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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굿 보스 (2021, dir.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그냥_ 2026. 5.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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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캠페인 따위로 해결될 거였다면 난제라 부르지도 않았다.

 

 

 

 

 

 

# 1.

 

말쑥한 정장. 단정한 헤어. 높은 단상에 오른 기업가가 연설하며 시작하는 영화는 보통 자본가를 놀리는 영화예요. 실제 대다수의 관객과 비평가 역시 주인공 블랑코의 위선을 조롱하는 블랙 코미디라 이해하고 있고, 그건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블랑코는 스페인의 한 지방도시에서 산업용 저울을 만드는 공장의 주인이에요. 그는 자신의 회사가 우수기업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에 한껏 고무되어 있어요. 공장을 실사하러 올 심사위원들을 맞이할 '쇼'를 치밀하게 준비한다는 게 이 영화의 스토리 전부죠. 카리스마와 감언이설을 겸비한 블랑코는, 심사위원단이 공장에 방문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정확히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도록 직원들의 사생활까지 간섭해요.

 

블랑코의 좌충우돌 소동기는 순탄치 않아요. 해고 직원 호세는 공장 밖에서 농성해요. 귀청이 터질 듯한 확성기로 블랑코의 부정을 비난해요. 생각지 못한 분란에 블랑코는 신고하고 청탁하고 회유해 보지만 마음이 다친 호세는 받아들이지 않아요. 오래된 직원 미라예스는 수년간 블랑코의 뒷수습을 떠맡은 것에 대한 원망과 결혼 생활의 위기로 흔들려요. 미라예스에 대한 블랑코의 해결책은 스트립 클럽으로 데려가는 것, 인턴 여직원과 잠자리를 연결해 주는 것이에요. 더럽죠.

 

결혼 생활은 권태로워 보여요. 대신 새로 들어온 매력적인 여성 인턴과 외도하는데요. 그가 뺀질나게 손대 온 일회성 관계들의 연장선에 있을 것이라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거겠죠. 문제는 인턴 릴리아나가 오랜 친구의 딸인 줄 몰랐다는 거예요.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상은 물론이고 회사도 위기에 빠질 테니, 해결해야 해요.

 

블랑코는 겉으로는 세련돼 보이고 유쾌해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의 부도덕이 점점 드러나요. 그는 회사를 가족, 직원을 자식이라 부르며 가부장적 배려를 늘어놓지만, 그의 경영 방식은 언제나 일방적인 냉혹함을 전제해요. 블랑코는 충성심을 가족애로 치환하고 있고, 입버릇처럼 나를 사장으로 대하지 마라 말하지만, 우리는 정말 '사장으로 대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죠. 그의 이름처럼, 그가 실천한다는 원칙은 화이트워싱일 뿐인 거예요.

 

결말에 이르러 이 모든 문제들이 한 자리에 모여요. 노동자와 이민자와 빈곤층이 폭행당하고 실직하고 죽고 절망하는 동안, 이너 서클은 서로의 치부를 볼모로 견고해져요. 마지막 늘어진 상패가 하나 추가되며 눈물짓는 모습은 블랙 코미디의 전형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말이죠. 정말 이 영화는 블랑코'만' 조롱하고 있는 걸까요? 그게 전부인 걸까요?

 

 

 

 

 

 

# 2.

 

사실 블랑코를 단순히 위선자라고만 보기엔 애매해요. 자신의 행위를 도덕적 언어로 포장하는 데 능한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굿'하게 보이려는 의지가 느껴지진 않거든요. 만약 그가 위선자라면 그는 자신의 도덕성을 더 적극적으로 과시했어야 해요. 그리고 그 과시적인 도덕성 뒤로 빼돌리고 있는 실질적인 이익을 들춰냈어야 해요.

 

하지만 최종적으로 그가 얻은 건 고작 우수기업상의 상패뿐이에요. 여기서 중요한 건 감독이 상패를 실익으로 환원해 주지 않았다는 거예요. 블랑코가 상패를 보며 우는 장면은,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블랑코'가 아니라 '상패'라는 뜻이에요. 그는 '상패가 대변하는 가치'의 '충직한 종복'에 불과해요.

 

그래서 영화 내내 주인공이 '운전'하는 거예요. 이 인물에게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기업가를 투사하고 싶었다면, 막 대하는 운전기사를 하나 붙이는 것이 연출적으로 편리하지만 감독은 그러지 않아요. 오히려 이 영화에서 차에 태워 모시고 다니는 존재들,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다니는 사람들은 따로 있어요. 상을 주는 심사위원들이죠.

 

블랑코는 우수기업상을 받고 싶은 티를 낸다는 면에서만큼은 진실되요. 이후로도 그것에 거짓될 생각이 전혀 없고, 그건 전지적인 관객뿐 아니라 작중 부하 직원 모두 알고 있어요. 주인공의 전사와 타 회사와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영화이기에, 블랑코의 캐릭터성은 완전히 '우수기업상'에 종속될 수밖에 없어요. 때문에 도입에서 블랑코는 직원들을 가족이라 부르며 가부장적 배려를 늘어놓지만, 스스로 사상검증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무엇보다 마지막에 블랑코가 울잖아요. 나는 그 눈물이 거짓된 눈물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 3.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라는 게 있어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뜻인데요. 필자는 이 영화가 그 문화적, 제도적 캠페인의 실효성에 대한 조소라 독해해요. 영화의 제목은 굿 보스. 블랑코를 굿 보스라 결정하는 건 우수기업상이지 블랑코 본인도 직원도 관객도 아니에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는 '불가해성'과 '불확실성'이라는 개념을 의인화한 인물이었잖아요. 마찬가지로 굿 보스의 블랑코는 CSR의 논리 구조가 정당화해 주는 좋은 기업가라는 이미지, 그 '상'의 의인화라는 해석이에요.

 

영화의 서사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저울 접시 위에 있던 오물을 치우고 대신 접시 아래에 총알을 숨긴다'는 거예요. 영화를 기업가의 위선으로 이해한 사람들은 그걸 개인의 비열함이라 해석했다면, 나는 그것이 CSR의 실체라 이해해요. 당장 오물에 손대는 블랑코는 매우 불쾌해해요. 기업가들도 CSR이 싫어요. 하라니까 할 뿐인 거예요. 상 준다잖아요. 그래야 회사 운영된다잖아요.

 

CSR이 요구하는 겉모습을 철저히 실천한 끝에 기업에는 젊은 여성이 고용되고, 이민자가 승진되고, 노동자가 존중받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그 '균형의 거래' 끝에 얻은 사람과 잃은 사람이 극명하게 구분되고, 그것은 지극히 계급적이라는 게 이 영화의 숨겨진 결말이에요.

 

태만한 캠페인이 잔인한 현실 앞에 얼마나 쉽게 굴절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예요. 감독은 '위선적인 기업가를 비판한다'라기보다, 위선을 생산하고 보상하는 구조 자체를 비판해요. 블랑코는 그 구조를 가장 능숙하게 수행하는 인간형일 뿐인 거구요. 관객이 불쾌한 이유는 그가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 적잖이 정상적이기 때문인 거예요.

 

오해하지 않아야 해요.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다는 '발상'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실효적이지 않다는 거예요. 캠페인은 아무 문제도 고치지 못해요. 고작 캠페인 따위로 바뀔 문제였다면 애초에 문제가 아니었을 테니까요. 자본주의의 모순과 구조적 불균형은 그런 캠페인 따위로 가릴 수 없다 주장하는 영화라면, 더 강력한 대책을 촉구하는 셈이니 생각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영화일 수 있어요.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Netflix, Tving, WatchaPlay, CoupangPlay, Appletv,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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