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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해부학 실험실 _ 비브르 사 비, 장 뤽 고다르 감독

그냥_ 2020. 1.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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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실험적이고 과감한 기법이 영화 전반을 지배합니다. 자유를 사랑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 무기력하게 몰락해가는 여인 ‘나나’의 삶이라는 핵심 서사보다 감독의 철학과 색체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뭐랄까요. 이를테면 영화적 기법들을 전시해 놓은 듯한 인상이랄까요.

 

지금의 기준에선 다소 작위적이고 촌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현대 영화들의 체계적으로 훈련된 표현들의 유려함에 비하면 당시의 기법이란 아직 제시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선명하고 뚜렷한 목적의식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장 뤽 고다르’ 감독,

『비브르 사 비 :: Vivre sa vie』입니다.

 

 

 

 

 

# 1.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기법과 효과가 1 대 1로 매칭 되며 그 작용 관계에 대해 진중하게 고찰합니다. 마치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호기심 어린 과학자의 실험기 같은 영화랄까요.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 보죠. 우선 인물의 설정보다 그 인물이 어떻게 화면에 담기는 가의 차이에 대한 고찰이 발견됩니다. 왼편의 얼굴과 정면의 얼굴과 오른편의 얼굴이라는 각기 다른 느낌으로 주인공을 소개한 감독은 정작 주인공이 누군지를 관객에게 설명해야 할 첫 번째 파트 대부분을 그녀와 그녀 옆 남자의 뒷모습에 투자합니다.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을 직접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취조와 같은 간접적인 방법들을 통해 표현하면서 그 순간 주인공을 고의적으로 역광 앞에 앉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내면을 영상적으로 묘사하는 장면도 있죠. 각기 다른 방식으로 투사된 인물에 대한 인상이 관객으로 하여금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형식논리적인 측면에서 분리해 관찰하는 대목입니다.

 

 

 

 

 

 

# 2.

 

피사체의 배열과 이를 담아내는 카메라의 위치와 구도에 대한 다양한 실험 역시 인상적입니다. 고정된 앵글 내에서 인물들을 좌우로 교체시켜 재배열한다거나, 단순한 대화 안에서도 말하는 인물을 순간적으로 앵글의 밖으로 밀어내며 대사를 내레이션과 같은 작품 밖의 중립적 논평으로 층위를 변주한다거나, 수평으로 길게 늘어선 공간에서 카메라를 좌우로 회전하듯 움직이며 롱테이크를 따는 연출을 통해 기존의 카메라가 담아내지 못했던 스크린의 물리적 크기 그 이상의 공간감을 구성한다거나, 말하는 사람이 보이는 동안의 대사와 보이지 않는 순간의 대사를 교차시킴으로써 그때마다 관객에게 전달되는 차이를 관찰한다거나 하는 창의적인 시도가 펼쳐집니다.

 

평범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사이에서도 카메라는 끊임없이 운동하며 구도의 변화에 따른 시각의 차이를 면밀히 관찰하기도 하고, 인물을 화면의 상단, 중단, 또는 하단에 놓아가며 상황마다 인물이 처한 사회적, 내면적 위치를 은유하기도 하죠.

 

극단적인 명함 차의 도발적인 활용이나 문을 넘나드는 동안의 문학적 영화적 의미에 대한 고찰도 엿볼 수 있구요. 과감하고 위태로운 사선의 구도와 그런 화면 구도를 통해 무의식 중에 느끼게 되는 불편한 정서를 인물의 상황과 심정 등에 연결시키는 방식도 발견됩니다. 영화 속에 다시 영화를 삽입하는 액자식 구성의 실험을 넘어 아예 갑작스레 독백극의 효과를 이식한다거나,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편지를 통해, 그것도 써둔 편지가 아니라 직접 쓰는 편지를 통해 메시지를 읽는 관객의 호흡의 속도를 조절해 보려는 시도도 보입니다. 이들 모두 시대를 감안하면 대단히 창의적이라 하지 않을 도리가 없죠.

 

 

 

 

 

 

# 3.

 

총격전이 벌어지는 순간 프레임을 고의로 뚝 떨어트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블러디 선데이>의 그것이 연상될 법한 날것의 현장감을 전달한다거나, 창부의 비극성과 대조되는 풍선 부는 꼬마를 연기한 팬터마임을 통해 희극 속에 숨은 절망감을 연출한다거나, 당구장에서 고객을 유혹하기 위해 추는 춤을 통해 토드 필립스 감독 작 <조커>의 계단 춤과 같은 타락하는 존재의 홀가분한 슬픔과 같은 것을 표현한다거나,

 

잔돈이 없다 미안하다 말하던 사람은 온 데 간데 없이 스스로 팁을 짜내는 창부가 된 ‘나나’를 통해 류승완 감독이 애용하곤 하던 돈을 활용한 내면 묘사를 연출한다거나, 손님에 의해 창부로서조차 밀려나버리는 장면을 통해 <문라이트> 첫 번째 파트 마지막에 보인 후안의 절망과 같이 비극에 비극을 더욱 끼얹는 효과를 기대한다거나, 박찬욱의 그것처럼 다채롭고 창의적인 미장센들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자유롭고 싶었던 한 여인의 삶이 끊임없이 하강하다 결국 모든 자유를 잃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역설적 주제에 대한 일관성을 결코 잃지 않는다는 점들 모두 인상적이죠.

 

노골적으로 전시되는 기법들을 볼 때마다 현대의 명작들이 능구렁이처럼 은근하게 지나가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명장면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히치콕의 <이창>이나 <현기증> 등에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은 데요. 이 영화는 히치콕의 명작에서 느꼈던 감각보다 한 단계 더 원형적인 것을 목격하는 느낌입니다.

 

 

 

 

 

 

# 4.

 

연출적 특성들 외에 특기할 만한 점은 주인공 ‘나나’는

포주에게뿐 아니라 감독에게까지 실험용 쥐라는 점입니다.

 

감독조차 한 발짝 떨어져 객관화된 시선으로 바라본 ‘나나’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선명성과 건조함이 주인공의 존재론적 고독감이라는 주제의식을 한층 강화하는 느낌도 드는군요. 단일한 주제가 영화 내적인 서사와 영화 외적인 연출과 감독의 개인적 의도를 넘어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누벨바그적 철학까지도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밖엔 달리 할 말이 없을 겁니다. 특정 조류를 대표하는 천재들의 다각적 치밀함이란 시대를 불문한다는 걸 증명하는 좋은 예 중 하나라 할 법하죠.

 

 

 

 

 

 

# 5.

 

배우 ‘안나 카리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네요. 씬마다 달리 적용된 영화의 기법에 대한 높은 이해와, 영화가 기법의 효과에 집중하는 동안 서사를 끌고 가야 하는 짐은 오롯이 배우가 짊어져야 했을 텐데요. 심지어 단독 주연, 심지어 1960년대, 그것도 그 당시의 여성 배우가 이 작업을 해냅니다.

 

본질적인 사랑스러움과, 이상적인 자유로움과, 그런 형이상학적 가치를 지향하는 동안의 순수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창부의 처절함과 현실의 무게에 휘둘리는 동안의 혼란스러움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영화가 파격적인 연출들에도 불구하고 비어 있다는 느낌 없이 몰입감 있게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배우의 힘이라 해야겠죠. 누벨바그의 여신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 6.

 

... 다소 과해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찬사를 보내긴 했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위와 같은 점들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시선에서 보면 당연히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60년의 세월이라는 게 만만한 게 아니죠.

 

때문에 지금 관객이 이 영화를 다시 보시려면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넓은 이해심과, 현대의 세련된 영화에 비해 둔탁할 수밖에 없는 연출에 대한 관대함과, 감독과 같은 수준의 영화라는 장르 그 자체에 대한 탐구욕이라는 준비물이 필요합니다. 런타임에 비해 다소 빈곤하고 평평한 서사와 누벨바그라는 기조에 복무하는 노골성이라는 장애물도 넘어서야 하죠.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나, 특정한 장르 혹은 배우, 감독보다는, 영화라는 분야 그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봐도 좋을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장 뤽 고다르’ 감독, <비브르 사 비>였습니다.

 

Rest in Peace. the Leading Lady of Nouvelle Vague

"Anna Karina" (1940 - 2019)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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