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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얼음 사막 _ 겨울매미, 황비붕 감독

그냥_ 2021. 2. 1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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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이것은 믿기 힘든 이야기다.

불도저가 에디의 집을 허물었다.

달아난 저항군 무리가 에디의 집 표본을 만들었다.

무너진 집들에서 나온 벽돌과 도시에 산재한 다른 일상용품을 재료로 삼았다.

여름만 사는 곤충에게 얼음을 아냐고 묻지 마라.

 

제35회 홍콩영화 금상장 작품상 수상작 <10년>의 두 번째 단편입니다.

 

 

 

 

 

 

 

 

'황비붕' 감독,

『겨울 매미 :: 冬蟬』입니다.

 

 

 

 

 

# 1.

 

"이것은 믿기 힘든 이야기다."

 

근래 본 영화들 중 가장 쉬운 작품입니다. 서사는 서사라 부르는 것이 쑥스러울 정도로 단순합니다. 불도저에 의해 철거된 '에디'의 집을 박제하던 부부가, 결국 그들 자신마저 박제한다는 내용이죠.

 

박제[剝製]라는 단어를 사전에서는, <1.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그 안에 솜이나 대팻밥 따위를 넣어 살아 있는 모양 그대로 만든 표본, 또는 그렇게 만드는 기술 2. 썩지 않도록 일정한 처리를 거쳐서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지다>라 정의하고 있는데요. 박제가 영화 서사의 전부이듯, '황비붕' 감독이 비관적으로 그린 미래 홍콩의 모습 역시 <박제>라는 개념의 정의에 그 모든 함의가 담겨 있습니다.

 

# 2.

 

"여름만 사는 곤충에게 얼음을 아냐고 묻지 마라."

 

감독이 그린 십 년 후 이곳은 동물의 도시입니다. 가죽만이 남은 도시입니다. 이미 죽은 무언가들의 도시입니다. 눈부신 조명의 건물들이 남아 있는 듯 보이지만 허상입니다. 이 곳은 표본標本에 불과합니다. 위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속은 공허한 것만이 담겨 있습니다. 썩어 마땅하지만 썩지 않도록 일정한 처리를 거친 덕에 존재하고 있을 뿐입니다.

 

젊은이들은 박제하고 있습니다. 살아있음에 충만해야 할 젊은이들은 박제하고 있습니다. 이미 죽은 무언가, 썩어 사라지고 말 소중한 무언가에 대한 강박입니다. 그들의 눈 앞은 새로운 미래보다는 허물어진, 곧 허물어질 과거만이 가득합니다. 오늘은 비참하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분명 더욱 비참할 것이기에, 비참한 오늘이라도 영원히 보관해야 합니다. 박제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도 박제할 수밖에요.

 

그들은 오랜 시간 땅 속에서 버티다 이제야 꽃 피우려는 매미이지만, 얼어붙은 땅을 헤집고 올라선 세상은 겨울입니다. 주변엔 그 어떤 다른 매미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울음소리는 누구도 들을 수 없기에 울 수 조차 없었습니다. 겨울에 태어난 여름만 사는 곤충들은, 결국 녹아 사라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얼음을 박제합니다. 박제된 얼음 옆에 누워 자신의 날개에 핀을 꽂습니다.

 

 

 

 

 

 

# 3.

 

"오늘 밤도 같은 꿈을 꿨어."

 

반면, 근래 본 영화들 중 가장 어려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서사의 큰 줄기는 명쾌하나 이를 둘러싸고 있는 대사와 소재 마다의 문학적 메타포들이 다층적 해석과, 감각적 이해를 동시에 강요하기 때문이죠.

 

아내가 던지는 '인간이 잠자는 법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남편과 대화에서의 <잠>은 꿈으로도, 희망으로도, 삶으로도, 절망으로도, 결정된 미래로도, 동시에 사전적 의미의 잠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꾸는 꿈에 담긴 '에디'의 집은 허물어져 가고 있는 청년들의 현실을, 지진과 황무지는 홍콩에 불어닥친 겨울을 뜻합니다. 뉴질랜드의 호스텔은 '매미'들이 꿈꿨을 여름의 홍콩을, 교외 교도소를 재건한 호스텔은 겨울이 되어버린 홍콩을 의미할 테죠. 싱글베드는 고립을, 계속된 걸음은 두려움을, 미로와 같은 복도에서 서로를 잃은 두 주인공의 모습은 방황을 의미합니다.

 

# 4.

 

"오늘 아침, 날 완전한 표본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부부는 함께 박제하고 있지만, 두 사람이 박제라는 개념을 대하는 태도는 미묘하게 다릅니다.

 

아내는 집착합니다. 정확한 분류 하에 모든 것들을 보관하고자 합니다. 상자의 개수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분류 체계를 점검하고, 기록하는 쪽은 아내입니다. 아내의 박제에는 '지킨다' 혹은 '남긴다'는 개념이 일부 포함됩니다. 아내는, 비록 죽어버렸지만 그들이 쌓아온 과거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보다 정확히 전달되었으면 하고 소망합니다. 박제된 무언가라도 영원히 남아 전해지길 바랍니다.

 

남편은 체념합니다. 정확한 분류는 적어도 남편에게 있어서 만큼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지킨다'거나 '남긴다'는 목적을 위해 박제하지 않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자신을 박제해 달라 말했던 그날, 누군가를 위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라 말합니다. 그는 박제된 무언가조차 사라지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생각합니다. 그에게 있어 박제는 가장 살아있는 모습으로 죽는 것의 의미합니다. 박제되던 날, 체념은 깊은 심연 속에 가라 앉혀뒀던 희망과 분노를 토해냅니다.

 

 

 

 

 

 

# 5.

 

"우리가 때린 것 중 들리지 않는 외침을 낸 건 없었을까."

 

남편의 죽음을 박제한 아내가 홀로 남겨진 스스로를 박제하기 위해 머리를 자르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이 영화는 체념에 물들어갈 집착에게 들려주는 진혼곡입니다. 관객은 절망의 포로가 된 희망의 박제를 목격하게 됩니다. 잔혹한 장면이 하나도 없지만, 상당히 고통스러운 영화입니다.

 

도입에서 등장하는 가루들처럼 빛도, 색도, 온기도, 수분도 완전히 제거된 듯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감독이 진단한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작품을 한층 더 삭막하게 합니다. 젊은 감독이 상상하고 그린 미래라기엔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척박합니다. 이 정도면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 차라리 따뜻해 보일 지경이군요. '황비붕' 감독, <겨울 매미>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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