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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실신 주의 _ 베리드,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

그냥_ 2020. 5.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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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압도적 콘셉트의 영화입니다. 파격적 발상의 영화입니다. 그 어느 작품보다 도발적입니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상황을 발견한 후 그 안에서의 심리상태를 추적하는 동안의 집중력이 어마어마합니다. 감독은 배우 한 명 섭외해 관짝에 냅다 집어넣는 걸로 무려 95분을 멋들어지게 비벼내는 데 성공합니다. 심지어 개봉 직후 선댄스와 토론토까지 훔칠 뻔했다죠. 꺼무 위키에 따르면 주인공 '라이언 레이놀즈'는 과호흡으로 7번이나 실신했다고 하는데요. 겨우 7번 밖에 실신하지 않은 배우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

『베리드 :: Buried』입니다. 

 

 

 

 

 

# 1.

 

노골적인 공간에 주인공과 관객을 한데 구겨 넣어 대단히 직관적인 몰입감을 유도하는 데 성공합니다. 한 발자국은커녕 몸을 일으킬 수도 없는 좁은 목관 속에서 펼쳐지는 숨 막히는 90여분의 시간. 불안하게 흔들리는 지포 라이터와 공포에 젖은 듯 창백한 핸드폰 불빛 따위의 질감이 물리적 상황과 관계적 상황 모두를 높은 밀착감으로 연결합니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관객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외면하고 싶을 정도의 불안과 공포로 몰아붙이는 영화의 흡입력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제한된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압도적인 자유도를 선사합니다. 막말로 홀로 공포에 오들오들 떠는 동안의 망가져 가는 정신 상태에 대한 심리극으로 갈 수도 있구요. 체념한 상태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드라마로 갈 수도 있구요. 함께 넣어놓은 전화기로 범인과 딜을 하는 협상물로 풀어낼 수도 있죠. 하지만 세상 창의적인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은 이 자유로운 운동장에다 무려 9.11을 풀어놓습니다.

 

 

 

 

 

 

# 2.

 

9.11과 이후 몇몇 전쟁들에 얽힌 미국인들의 집단적 트라우마라는 사회적 담론을 좁은 관짝 하나로 풀어내려 한다는 것에서부터 너무도 도전적이고 또 도발적입니다. 특히나 외국(스페인)의 감독이 말이죠.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로 멋있지 않으신가요.

 

감독은 ⑴ 개인적-물리적 공간과 개인적-관계적 상황과 ⑶ 집단적-역사적 담론이라는 각기 다른 세 층위의 정서를 큰 이물감 없이엮어 내는 데 성공합니다. 고차원적이고 사회적인 불안과 공포를 직관적이고 구체적인 불안의 레벨로 끌어내려 전달하는 데 성공합니다.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싶어 하는 영화라면 무턱대고 복사 - 붙여 넣기만 할게 아니라 이런 예술적인 맛이 있어야죠.

 

 

 

 

 

 

# 3.

 

아... 그럼 무조건 좋기만 한 영화냐구요? 설마요. 장점과는 별개로 워낙 파괴적인 콘셉트로 밀어붙이는 영화다 보니 부작용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물론 이건 감독의 '잘못'이라기 보단 기획단계에서부터 지불하기로 합의한 '비용'으로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해 보이긴 합니다만 의도와는 별개로 그런 감독의 선택을 관객이 수용해줘야 할 의무 따위는 어디에도 없죠.

 

런타임이 긴 영화는 아닙니다만 영화가 다루는 공간이나 콘셉트의 선명성에 비한다면 95분에 달하는 런타임은 솔직히 너무 깁니다. 물론 서사의 볼륨을 확보하고 주제 의식을 굴리기 위한 사회적 코드들. 이를테면 가장 사적인 영역인 가정에서 출발해 친구와 회사와 상황센터를 지나 국가 단위의 FBI와 미-국방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관계들을 소화하려다 보니 늘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알겠습니다만, 이 징검다리들을 지나는 내내 관객이 할 일이라곤 주인공과 함께 불안에 떠는 것뿐이라는 건 분명 문제죠. 런타임이 짧았다면야 작품에 몰입해 주인공의 감정을 '체험'을 하는 선에서 감상을 정리할 수 있지만, 부정적 정서에 충전된 시간이 한 시간 반에 달해 버리면 관객이 먼저 지쳐서 영화를 '포기'하거나 '외면'한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 4.

 

극단적 상황에서의 스트레스 그 자체를 다루는 영화다 보니 이 스트레스가 런타임에 정비례해 꾸준히 쌓이는 과정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데요. 문제는 전혀 해소되지도 않습니다. 안 그래도 무거운 영화가 현실성과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무자비한 결말까지 던지다 보니, 관객의 입장에선 스트레스가 꾹 누적된 상태로 덜컥 앤딩 크레디트를 봐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지는 것이죠. 구성에 대한 평가 기준이 높은 전문가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감정적인 경험을 중요시하기 쉬운 일반의 관객들로서는 그저 답답하고 짜증 나는 영화로 기억한다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입니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재미' 있으려고 보는 건데요. 이 영화는 그래서 '재미'있느냐?라는 질문에 쉽게 그렇다 답하기 어려운 면 또한 분명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창의적인 발상과 그 발상을 구현하는 뚝심이 돋보이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발상에 보다 고차원적인 메시지를 엮어내는 세밀함도 갖추고 있다 할 수 있죠. 감독은 주인공과 함께 '현실적 문제'라는 핑계를 대는 다른 영화감독들의 비루한 변명까지 모조리 땅에 파묻어 버립니다. 하지만, 동시에 메시지고 나발이고 너무 지치고 무겁고 피곤해 완주하기 버거운 문제작이라 할 수도 있겠죠.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 <베리드>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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