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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Mystery & Thriller

추락의 해부 (2024, dir. 쥐스틴 트리에): 그림자놀이

그냥_ 2026. 5.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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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이미지와 사운드가 추락한 설원에 드리운 진실의 그림자

 

 

 

 

 

 

# 1.

 

'해부되는 추락'은 둘이에요. 사무엘의 육체와, 가족이라는 관계죠. 전자의 해명을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 진짜 해부되는 건 후자예요. 아무리 법정 논쟁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남편의 죽음이 달라지진 않고, 남편의 죽음을 둘러싼 해석의 총합으로서 가족의 추락에 대해 해부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쥐스틴 트리에의 스릴러는 사건과 해석, 사실과 진실에 대한 영화인 거예요.

 

직관적인 시각적 인상은 새하얀 설원 아닐까요.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백색의 공간은 모든 흔적을 보존할 것만 같아요. 파고의 설원이 그러했던 것처럼요. 그렇지만 허상이에요. 그런 숨김없는 설원에서의 사망 사건조차 진실은 알 수 없어요. 설원은 모든 것을 보관하긴커녕 생각보다 빠르게 녹아 사라지죠. '사실'이란 그런 거예요. 한편 백색과 대립하는 검은색이에요. 시각장애인 아들 다니엘이 바라보는 세계죠. 소년이 쓰고 있는 선글라스도, 그가 세계를 인지하는 마킹 테이프도 모두 검은색이에요. 청각적인 검은색도 불완전하긴 마찬가지예요. 다니엘은 거짓말하지 않았지만, 소년의 증언은 마냥 신뢰하기 힘들어요. 영화는 불완전한 백색과 불완전한 흑색, 불완전한 이미지와 불완전한 사운드를 병치하고 있어요.

 

진실은 흰색과 검은색의 교집합에 위치한다는 거예요. 새하얀 설원 위에 떨어진 그림자죠. 그럼 그림자는 완전해 인간의 불확실성을 해소해 줄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그림자는 쉐입을 보여주지만 그 안의 디테일과 텍스쳐까지 담아내진 못하잖아요. 그림자놀이 기억하시나요? 우리는 손을 이리저리 빚어 비둘기 모양과 토끼 모양을 만들 수 있지만, 어차피 모두 손일뿐이에요. 그 그림자를 보고 비둘기를 연상하거나 토끼를 연상할 뿐이고, '진실'이란 그런 거예요. 감독 스스로 오마주를 밝힌 것처럼 오토 프레밍어의 살인의 해부나, 빌리 와일더의 검찰 측 증인, 시드니 루멧의 12인의 성난 사람들, 잉마르 베리만의 결혼의 풍경 같은 영화가 함께 거론되곤 하는데요. 그럼에도 이 영화는 라쇼몽의 계보 위에 있어요.

 

 

 

 

 

 

# 2.

 

재미있는 건 개 스눕의 색이에요. 이 개는 검은색 바탕에 하얀색 무늬인 건지,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 무늬인 건지 알 수 없고, 이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알 수 없는 것과 같아요. 그 외에도 스눕은 사무엘과 강하게 연결돼요. 아스피린을 삼켜 위험해진다거나, 아버지가 아들에게 개의 훌륭함을 설명하는 장면도 그렇죠. 오프닝에서 계단을 굴러 떨어지며 가속하는 공(결혼 생활)에 이끌려 아래로 추락하는 스눕의 동선도 남편의 사고를 암시하는 복선이에요. 남편의 죽음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존재라는 것도 그래요. 외에도 영화 내내 방황하고 주시하다, 마지막 아내 옆에 눕는 장면은 모두 개와 남편을 노골적으로 연결하고 있어요.

 

보통 이미지는 사실이라 받아들여져요.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죠. 때문에 여타의 영화들은 이미지를 통해 진실을 투영하는 동안 사운드로 보조하거나 병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죠. 즉, 이미지와 사운드가 서로를 끌어올리는 거예요. 하지만 이 영화에선 그렇지 않아요. 영화 내내 이미지는 어떤 진실도 대변하지 못하고, 심지어 사운드에 의해 논박당하기 일쑤죠. 사운드는 이미지와 같은 위계로 격상되지만 그럼에도 그도 진실을 대변하진 못해요. 법정 스릴러답게 영화는 무수한 증거와 증언이 오가지만 어떤 것도 진실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고, 이는 산드라가 반복적으로 항변하는 내용이죠. 이미지와 사운드가 서로를 끌어내려 추락한다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의 미학적 성취예요. 들을 수 있는 아들은 보지 못하고, 모든 것을 염탐하고 있는 개는 말하지 못해요.

 

그럼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진실은 '존재'하거나 '검증'되는 것이 아니라 '결정'되는 거예요. 그림자놀이도 만드는 사람이 우기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그것을 상상할 때 의미가 생기잖아요. 언어도 그래요. 영화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혼용하는데요. 그 사람이 어떤 말을 쓸 수 있느냐가 아니라, 듣는 사람이 어떤 말을 들을 것인가가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결정하죠. 결국 모두가 '어떻게'를 논하는 동안 다니엘은 '왜'를 논하며 아버지의 자살을 증언해요. 그것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에요. 긴장감 넘치는 작품임에도 무력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죠.

 

사실이 아니라 결정이 진실이 된다는 거예요. 도입부 조에와의 인터뷰에서 작가 산드라가 직접 말한 논증이자, 증인을 보호하던 감찰요원 마르주가 다니엘에게 건넨 조언이죠. 재미있는 건 산드라의 직업이에요. 그녀는 작가고, 작중에서 그녀의 인생과 생각은 작품에 투사된 것으로 표현돼요. 이 영화 역시 쥐스틴 트리에의 편린들이 녹아있다 고백하는 것과 같으니, 결정이 진실이 된다는 건 단순히 이 영화의 논증이 아니라 감독의 작가론과도 연결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 3.

 

감독의 의지가 그러하기에, 추락의 해부는 관객인 '나'의 결정을 이야기하지 않고 논할 수 없어요. 이 영화는 진실이란 주관에 열려있다 말하는 영화가 아니에요. 그래서 당신은 무엇을 '결정'하고 있는가 질문하는 영화고, 그것이 하나하나 진실이라 말하는 영화이기 때문이에요. 좋아요. 이제 제 생각을 이야기해 보죠.

 

필자는 산드라가 사무엘을 우발적으로 살해했다 '결정'했어요. 강조하건대 이건 나의 결정일뿐이에요. 누군가는 남편의 자살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틀린 것이 아니고, 영화를 잘못 본 것은 더더욱 아니에요. 그럼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한 걸까요. 이 결정이라는 것이 이기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기 때문이에요. 증인들 각각은 사무엘의 친구든, 상담의든, 산드라의 팬이든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이기심으로 결정했어요. 다니엘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이미 가족을 잃은 아들에게 아버지의 자살은 가장 이기적인 선택일 뿐이라는 거예요.

 

이때의 이기심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실용적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엄마를 보호하느냐, 고아원으로 가느냐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의 인상을 회복해 가족을 강제로 화해시킨다는 면에서 '이미 상처받은'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에요. 오프닝에서 계단 아래로 추락한 스눕을 다니엘은 다시 위층으로 불러요. 그리고 싫어하는 개를 억지로 물에 집어넣어 씻긴 다음 냄새를 맡죠. 실패 끝에 추락한 아버지를 회복해 그의 존엄을 세탁하는 것이죠.

 

그래서 산드라 역시 억울한 것보다 이기적인 것이 영화의 내적 논리에 일관된다 생각해요. 다만 계획 살인이라고까지 생각하진 않아요. 계획 살인이 되어버린 순간, 남편은 물론이고 하나뿐인 아들까지 수단삼았다는 전제를 요구하는데, 내가 이해하는 이기심이란 어쩔 수 없는 무의식 같은 것이지, 윤리적 타락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결정'하고 결말을 다시 보면 기분이 묘해요. 죽은 아버지(스눕)를 다시 엄마의 침대에 데려다 놓은 다니엘의 이기심과, 과거 다정했던 남편과의 추억으로 마음 편히 돌아간 산드라의 이기심이 겹쳐지는 동안, 죽은 사무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거니까요. 서늘하죠.

 

 

 

 

 

 

# 4.

 

마침내. 남편을 죽이는 아내를 결정함으로써, 필자인 나의 이기적인 결정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사소하지만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어요. 재판에서 승소한 후 변호사 뱅상과 산드라가 회포를 푸는 씬이죠.

 

나는 두 사람이 키스할 거라 생각했어요. 여자는 외도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고, 지금 막 남편과의 문제를 완벽히 종료했고, 지켜보는 사람도 없는 상황이니까요. 아내의 도덕성에 대한 나의 불신이 삐져나온 것이죠. 하지만 뱅상과 산드라는 키스하지 않고, 그 장면을 끝으로 뱅상은 다시 등장하지 않아요. 앞서 나는 산드라가 사무엘을 살해했다 '결정'했지만, 그 진실 역시 편협하고 이기적인 결정일뿐이라는 게 폭로되는 맛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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