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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잼 ⅰ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그냥_ 2019. 3. 29.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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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모든 계획이 틀어졌습니다. 한 편만 보고 자려고 했는데 정주행 하느라 밤을 새웠습니다. 딱히 리뷰 할 생각이 없었지만 리뷰를 안 하곤 못 배기게 되었습니다. 적당히 몇 편만 골라야지 했습니다만 전부 다 하게 생겼습니다. 할 얘기가 많으니 간단히 말씀드리죠. 혹시 당신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시거나 사이버펑크를 좋아하시거나 귀여운 걸 좋아하시거나 로봇을 좋아하시거나 화끈하고 흥미진진한 걸 좋아하시거나 간결한 호흡의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이 앤솔로지는 보셔야 합니다. 넷플릭스 아이디가 있으신 분들은 당연히 보셔야 하구요. 넷플릭스 아이디가 없으시다면 어차피 첫 달은 무료니 아이디 만들어서라도 보세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 LOVE, DEATH + ROBOTS』입니다.

 

 

 

 

 

# 1.

 

무적의 소니, 데이브 윌슨 감독

 

서사에 주목할 점은 없습니다. 공포의 주체가 느끼는 공포라는 역설적 메시지 또한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진 않습니다. 지배적인 강렬한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곱씹어 볼만큼 가치가 있다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뼈대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서사나 메시지가 비어있어 좋습니다. 강렬한 색감과 음울한 분위기. 눈을 괴롭히는 광원 묘사. 환각을 불러일으킬 듯한 사운드. 폭력과 성애라는 말초적이면서 본능적인 감각의 향연 뒤로 묘한 공허함이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이젠 시대의 흐름에 밀려나버린 정통 사어버펑크의 디스토피아란 이런 맛이었다 보여주는 듯하죠.

 

 

 

 

 

 

# 2.

 

어두운 공간을 부분적으로 메우는 삭막하고 차가운 푸른빛과 광기와 본능의 붉은빛. 두 가지 빛의 교집합에 놓인 우울하고 절망적인 보랏빛이 분위기를 지배합니다. 유무형을 통할하는 인간다움이라는 광의의 인간성이 화려한 과학 기술에 의해 말살되는 광경이 정석적으로 연출됩니다. 최대한 인위적이게 보이려 노력한 듯한 조형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네요.

 

전반부 괴수 간의 대전은 끝내줍니다. 질감, 표현, 디테일. 액션의 동세와 합 모두 멋있습니다. 단순히 양덕이 만든 고퀄 눈뽕에 그치는 게 아니라 반전과 연계된 복선도 숨어있기에 되짚어 볼 여지까지 있죠. 만약 이 액션신이 없었다면 반전 하나만 믿고 달려가는 반쪽짜리 작품이 되어버렸을 겁니다. 후반부 에로틱한 성적 묘사에서 설마 빌어먹을 PC가 또?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만 우려와는 달리 훼이크였습니다. 다행이죠. 분위기와 액션에 치중한 전반부 연출과 이야기와 존재를 다루는 후반부 영역 간의 밸런스가 훌륭합니다.

 

깔끔한 스타트입니다. 앤솔로지의 첫 번째 에피소드로서 이 시리즈가 어떤 스타일로 굴러갈지 선언합니다. 남은 17개의 에피소드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끌어올려지는군요.

 

 

 

 

 

 

# 3.

 

세 대의 로봇, 빅터 말도나도 & 알프레도 토레스 감독

 

가장 말랑말랑한 에피소드입니다. 오래전 멸망해버린 인류의 유산을 세 로봇이 탐방한다는 이야기죠.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편안하고 귀여운 연출이 돋보입니다.

 

우린 언제나 인간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당연합니다. 우린 인간이니까요. 사람들은 스스로가 멸망하면 대단히 비극적이고 음울하며 절망적인 모습일 거라 생각합니다만 그건 오만한 착각이란 걸 위트 있게 표현합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중생대를 지배했던 공룡들은 온대 간대 없이 사라졌지만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그건 전혀 비극적인 일이 아니니까요. 공룡 화석과 관련된 세미나나 전시회에는 아이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죠.

 

인류의 생태에 대한 지식이 단절된 세상에 존재하는 로봇들이 인간의 문명과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평가하는 대사 하나하나에서 위트가 넘쳐흐릅니다. 억지로 웃기려고 만든 대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미 멸종한 '하등생물'을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연상됩니다.

 

 

 

 

 

 

# 4.

 

취식을 "흡입 구멍에 있는 삐죽삐죽한 못(치아)이 그걸 잘게 부순 다음 몸 안에 있는 산이 가득한 통(위)으로 보냈어."라 표현하는 대사가 재미있습니다. "그건 누가 설계한 거야?"라는 질문에 "불가사의한 신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흙으로 빚은 존재라서 그래"라는 종교적 농담 역시 뼈가 느껴지는군요. XBOT 4000이란 이름의 로봇이 전혀 다른 모습의 XBOT 3을 만나는 장면에선 진화론이 연상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XBOT 3의 버튼을 XBOT 4000의 비어있는 한쪽 눈에 넣는 연출은 앞선 설계자와 관련된 대사와 대조되며 감독의 개인적 견해를 조금은 직접적으로 표현한 장면입니다.

 

거대한 핵미사일 저장소에서 로봇은 말하죠. "인간의 군림을 끝낸 건 그들의 자만심이었어. 자기가 최고의 창조물이라고 생각하며 물을 오염시키고 땅을 죽이며 하늘을 질식하게 한 거야. 결국 핵겨울이 와서 멸망한 게 아냐. 그 전, 자만심이 가득하고 부주의했던 가을에 멸망했지." 그러곤 이내 그런 논평조차 "인간은 그냥 멍청이라서 망한 거야"라고 일축합니다.

 

에피소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역시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통렬한 조롱입니다. '인간도 언젠가 멸종할 수 있다.' 라는 가정에서 출발해 '인간 역시 지구를 스쳐 지나는 한 개의 종일뿐이다.' 라는 팩폭을 지나 '인간은 오만함으로 인한 핵전쟁과 환경오염으로 멸종할 수 있다.' 는 경고를 건너 '그 모든 것들은 결국 멍청해서 일어난 일이야.' 라는 멸시를 스쳐 '사실은 참치캔을 따줄 집사가 필요 없어진 고양이들에게 멸종당한 거야' 라는 코미디로 마무리됩니다.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할 수 있는 조롱을 모조리 쏟아부은 결과물을 다시 인간들에게 보여주면서도 그 인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게 만드는 솜씨 역시 예술적이며 동시에 풍자적입니다. 이런 게 블랙코미디죠. 누구나 욕할 수 있고 욕해도 되는 사람들만 골라가며 욕하면서 정작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나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들은 비겁하게 외면하는 것 말구요.

 

 

 

 

 

 

# 5.

 

목격자, 알베르토 미에르고 감독

 

왠지는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슬픕니다. 피 튀기는 살인 장면과 노골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이 속출하는 에피소드임에도 보는 내내 마냥 슬프더군요.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는 공허한 것에 대한 불안함입니다. 누가 봐도 구룡 성채가 떠오를 법한 어지러운 도시가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셀 수 없이 높이 쌓인 집들과 퇴폐적인 네온사인. 낡은 에어컨 실외기. 도시의 위태로움을 애써 숨기려는 듯한 색 바랜 분홍빛 페인팅이 억지로 공허함을 외면합니다.

 

등장인물은 목격자와 살인자뿐입니다. 드넓은 도시를 거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죠. 미로 같은 건물 깊은 곳에 숨은 스트리퍼와 포주들은 모두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짙은 화장을 하거나 검은 가죽을 뒤집어쓴 채 목적을 잃은 듯한 자태로 몸을 흔들어 댈 뿐입니다.

 

 

 

 

 

 

# 6.

 

중국 반환을 눈앞에 둔 시기의 불안함을 다룬 <아비정전> 류의 향수가 짙게 묻어납니다. 몇 안 되는 등장인물들은 등장하는 족족 약에 취해 섹스를 즐기지만 공허함과 불안감을 떨칠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습니다. 나체의 몸으로 거리 한복판을 내지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떨치고 싶지만 떨쳐지지 않는 불안함에 대한 발버둥이 느껴집니다. 위태로운 구도와 불안정한 카메라 워크, 찢어질 듯 이질적인 만화적 연출의 개입이 주제의식을 한층 강화합니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모호한 반전이 있습니다. 영화 속 상실의 도시를 상징하는 두 인물은 모두 목격자이면서 동시에 살인자입니다. 두 인물 모두 붙잡으려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벗어나려는 사람이죠. 역설적인 관계가 만드는 루프 속에서 두 인물이 공통적으로 가진 '공허함'과 '불안함'이란 정서는 끝없이 덧칠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자신이 죽인 목격자를 창밖에서 발견한 스트리퍼의 표정은 범행을 목격당한 살인자의 표정인 걸까요. 아니면 위태로움을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은 인간의 절망적인 표정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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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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