 내가 그들과 다른 인식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타인에 대해 배타적 태도로 대한다면 울타리 안에서 네 발로 엎드려 짖는 개가 된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기준에서 평가한다면 울타리는 벗어나겠지만 스스로의 송곳니를 부순 것과 다를 바 없을 겁니다.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도구로서 다름 아닌 비디오테이프와 영화를 활용하고 있음이 인상적입니다. 감독에게 영화란 인식과 사고와 상상의 지평을 넘어서게 할 '새로운 언어'로 정의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후 필모그래피를 어떤 철학 위에서 쌓아나갈 것인가를 선언하는 출사표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 출사표의 약속은 <더 랍스터>를 지나 <킬링 디어>에 이르러 멋지게 완성됩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송곳니>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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