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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레아 세두 화보집 _ 어느 하녀의 일기, 브느와 자코 감독

그냥_ 2022. 4.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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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집사랑 눈 맞은 하녀가 주인집 털고 런하는 이야기입니다.

농담하지 말라구요? 감동 실화입니다만?

 

 

 

 

 

 

 

 

브느와 자코 감독,

『어느 하녀의 일기 :: Journal d'une femme de chambre입니다.

 

 

 

 

 

# 1.

 

좋게 말하면 당당하고 나쁘게 말하면 꼬장꼬장한 '셀레스틴'이라는 이름의 하녀가 시골 마을에 취업해 적당히 착취적이고 적당히 고생스러운 직업 생활을 보내다 15년 간 충직한 집사 행세를 했던 '조세프'라는 남자와 눈 맞아 불꽃 섹스를 즐긴 후 고가의 은식기 세트 낭낭하게 털어 부둣가 술집 마담으로 전직하는 이야기입니다. 중간중간 셀레스틴의 과거 회상과 이웃들과의 담소, 처참한 살인 사건 따위가 자극적으로 묘사되긴 하지만 주요 서사만큼은 말씀드린 것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죠.

 

이야기는 없다 봐도 무방합니다. 드라마 중에서도 특별히 인물에 집중하는 작품들이 취하는 방식이죠. 그래서 영화의 제목 또한 어느 하녀의 일기. 영화는 당당히 계단을 오르며 등장한 셀레스틴이 야밤에 몰래 도망치듯 마차에 숨어드는 이야기이자, 셀레스틴이란 여자가 이름을 잃고 '어느 하녀'로 추락하는 동안의 차가운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 2.

 

그녀를 둘러싼 각각의 인물들은 그 자체로 사건으로 작동합니다.

 

주변 인물들은 제법 입체적이고 매력적입니다. 마담과 주인, 하녀와, 집사와, 옆집 하녀와, 대위와, 병약했던 전 주인과, 그의 할머니까지 사회적 역할과 개인의 욕망이 충돌하는 모순에 몸부림치는 인격들이죠. 주인공 셀레스틴은 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신념과 자존과 정체성을 훼손당하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고 점검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며 삶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다다르게 됩니다.

 

 

 

 

 

 

# 3.

 

마담은 권위적입니다. 파리에서 떨어진 시골 마을 프로방스에 번듯한 저택과 다수의 하인을 거느린 부호죠. 고분고분하지 않은 셀레스틴에게 고의적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심부름을 시킬 만큼 고압적이고, 항상 같은 자리에서 책을 읽고 바느질을 할 만큼 보수적이고 감시적이며, 매일같이 수백 년 된 은식기들을 갈고닦을 정도로 과거지향적인 인물입니다. 이 인물은 구체적 개인뿐 아니라 당대 프랑스의 지배계급 일반의 일부분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로운 개인이기도 합니다. 은식기를 아끼는 동안에는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의 고통이 묻어납니다. 하녀에게 집적거리는 남편에게 '내 돈을 쓰지는 마라' 말하는 대목에는 단순한 돈에 대한 집착뿐 아니라 누적된 상처를 비롯한 다층적인 정서가 뒤엉켜 있다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은식기는 마님이 외로움을 투영하고 보상받는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은식기를 도둑 맞자 마님은 집사 조셉에게 집착합니다. 그런 조셉마저 떠나겠다 하자 모질게만 다루던 셀레스틴을 거짓말처럼 친구처럼 대하죠. 셀레스틴이 일을 그만두겠다 하자 급여 상승과 좋은 방을 제안하는 대목은, 마님에게 있어 은식기와 조셉과 셀레스틴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을 뿐 아니라 이들을 도구적으로 활용해 외로움을 보상받고 있지만 결코 충족될 수 없는 허무한 바람임을 의미합니다.

 

 

 

 

 

 

# 4.

 

주인은 음흉합니다. 경제권을 독점하고 있는 아내에게 사실상 더부살이 중이라 집안에서의 발언권이 없는 처량한 인물이기도 하죠. 마님의 첫 등장이 저택의 가장 화려한 공간 한가운데를 점유하는 모습이었던 것에 반해 주인은 복도 한켠에 치우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저택에서의 역학관계를 상징합니다. 하녀가 새로 들 때마다 치근덕거리다 못해 추행하기까지 하는 무례하고 불쾌한 인격임에는 틀림없지만 영화 내내 이 인물이 과연 마담과 같은 범주에 얽히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하인들과 같은 범주에 얽히는 것이 자연스러운가는 되짚어 볼 법합니다.

 

그가 눈부신 미모의 셀레스틴뿐 아니라 다른 하녀의 침실도 찾아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못생기고 뚱뚱한 하녀 말이죠. 하녀는 주인과 잠자리를 가진 것에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생겼을까 걱정한다는 것을 볼 때 폭력적이거나 지배적인 관계도, 그런 짓을 할 깜냥도 없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그의 욕망은 지저분하고 천박하고 불쾌하지만, 애처롭고 불쌍하고 솔직하기도 합니다.

 

 

 

 

 

 

# 5.

 

하녀는 나약합니다. 처음 셀레스틴과의 만남에서 질투심을 내비치지만 얼마 가지 못하죠. 그녀는 과거에 아이를 가졌다 낙태 한 경험이 있다 말하는데요. 실험실 쥐 나 토끼를 잡을 때처럼 아이를 지웠다 말하는 대목은 죄책감과 두려움이 뒤엉킨 깊은 트라우마를 엿보게 합니다. 앞서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그녀는 주인과 잠자리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주인을 귀엽다는 둥 사랑스럽게 묘사한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아이를 가졌을까 걱정하면서 주인은 귀엽다 말하는 모순은 이 인물이 타협하고 있는 바와 두려워하고 있는 바를 분명히 합니다.

 

옆집 하녀는 착각합니다. 그녀는 충분히 사랑받고 인정받고 권한을 부여받은 하녀는 집주인과 다를 바 없다 생각합니다. 타란티노의 장고에서 사뮤엘 L. 잭슨이 연기한 스티븐과 유사한 멘탈리티의 캐릭터라 할 수 있을까요. 주인인 대위가 죽으면 유산이 자신에게 상속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모습과 하녀의 신분 그대로 생을 마감하는 모순은 의미심장합니다. 그녀의 죽음 위로 대위가 악담을 퍼붓는 모습은 그녀의 착각을 더욱 비참하게 하죠.

 

대위는 이용합니다. 등장까지만 하더라도 짐짓 친절하고 베푸는 사람인 '듯' 보이죠. 하지만 그가 하녀에게 좋은 대우를 했던 건 그런 좋은 대우로 하녀를 소유하고 기만하고 있는 자신을 소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방금 전까지 이쁘다고 쓰다듬던 흰 담비를 보며 "키우는 담비를 먹진 않겠지?"라 묻자 몸통을 꺾어 죽인 후 집어던지고 저녁에 탕으로 끓이라 말하는 대목은 이 인물이 어떤 시선으로 하녀들을 대하고 있는지 다소 직설적으로 은유합니다. 하녀가 죽은 후 셀레스틴에게 자신의 하녀가 되는 것은 어떠냐 제안하는 장면은 어처구니없는 와중에 섬뜩한 맛이 있죠.

 

 

 

 

 

 

# 6.

 

셀레스틴은 이들 인물들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처음의 셀레스틴은 계급 시스템의 승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마님처럼 보이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위풍당당하게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소개되는 오프닝은 그녀의 욕망이 신분 상승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기차역에서 소중한 보물이라도 담긴 듯한 보석함에서 딜도를 꺼내는 마님을 비웃는 장면은 그녀의 야망이 부호의 보석함에 담긴 장신구가 되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병약한 전 주인과의 잠자리는 셀레스틴이 꿈꾸던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운명은 그녀의 꿈을 눈 앞에서 잔인하게 앗아가다 못해, 헛된 꿈을 꾼 셀레스틴을 잔혹하고 차갑게 강간당하는 모습으로 응징합니다. 이후 프로방스 저택의 여자들은 그녀에게 다양한 선택을 보여줍니다. 마님은 부유하고 권력적이지만 외롭고 불안한 권력층을 상징합니다. 하녀는 시스템에 순응하고 적당히 타협한 피지배계급의 모델을, 옆집 하녀는 시스템에 순응하는 가운데 최대한의 성공을 이룬 피지배계급을 은유합니다. 셀레스틴은 셋 모두에 실망하고 절망합니다.

 

 

 

 

 

 

# 7.

 

그리고 집사 조셉입니다. 15년 간 충직한 집사 노릇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하고, 목돈을 모으며 이후의 인생을 착실히 준비할 만큼 계획적이고, 결단이 서자 과감하게 주인집을 털만큼 냉정합니다. 셀레스틴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순간엔 더없이 솔직하기도 하구요, 수개월이 지난 후 혼자 재산을 챙기지 않고 셀레스틴을 찾아왔다는 점에서 (물론 모순적이긴 하지만) 정직하기도 하죠.

 

조셉은 계급으로부터 탈출한 자유인입니다. 여기서의 자유인은 가치중립적인 용어에 불과합니다. 유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보다시피 그는 도덕적이지 않습니다. 젊지도 잘생기지도 유능하지도 지적이지도 부유하지도 자상하지도 않죠. 하지만 셀레스틴은 그런 조셉을 선택합니다. 마차를 타고 떠나는 셀레스틴은 말합니다. “조세프는 악마처럼 날 사로잡고 구속했다. 그래서 행복했다. 그가 가자는 대로 가고 하라는 대로 할 것이다. 그게 범죄일지라도.”

 

달콤한 계급 상승은 없습니다. 계급은 그 자체로 모두에게 지옥이죠. 셀레스틴은 마님의 절친한 하녀 대신 부둣가의 술집 여자가 되는 것을 선택합니다. 설사 마님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차라리 악마처럼 사로잡고 구속하는 조셉을 따라가는 것을 선택합니다.

 

 

 

 

 

 

# 7.

 

작품의 아쉬움은 주변 인물 묘사와 그들을 관찰하는 셀레스틴의 정서 변화에 대한 묘사에 게으르다는 점입니다. 각각 파격적인 사건이 되었어야 할 등장인물들이 너무 기계적으로, 보다 정확히는 우화적으로 소화됩니다. 셀레스틴과 셀레스틴의 눈으로 보게 될 관객으로 하여금 충분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각각은 매우 단정적으로 정의됩니다.

 

캐릭터들은 원작에서 부여받은 설정 이상의 연출과 각본의 조력을 거의 받지 못합니다.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인가를 설명하고 나열하기만 할 뿐 탐구는 미비합니다. 특히 계급론에 기반한 사회적 역할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탓에 이에 반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순된 개인의 욕망과 갈등은 충분히 조명받지 못하고 있죠. 마님의 외로움과, 주인의 열등감과, 하녀의 트라우마와, 로즈의 허무한 죽음과, 대위의 욕망과 이들에 충격받고 갈등하는 셀레스틴이 충실히 묘사되었더라면 감상은 지금과 크게 달랐을 겁니다. 다른 모든 이들과 분리된 조셉 만의 시민성에 셀레스틴이 호기심을 느끼고 매료되는 과정에 보다 충실했더라면 감상은 또 달랐을 테죠.

 

인물로 풀어가는 드라마가 인물을 다루는 데 게으르다?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관객들에겐 레아 세두 영상 화보집이 되고 말았네요. 얼마 전 <하트 어택>에서 시나리오가 인물을 충분히 조력하지 못하다 보니 '이성경은 이쁘다' 밖에 남지 않은 영화라 말씀드렸었는데요. 이 영화 역시 '레아 세두는 겁나 이쁘다'만 남고 말았군요. 브느와 자코 감독, <어느 하녀의 일기>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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