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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ction

떡밥 덩어리 _ 업그레이드, 리 워넬 감독

그냥_ 2019. 9.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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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떡밥입니다. 이 영화는 떡밥덩어리입니다. 떡밥의 떡밥에 의한 떡밥을 위한 영화입니다. 인물도 떡밥이고 서사도 떡밥이고 대사도 연출도 플롯도 설정도 몽땅 떡밥입니다. 배우 출연료를 떡밥으로 줬다 해도 믿을 수 있을 겁니다. 이 영화는 떡밥을 뿌릴 수 있는 데까지 뿌리고 그걸 수습하는 걸로 시나리오를 한번 조져보자! 라는 마인드로 만든 게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재밌냐구요? 네. 재밌습니다.

 

 

 

 

 

 

 

 

'리 워넬' 감독,

『업그레이드 :: UPGRADE』입니다.

 

 

 

 

 

# 1.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만약 1막에서 벽에 걸린 라이플을 소개했다면 2막이나 3막에서는 반드시 쏴야 한다."

"If you say in the first chapter that there is a rifle hanging on the wall, in the second or third chapter it absolutely must go off."

 

라는 말에 빗대자면 이 영화는 1막에서 '총'과 '스카이 콩콩'과 '분홍 소시지'와 '아이스링크'를 보여준 후 3막에서 '분홍 소시지를 입에 물고 총을 갈기면서 스카이 콩콩을 타고 갈라쇼 하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복선 아닙니다. 떡밥이죠. 감독은 단서들을 숨기거나 포장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샤말란의 작품들처럼 알게 모르게 힌트를 던진 후 마지막 반전을 듣고서야 '아! 그게 그런 의미였구나!'라고 깨닫는 영화들과 결이 다릅니다. '왜 저래?', '쟨 뭐야?'라는 식의 이물감이 팍팍 느껴지는 떡밥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가운데 정신 차려보면 어영부영하는 사이 의문들이 죄다 회수되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떡밥을 흩뿌리는 데 결말을 보고 나면 귀신같이 수습되어 있는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뭐 이딴 영화가 다 있나 싶은 데, 그럼에도 묘하게 매력적인 영화죠. 던져놓은 떡밥을 모조리 수습하는 걸로 이야기를 만든는 원칙 위에 서사를 세운 후 그 외의 부분에선 최대한 자유롭게 B급 감성을 폭발시킵니다. 온갖 막개그와 과격한 액션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합니다.

 

 

 

 

 

 

# 2.

 

오프닝입니다. 특이점에 도달한 세상임에도 주인공 '그레이'는 클래식한 연료 차량을 정비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요. 이것부터 떡밥입니다. 주인공이 클래식 차량을 정비하는 인물이라는 설정이 영화의 결말과 관련된 중요한 근거가 되거든요. 돈 잘 버는 마누라에게 얹혀사는 남자가 [베셀 컴퓨터]라는 글로벌 기업의 오너 '애론'과 친구인 것도 떡밥입니다. 나이나 경제력, 성격 어디 접점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두 사람이 친구가 된 것도 결말에서 설명됩니다.

 

애론이 도시에서 한참 동떨어진 시골 지하에 처박혀 산다는 점과, 컴퓨터 회사 오너가 굳이 기계식 연료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도 떡밥입니다. 이 이상한 설정 역시 결말에서 회수됩니다. 회사 오너라는 인간이 중2병 돋는 노랑머리 찐따라는 것도 떡밥입니다. 이 인물이 왜 이런 음습한 찐따인 건지 결말에서 드러납니다.

 

애론이 차량 리스토어 업자 그레이에게 굳이 극비인 슈퍼컴퓨터 '스템'을 보여주는 것도 떡밥입니다. 의도를 가지고 보여줬다는 걸 이후 설명합니다. 그레이 부부의 자율 주행 차량이 갑자기 고장 나는 이유도 결말에서 설명됩니다. 그레이가 사지 불구가 되는 것도, 아내 '아샤'가 죽임을 당해야 했던 것도, 그 과정에서 굳이 범인이 자신의 정체를 드론에 노출한 것도 모두 떡밥입니다.

 

상황을 80% 설명할 수 있는 경우의 수와 90% 설명할 수 있는 경우의 수로 관객을 유인한 후, 100%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를 결말로 제시하는 데 성공합니다. 여기까지가 딱 영화 시작 10분. 이후 몇몇 액션씬을 제외하면 서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와 같은 밀도로 떡밥이 계속 쏟아집니다.

 

 

 

 

 

 

# 3.

 

조금 더 가볼까요?

 

사건을 담당하게 된 '코르테즈' 형사의 설정과 대사 한마디 한마디 죄다 떡밥입니다. 수년째 집안에 틀어박혀 있던 애론이 굳이 별로 친해 보이지도 않는 그레이를 찾아가 스템의 이식해주고 아내의 복수를 꿈꾸도록 독려하는 것도 죄다 떡밥입니다. 스템을 이식하는 수술실 장면에서 수술집도의와 상관없이 천장 디스플레이에 X-ray 사진이 보이는 것도 떡밥입니다. 스템을 이식한 후 시종일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도 떡밥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날 그레이의 뒤를 잡는 독특한 카메라 워크도 떡밥입니다. 스템은 그레이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 말하는데요. 이식 수술을 받자마자 아직 CCTV를 보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스템은 이상한 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네, 이것도 떡밥이죠. 해상도가 제한된 드론의 CCTV에서 보일락 말락 한 콩알만 한 문신을 뚝딱 카피해내는 것도 떡밥입니다. 스템은 증거를 가지고도 경찰에 연락하지 않을 것을 설득하는데요. 물론 이것도 떡밥이죠. 여기까지가 30분입니다. 말씀드렸죠? 이 영화는 떡밥 그 자체라구요.

 

1시간 39분 동안 쏟아지는 떡밥을 모조리 이야기하려면 글을 한도 끝도 없이 써야 할 겁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떡밥인지 짚어가는 동안 넘치는 스포일러를 말씀드리게 되겠죠. 그러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영화를 보시고 나서 결말을 알고 있는 상태로 다시 영화를 '집중해서' 보시라는 점입니다. 아마 이 미친 감독이 관객 모르게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게 되실 겁니다.

 

 

 

 

 

 

# 4.

 

8할이 떡밥이라면 나머지 2할은 B급 감성으로 메워져 있습니다. 실내에서 구름을 만지는 중2병스러운 모습이라거나, 로봇 같은 움직임으로 펼치는 과격한 액션이라거나, 화장실에서의 싸움 후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그레이의 대사라거나, 감각을 껐다 켯다 하는 동안의 우스꽝스러운 동세라거나, 흰머리의 동양인 해커라거나, 기침 속 바이러스에 낫을 달아 날리는 장면 따위는 B급 감성 그 자체라 할 수 있죠.

 

특유의 직설적이고 폭력적인 묘사 또한 다채롭게 채워져 있습니다. 칼을 입에 물리고 당겨 머리를 찢는다던지, 유리병이 깨진 바닥을 뒹군다던지, 뾰족한 유리조각에 뚝배기를 내리친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죠. 영화의 뼈대는 떡밥을 회수하는 반전 스릴러로 이루어져 있다면, 뼈대를 감싸는 살은 병신 같지만 멋있는 싼마이 간지가 메우고 있습니다. 기가 막히네요.

 

분명 미묘한 불편함이 없잖아 있긴 합니다. 아무리 짧게 보여주고 넘어간다지만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묘사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말씀드린 B급 감성 특유의 밑도 끝도 없는 막개그도 나오고, 어느 쪽으로 상상하든 그것보다 더 무자비한 결말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위 문제들에 대한 내성만 있으시다면 이 영화의 재미는 결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리 워넬' 감독, 『업그레이드』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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