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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는 걸까 ⅱ _ 라스트 데이스 오브 아메리칸 크라임, 올리비에 메가톤 감독

그냥_ 2020. 6.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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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는 걸까 ⅰ _ 라스트 데이스 오브 아메리칸 크라임, 올리비에 메가톤 감독

# 0. 적지 않은 영화들을 봐오는 동안 얕게 이해한 영화들도 잘못 이해한 영화들도 많았습니다만, 그래도 뭐 하자는 건지조차 모르겠다 싶었던 영화는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아무래도

morgosound.tistory.com

 

 

# 6.

 

'잭 모건'이라는 아저씨가 등장합니다. 집채만 한 성조기 때문에 대단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역시나 중요한 인물은 아닙니다. API 관리도 하는데 우회 프로그램도 같이 파는... 공무원 아저씨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WARNING 사이트 우회하는 VPN 같은 거 말이죠. 비밀 남친이 부패 공무원을 만나 쇼핑하는 동안 우리의 MIT 출신 천재 해커 누나는 위조지폐를 만들며 '선수 입장' 각을 잡습니다. 망작에 국경은 없습니다. 위 아 더 월드. 역시 세계는 하나였습니다.

 

느려 터진 영화가 1시간이 넘어서야 슬슬 '진행'이라는 걸 하려나 봅니다. '셸비'는 동생의 신변을 인질로 잡힌 FBI의 스파이였고, '브릭'은 멀찌감치 떨어져 이들의 접선을 목격합니다. '케빈'은 여친이 자기 정보를 팔아먹는 줄도 모르고, 철창 안에서 SM 코스튬을 한 리얼돌의 호위를 받으며 말 같잖은 개소리를 몇 번 시전 하더니 대뜸 여친 두피 마사지를 해줍니다. 웃통을 깐 채로 처음 보는 코 큰 아저씨에게 총 한 번 들이대는 허세를 부린 후, 정작 주인공에게는 굽신거리는데 보노라면 주인공에게 특별한 능력이나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목을 매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 7.

 

원통형 탄두를 얻기 위해 '케빈 아빠'집을 찾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 영화 가장 극적인 비밀이 공개되죠.

 

 

단발머리 미친놈 '케빈'의 병신짓은

가족력이었다.

 

 

... 아빠도 미친놈이고 동생도 미친년입니다. 아비는 아들이 데려온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들은 새엄마와 잠을 자고 뭐 그런 과거가 있다는데 너무 너저분해서 굳이 얘기하고 싶지도 않네요. 어찌어찌 화가 난 아빠는 아들의 배에 총알을 박아 놓고 아들은 아빠의 뚝배기에 낫을 꽂아 넣은 후 집안에서 바주카포를 갈깁니다. 직전까지 품에 안겨 뽀뽀하며 좋아 죽던 동생은 오빠의 어깨에 총을 갈기고, 빡친 오빠는 냅다 동생의 배에 총을 쏴 죽이는데 지가 죽여 놓고 왜 지가 슬퍼하는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영화 초반 '브릭'에게 원한을 가지게 된 '케빈 아빠'의 똘마니 하나가 주인공을 쫓아와 주먹질을 하는데요. 갑자기 1인칭 연출을 들이미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이전에 얜 왜 이렇게 마약쟁이처럼 역겹게 흐느적거리는지부터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기 분량 다 채운 엑스트라 1이 퇴장하고 영화 시작 주인공이 입에 시가를 물렸던 엑스트라 2가 '프레디 크루거' 분장과 함께 재등판해 잔망을 떫지만, 어느 누구도 주인공이 여기서 불에 타 죽기는커녕 화상조차 입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데 이걸 왜 쳐 찍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브릭'은 묶여 있으니 누가 구하러 오긴 해야 할 텐데 '케빈'은 총상 치료하러 갔죠. '셸비'는 잡혀 갔구요. 그럼 누가 구하러 올까요. 네, 주인공 전 남친인 코 큰 아저씨가 오겠죠. 정답!

 

 

 

 

 

 

# 8.

 

케빈 아빠집을 나온 이후 일련의 장면들은 서사를 위한 씬이 아닙니다. ⑴ 일인칭으로 카메라에 주먹질을 하는 그림과 ⑵ 버스가 불에 타 폭발하는 그림을 하나씩 따기 위한 얄팍한 속셈일 뿐이죠. 죽다 살아난 주인공이 '셸비'를 구출하기 위해 쫓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⑶ 카체이싱 그림 하나 따기 위한 개수작이죠.

 

상식적으로 주요 인물들은 API가 작동하는 순간까지는 리타이어 하기는커녕 헤어질 수조차 없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오기도 전에 공들여 만든 주요 캐릭터들을 퇴장시키는 건 자살 행위와 같으니까요. 위의 억지로 조작된 위기는 관객에게 말초적인 눈요기거리를 공급함과 동시에 남주와 여주의 치정을 끼워넣기 위해 억지로 밀어 넣은 장면에 불과합니다.

 

1시간 40분 만에 API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만세. 이 지겨운 영화도 끝나긴 끝나려나 보군요. 은행 털기 작전을 위한 모든 짐은 '셸비'의 미모와, '셸비'의 위조지폐와, '셸비'의 해킹 실력과, '셸비'의 몸싸움으로 퉁치는 동안 우리의 찐따 남친들은 부리나케 빤스런 해도 시원찮을 판에 서로의 뒤통수를 갈깁니다.

 

 

사실은 단발머리 '케빈'은

소시오패스여서 API 면역임!

 

 

이 감독이 준비한 최고의 반전이자 한방이라는 데서 자괴감이 몰려옵니다. 런타임이 20분이나 넘게 남은 마당에 주인공이 여주 얼굴도 못 보고 죽을 리는 없다 싶은 순간, 우리의 소시오패스는 FBI찡이 처치했으니 안심하라구! 웅? 킹치만 FBI찡이 히로인 '셸비'를 조지러 가는 건 어떡해? 그건 4000불짜리 소련제 스팀팩을 쳐 맞은 주인공이 처치했으니 안심하라구!!!

 

죽을 사람 다 죽었고 돈도 훔쳤으니 영화는 적당히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무식하게 큰 트레일러에 무려 천억 단위의 돈을 싣고 가는 데 국경만 넘으면 대충 무사하다고 퉁칩니다. 스팀팩을 맞은 주인공은 독박을 쓰고. 여주인공 '셸비'는 자신을 사랑한 두 남친을 발판 삼아 졸부가 되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 9.

 

장르경험을 기준으로 볼 때 이 영화는 API의 발동이라는 도미노가 멋지게 쓰러지는 것 하나를 보고 달리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작전의 시작'이라는 첫 번째 블록을 쓰러트리기 전까지는 설정을 풀어놓고 판을 차리기만 할 뿐, 서사적 진행이 있을 수가 없는 게 당연한 플롯이라는 거죠. 문제는 우리의 감독님이 이 블록 쌓기를 무려 1시간 40분 동안 하셨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총을 쏘고 섹스를 한들 본질적으로 지겨울 수밖에요.

 

앞서 제가 줄줄이 읊었던 갑툭튀 하는 고라니들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말했던 말초적 자극의 섹스와 키스와 가슴과 치정과 리얼돌과 원통형 탄두와 위조지폐와 해킹과 여동생과 MIT와 FBI 따위의 과잉된 아이템들은 모조리 이 도미노를 쓰러트리는 순간까지 늘어진 영화를 억지로 끌고 가기 위한 수작질인 셈입니다.

 

강렬하고 속도감 있는 계획 범죄로 승부를 보는 범죄 스릴러 영화들이 지루함을 탈피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상대적으로 작은 도미노들을 여러 번 쌓아 연쇄적으로 쓰러트리는 것이죠. '최동훈' 감독은 『도둑들』에서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마카오 카지노에서의 '태양의 눈물' 탈취 작전이라는 도미노를 빠르게 쌓은 후 중반부에 채 들어가기도 전에 쓰러트리고 그 장르적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있는 동안 줄타기로 시간을 벌면서 부산에서의 복수라는 도미노를 한번 더 쌓아 쓰러트리는 선택을 합니다. 두 번째는 영화 중반에 한꺼번에 쓰러트릴 도미노들을 여러 개 마련하는 겁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 풀 8』의 경우 실제 사건이 펼쳐지는 방아쇠는 중반부 독약을 먹은 교수형 집행인 '존 루스'의 죽음 하나뿐입니다만 대신 그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8명이나 되는 주인공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원한관계'라는 도미노들을 무수히 쌓아뒀죠. 세 번째는 당연히 영화를 짧게 만드는 겁니다. 준비한 도미노가 한방이니까 깔끔하게 30분 쌓고 30분 쓰러트리고 안녕! 인사하는 쿨한 단편 영화들처럼 말이죠.

 

문제의 이 영화는, 도미노는 단 하나뿐이고 그 하나의 도미노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가운데 영화의 길이는 2시간 30분에 달합니다. 답이 없죠.

 

 

 

 

 

 

# 10.

 

그래요. 몇 보 양보해서 API라는 도미노 하나로 승부를 보겠다는 무리한 계획을 인정한다 칩시다.

 

그렇다면 영화는 API의 작동을 막는 영화가 아니라 API의 작동을 회피하는 영화로 만들었어야 합니다. API는 정해진 시간에 작동되지만, 이러저러한 참신한 계획을 세우는 덕에 API라는 시스템의 약점이나 모순점을 공략해 은행을 터는 데 성공했다가 주요 서사였다면 그래도 설정의 참신함이라는 최소한의 동력은 살아남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감독은 여기서도 철저히 실패합니다. API의 작동은 절대적이라는 항복 선언을 스스로 하면서 시작한 영화니까요. 이 절대적인 시스템의 작동 자체를 막는 식으로 서사를 굴리다 보니, 뇌가 어쩌구 시냅스가 어쩌구 하는 설정은 모두 허망하게 사라지고 맙니다. 상식적으로 설정이 제 아무리 거창하다한들 작동이 안 되는 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영화 제목의 근거가 되는 핵심 설정인 API는 막말로 대충 정해진 시간에 발동하는 시한폭탄 따위로 대체되어도 영화를 풀어내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소재의 퀄리티 하나만 믿고 2시간 30분을 비비겠다고 덤벼드는 영화가 그 소재 하나조차 제 힘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다? 망해야죠.

 

# 11.

 

그럴싸한 아이디어를 내실 있는 설정으로 재구성하는데 철저히 실패합니다. 각각의 캐릭터를 만들고 관계를 구축하는데도 철저히 실패합니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단단한 설정이 없다 보니 몰입할만한 서사를 만드는 데도 실패할 수밖에 없고, 서사가 빈곤하니 연기와 연출 모두 무자비하게 길을 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남들은 온갖 얘기를 지지고 볶고도 남을 1시간 40분 동안 멍청히 도미노나 쌓는데 그마저도 완성된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는 데다 시원하게 쓰러지지도 않은 채 중간중간에 끊겨 나갑니다. 물론 이런 무지막지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단점은 미친듯이 긴 런타임이지만요. '올리비에 메가톤' 감독, 『라스트 데이스 오브 아메리칸 크라임』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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