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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그저 사고였을 뿐(2025, dir. 자파르 파나히) : 복수를 기다리며

그냥_ 2026. 5.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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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황폐한 사막에 기대앉아 오지 않을 복수를 기다리며

 

 

 

 

 

 

# 1.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는 건 가해자의 논리예요. 차가 앞으로 가는 동안, 딸아이의 노랫소리에 묻혀, 개 짖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부역자를 태운 권력이 앞으로 가는 동안, 그들에게도 건사할 가족이 있었기에, 피해자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는 말과 다를 바 없어요. 에크발의 딸아이가 개 인형을 가지고 고개 드는 장면은, 등치 되어선 안될 개와 인간, 생물과 인형을 직접 연결한다는 면에서 썩 노골적이에요.

 

가해자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내적 논리와 선을 긋고 싶어요. 조금의 공통분모를 허락하는 것조차 너무 고통스러우니까요. 따라서 영화는 주인공에게 나의 복수는 너의 폭력과 다르다는 걸 증명할 것을 요구해요. 가해자의 저항도, 구출도 완전히 배제해 버린 이유예요. 피해자들이 자신의 내적 논리를 수립하는 과정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기에, 작품의 내러티브는 복수의 정당성에 관한 윤리학적 고찰과 다르지 않아요.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는 제목이지만, 오히려 '그저 사고여선 안 되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인 거예요.

 

아이러니한 건 이 영화가 '사고'에서 비롯된다는 점이죠. 에크발의 차가 우연히 고장 나면서 시작된 일이니까요. 바히드들의 복수는 태생적인 자기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던 셈이에요. 이후 에크발을 공격하고, 납치하고, 약 먹이고, 옷을 찢고, 파묻는 건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가해자의 폭력과 구별할 수 없어요.

 

복수자의 자기모순을 실증하고 있는 바히드이기에, 그는 어떻게든 '올바른 복수의 형식'이라는 답을 '찾아야만' 해요. 따라서 영화는 바히드가 깨달음을 얻으려 다양한 인간 군상을 스승으로 찾아 떠나는 고행기와 다르지 않아요. 바히드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은 바히드 모바셰리인데요. 연기하지 않을 때 택시를 운전한다는 그의 직업은 그래서 절묘한 느낌이 있어요. 때마침 자파르 파나히의 이전작 택시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구요.

 

 

 

 

 

 

# 2.

 

감독은 살라르의 입을 빌려 이미 답을 주고 있어요. 부질없는 짓이니 복수하지 마라 했잖아요. 윤리적인 차원은 아니에요. 완전하고 정의로운 복수라는 건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기에 실천 불가능하다는 뜻에 가까워요. 시바를 찾아 나서며 시작되는 고행은 구조적으로 실패가 예정된 탐색인 거죠.

 

개인적으로 살라르는 무슬림들의 예언자를 끌고 온 캐릭터라 이해해요. 사람들이 북적이는 서점 주인인 건 그가 지혜와 민중의 접점에 위치한 존재이기 때문이구요, 이 인물이 다시 등장하지 않는 건 일정한 거리감을 부여하기 위함이에요. 바히드는 몇몇의 장면에서 살라르를 거론하는데요. 길 잃은 신자가 예언자의 가르침을 되뇌는 것이라 이해하면 자연스럽죠. 살라르의 이름에 진절머리 내는 사람들의 반응은 폭정에 응답하지 않는 신을 향한 원망을 내비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정갈한 단발머리의 시바는 사진작가예요. 흔히 사진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것이라 생각돼요. 하지만 사진사의 주관에 독립될 수 없어요. 아무리 사진이 객관적이라 한들, 그 장소와 대상과 구도를 결정하는 건 언제나 카메라를 든 사람의 주관이니까요. 이성적 복수를 지향한다 하더라도, 그 복수자의 불완전성에서 독립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물론 완벽하지 않다 해서 실천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시바는 정의로우려 노력하고 있고, 내면의 수치심과 분노를 분리하려 애쓰고 있어요. 충동적인 응보 논리를 체화하고 있는 하미드와 결별한 것은 그런 의미예요. 그래서 자신이 내친 하미드를 다시 찾아간 장면에서 나뒹구는 시바의 모습에는 페이소스가 있어요.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 자파르 파나히 자신을 투사한다 이해해요. 자신조차 주관으로 세계를 인식할 뿐임을 고백한다는 면에서, 스스로의 내면조차 점검하고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그런 면에서 마지막 에크발을 매섭게 질타하는 장면은 섬뜩해요. 비극적인 붉은 하늘 아래, 내면 깊숙이 응축된, 타자를 규정하고 심판하려는 욕망을 토해내는 장면은 자신의 불완전성을 쏟아내면서도, 그럼에도 차마 살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윤리 경계를 보여줘요.

 

 

 

 

 

 

# 3.

 

골리는 고문 피해자이고, 알리는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 외부인이에요. 이들이 결혼한다는 건 과거를 생략한 미래를 의미해요. 그래서 알리는 계속 결혼 이후의 삶에 집중하자 말하고 있죠. 반면 골리의 입장은 달라요.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미래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과거를 만날 수 있는 거였다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가해자를 대면해야 해요. 시바가 정치철학적 복수를 의미한다면, 골리는 과거를 봉합하기 위한 실용적인 복수를 대변하는 셈이에요. 하미드는 앞서 이야기했듯 개인적이고 응보적인, 폭력적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진솔한 복수심을 대변해요.

 

이들 주변을 몇몇의 작은 배역들이 둘러싸요. 치안 요원, 주유소 직원, 의사, 간호사죠. 각기 다른 직업의 이들은 적어도 '돈'과 관련된다는 면에서 공통돼요. 치안 요원은 소란을 눈감는 대가로 뇌물을 요구하고, 주유소 직원은 혼사를 핑계로 팁을 요청해요. 한편 의사는 위급한 임산부의 안전을 대신 책임졌구요, 간호사는 정당한 노동에 보상을 요구했어요. 사실 이들 모두에게 바히드의 무리들은 '그저 사고였을 뿐'이에요. 다만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달랐을 뿐이죠. 사고는 우연히 벌어질 수 있지만, 그 사고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고, 복수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각자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져야 해요.

 

사막이에요. 황폐한 사막 한가운데 죽은 나무에 기대앉아 오지 않을 복수를 기다리는 모습은 작품의 철학을 미술 하는 근사한 미장센이에요. 완전한 복수라는 이름의 고도를 기다리며 침잠하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의 주제의식을 모조리 통할해요. 사운드가 전면에 대두되는 영화이지만, 이 공간만큼은 너무나도 근사해 칭찬하지 않을 수 없어요.

 

 

 

 

 

 

# 4.

 

영화의 결말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끝내 에크발의 정체는 알 수 없다는 거예요. 피해자들은 에크발의 소리와, 냄새와, 피부를 만지지만 그가 요원인지는 알 수 없어요. 인간이 진실을 안다는 건 그런 것이고, 인간이 정의로운 복수를 실현한다는 것도 그런 거예요. 일련의 불확실성은 존재하지만 위치하지 않는 소리의 불확실성으로 감각화 되어, 복수를 꿈꾸는 인물들과 관객들을 괴롭혀요.

 

그럼에도 모두는 최선의 답을 찾았어요. 하미드는 떠나고, 골리와 알리는 태어난 아기를 생각하며 미래로 나아가요. 시바는 자신의 정의를 자신의 윤리가 지지하는 한도 내에서 실천했고, 바히드는 살라르의 조언처럼 에크발을 풀어주죠. 복수의 연쇄를 끊은 거고, 보통의 영화라면 그것에 성공한 이들은 과거에서 도약해 미래로 나아갔어야 해요.

 

하지만 자파르 파나히는 끝내 바히드를 편하게 두지 않아요. 그의 뒤로 의족 딛는 소리를 길게 뽑으며 영화는 끝나요. 이때 바히드가 느낄 불안은 에크발의 정체와 무관해요.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에크발의 것인지 아닌지와도 무관해요. 진실과 무관하게 바히드는 소리를 평생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을 것이고, 시바가 기억하는 냄새와, 골리가 기억하는 목소리와, 하미드가 기억하는 촉각도 그러할 거예요. 한 번 벌어진 폭력은 복수하든 복수하지 않든 회복 불가능하다는 것. 피해자들이 피의 복수를 하지 않는다 해서, 가해자들의 잘못이 경감되는 건 아니에요.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Netflix, Tving, WatchaPlay, CoupangPlay, Appletv,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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