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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본격 점쟁이 체험 [앤트맨과 와스프, 페이턴 리드 감독]

그냥_ 2018. 8. 1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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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영화 깎는 노인이 되어버린 마블이 가족영화를 하나 깎아 왔습니다. 작아지고 커지는 히어로라니. 좀 심심하지 않나 하며 영화관을 들어선 전 반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영화의 히어로는 앤트맨이 아니더군요. 히어로는 당신입니다. 하다 하다 마블은 이제 관객을 예언 능력을 갖춘 슈퍼히어로로 만들려고 하나 봅니다.


이 영화는 마치 두 자릿수 덧셈을 수십, 수백 문제 나열하던 눈높이 문제집 같습니다. 아이들은 왜 이 빌어먹을 문제집은 줄지 않고 쌓이기만 하는가라는 전생의 업보에 대한 고찰을, 부모님은 이 애새끼는 누굴 닮아 이렇게 게으를까라는 존재적 회의를 하게 만드는 굉장히 철학적인 문제집이었죠. 새삼 너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걸 틀리냐 하던 어머님의 사랑의 손길이 다시 떠오르는군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몽둥이는 이젠 버리면 안 될까요?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두 자릿수 덧셈은 굉장히 고난도의 두뇌 활용을 요구하지만 다행히도 전 20살을 전후로 마스터하는 데 성공했거든요. 이번에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겁니다.









'페이턴 리드' 감독의
『앤트맨과 와스프』입니다.





문제집을 풀어봅시다.


영화는 웬 꼬마 아이의 눈높이에서 시작됩니다. 세상 자상한 어머니가 보이고 그 엄마는 일이 있다며 집을 나서더니 30년간 집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어쩐지. 4DX를 보는 내내 어디서 솥 채로 끓인 곰국 냄새가 나는 것 같더라니. 명심하세요. 엄마가 솥에 곰국이나 카레를 끓이시면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영화는 30년간 훌쩍 큰 딸이 앤트맨과 아빠의 스테레오 꼬장을 버티며 엄마를 구하러 가는 내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려나 봅니다. 자, 여기서 첫 번째 문제! 백인 레즈비언 남자와 흑인 게이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중국어를 쓰는 히스 페닉 아들인 가족을 만들고도 딸이 없다고 욕을 쳐 먹는 할리우드 가족영화에서 이 엄마는 구해질까요? 아니면 30년 만에 고생고생해서 양자 세계로 갔더니 엄마는 진즉에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을까요? (3점)


와스프의 엄마를 양자 세계에 처박아 두고 영화는 허겁지겁 앤트맨과 그 딸내미의 소꿉놀이 현장으로 카메라를 옮깁니다. 3층쯤은 돼 보이는 전원주택에서 놀고먹으며 심심하면 드럼치고 찝찝하면 거품 목욕하다 딸내미와 놀이기구를 만들며 놀아주는 우리의 불쌍한 앤트맨은 2년간 가택연금 중이라고 합니다. 불쌍한 앤트맨. 마음 같아선 제가 대신 가택연금을 당해주고 싶군요. 원한다면 당장에라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제 반지하 단칸방을 기꺼이 내 줄 겁니다. 슈트만 잠시 빌려준다면 말이죠. 가볼 데가 있거든요. 아, 많이 알면 다칩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가야만 하는 그런 데가 있어요.


가택연금 중에 발이 집을 삐져나가자 FBI가 득달같이 나타납니다. 그리곤 가택연금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 기간 중에 집을 벗어나면 수십 년간 감옥에 갇혀 살아야 하지만, 그런 얘기만 하면 관객이 이거 가족영화 아닌 거 아냐? 하고 놀랄까 봐 실없는 카드 마술 얘기까지 곁들입니다. 굉장히 노련한 설명충이 아닐 수 없죠. 역시 가족영화라면 절대 관객들은 놀라게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두 번째 문제! 우리의 앤트맨은 가택연금 기간 동안 밖에서 활동하던 게 걸려 인생은 실전이야, 이 딸내미야!라는 말을 남기고 감옥으로 갈까요? 아니면, 어쩌면 원래부터 1초 전에 멈추도록 만들어져 있는 건 아닐까 싶은 할리우드 산 시한폭탄처럼 FBI가 들이닥치기 직전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세잎 해서 가택연금이 끝나고 딸과 오순도순 살아갈까요? (4점) 


다음으로 넘어가죠. 와스프는 엄마 찾기 전용 내비게이션, 앤트맨을 주워 옵니다. 역시 가족영화의 묘미는 납치죠. 아이나 강아지는 안되지만 시꺼먼 아저씨는 기절시켜 납치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법이니까요. 비겁하게 혼자만 늙지 않는 동안의 내비게이션을 얻은 와스프는 다음 템을 파밍 하러 갑니다. 거래장소에 도착한 와스프 앞에 왠지 마더퍼커 장인과 친할 것 같은 보안관이 광활한 이마를 보이며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 악역 맞나요? 영화는 이 악역에게 아무런 대우를 하지 않습니다. 조명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대낮, 넓디넓은 홀의 한 귀퉁이, 우스꽝스러운 스타일, 원샷 한 번 제대로 주지 않는 연출까지. 그리고 혹시라도 관객이 이 악역에게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등장 직후 그와 그 부하들을 와스프와 고스트의 화려한 액션받이로 활용합니다. 자, 세 번째 문제! 프로페시아가 필요해 보이는 이 악역은 영화 막판 가면을 벗어던지고 와이 쏘 시리어스를 외치는 모든 이야기의 흑막으로 변모할까요? 아니면 앤트맨과 스와프와 고스트의 커지는 액션, 작아지는 액션, 안 보였다 보였다 하는 액션의 접수 셔틀로 쓰이다 마지막에 우스꽝스럽게 당하는 역할일까요? (3점)


이후 영화는 독재자처럼 모든 설정을 양자가 원래 그래! 이 장비는 원래 그런 거야!로 퉁치며 달려갑니다. 그런가 보다 하세요. SF 영화의 설정충과 싸워서 이길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당신의 머리채를 잡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동안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고스트의 정체와 과거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장면에 도착하실 겁니다. 고스트의 아빠가 무슨 연구를 하다 펑 하고 사고가 났고, 사고에 휘말려 부모가 눈앞에서 죽었고, 자신의 신체는 대단히 불안정해 물건과 접촉하기도 힘들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심지어 수명도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라는 건데요. 아, 그렇구나. 마지막 문제를 풀어봅시다. 우리의 그저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고아인 고스트는 와스프의 가족이 어와 둥둥 가족모임을 하는 걸 보며 죽을까요?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남을까요? (3점)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이 영화 역시 PC충에 찌든 할리우드 영화의 법칙을 벗어날 순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쉽나요?


자, 여러분은 몇 점을 맞으셨나요? 전 다행히 12점 만점을 받았습니다. 오랜만에 수능 점수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군요. 











안전하다 해야할 지, 지루하다 해야할 지


네. 냉정히 말하면 이 영화는 중반쯤에 서사라는 측면에서 완벽하게 스스로 자살해 버립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요. 고스트의 과거가 나오는 시점에서 결국 연구소를 차지하기 위해 와스프와 고스트, 소니가 우당탕탕 하는 사이 소니는 세 능력자의 액션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받아내다 우스꽝스럽게 리타이어 할 테고, 연구소는 결국 와스프에게 넘어갈 테고, 엄마도 무사히 데려 나올 테고, 고스트를 죽일 수는 없으니 그 엄마가 고스트를 살릴 테고, 그 와중에 앤트맨은 아슬아슬하게 집으로 돌아가겠죠. 


그리고 영화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 예상 그대로 흘러갑니다. 그 외에도 미제 양산형 영화에 나오는 조력자가 한 건하고 씩 웃는 모습, 아무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 인조의 만담과 역시 마지막에 한 건 하고 씩 웃는 모습, 지나치게 철든 애늙은이 같은 당찬 딸 따위의 클리셰도 쉴 새 없이 쏟아집니다. 영화 중간에 아담 샌들러가 튀어나오지 않는 데 감사함을 느껴야 했죠.


결국 이 영화는 양산형 가족영화의 클리셰에 마블식 액션을 버무린 영화로 정의됩니다. 사실 이런 평은 썩 유쾌하진 않지만 마냥 나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양산형 클리셰란 게 진부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익숙하고 공감하기 편하기도 하니까요. 그만큼 안정적이고 범용성이 높기에 클리셰가 될 수 있는 거겠죠. 액션이라는 측면에서는 훌륭합니다. 굳이 우주적 지구적 스케일이 아니더라도 그 규모와 상관없이 설정을 다채로운 상상으로 영상에 녹여내는 능력은 역시 믿고 보는 마블 영화답죠. 그래서 '가볍게 보기 좋던데?', '가족영화가 다 그렇지 뭐.', '아이들이랑 보기 좋았어요.' 같은 평이 나오는 거죠. 하지만 쿠키영상이 출동한다면 어떨까요? 쿠! 키! 영! 상! 











쿠키영상에 숨긴 빅엿


영화 말미의 쿠키영상 하나로 이 영화는 가족영화로써도 철저히 실패합니다. 세상에. 30년 만에 가족을 상봉시켜 놓고 잿더미로 만든다뇨. 결과적으로 와스프 부녀는 엄마를 굳이 꺼내서 죽인 꼴이 돼버렸습니다. 해체된 가족을 다루는 영화에서 꾸역꾸역 화해시키고 막판에 교통사고로 오순도순 하늘나라로 보내는 꼴이죠. 그 이유가 고작 다음 영화를 팔아먹기 위해서라는 게 더 같잖습니다. 


혹자는 이 영화를 마블 시네마틱의 쉼표와 같은 영화라 평하더군요. 네. 이 영화는 다른 마블 영화에 비하면 날아갈 듯 가볍긴 합니다. 근데. 그게 칭찬이 되나요? 이 영화가 시네마틱 유니버스 전체에서 그런 의의가 있는지는 몰라도 그런 맥락을 모르고 이 영화를 보는 누군가는 생돈을 내고 2시간짜리 쉼표를 봐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다른 마블 영화 안 본 사람은 할인이라도 해 줄 건가요? 다른 감독이나 작가들이 호구여서 한 작품에 기승전결을 녹이고 리듬감을 만드는 게 아니죠. 전 이 영화를 보며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를 떠올렸습니다. 트랜스포머가 '엉망인 이야기를 액션으로 때우는 영화'라면 앤트맨 앤 와스프는 '진부한 이야기를 액션으로 때우는 영화'니까요. 나는 오랜만에 아담 샌들러의 달걀 머리 느낌이 그립다. 혹은 어린아이와 함께 볼만한 영화를 찾는다. 혹은 마블 영화라면 덮어놓고 좋다 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면 글쎄. 딱히 권하고 싶지는 않은 영화, 앤트맨 앤 와스프였습니다.





참. 이 글에는 함정 카드가 두 장 있습니다. 영화에도 함정 카드가 적절히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는 "Daum 영화"와 "IMDb"에 공개된 이미지만을 활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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