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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프로젝트 헤일메리 (2026, dir. 필 로드, 크리스토퍼 밀러): 과학자의 감수성

그냥_ 2026. 4. 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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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빛과 소리를 조화롭게 하는 과학자의 감수성

 

 

 

 

 

 

# 1.

 

괴짜들이나 볼 법한 조악하고 엉성한 펄프 픽션.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 이후 SF는 한동한 컬트적인 서브 장르였어요. 사실 초기 SF는 판타지의 하위 분과였기에 과학은 마법과 다를 바 없었거든요. 재미의 초점 역시 과학적 정합성이나 경이로움보다는, 몇몇의 시각 효과에 의존한 스펙터클에 맞춰져 있었죠.

 

위대한 큐브릭, 스필버그, 루카스가 등장하며 SF는 메이저 장르로 도약해요. 장르의 잠재력이 대중신화적 요소와 결합되어 날개를 달기 시작한 거예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SF도 고도로 지적인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작품이었죠. 스타워즈는 SF가 메인스트림의 주인공을 넘어 세계적인 문화현상이 될 수 있게 만들었구요, 미지와의 조우와 E.T. 는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SF가 얼마나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확인했더랬죠.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를 필두로 사이버 펑크가 유행하며 장르는 철학적으로 보완돼요. 점점 더 넓은 외부 세계를 향하던 장르 문법이 내부로 눈을 돌리게 된 거예요. 이전까지의 SF는 저 멀리 무엇이 있는가 물었는데요. 그런 과학의 세계에서 인간 영혼은 무엇인가 물음으로써 인문학적 깊이를 확보했고, 이후의 무수한 SF 영화들은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아요.

 

현대는 말해서 뭐 하겠어요. 인터스텔라, 마션, 그래비티처럼 SF를 단순한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서사의 핵심 동력으로 삼는 걸작들이 만들어져요. 컨택트나 언더 더 스킨처럼 철학적인 질문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영화들도 있었구요, 그녀나 팟 제너레이션처럼 새로운 기술이 일상에 녹아든 모습을 다룬 영화들도 등장해요.

 

 

 

 

 

 

# 2.

 

과정에서 SF는 점점 어려워졌고, 진지해졌고, 육중해졌어요. 그것이 주는 매력이 상당하다는 건 앞서 짚은 영화들의 완성도가 보증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적 사고가 가진 본질적인 경이로움이 점점 소외되어 왔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어요.

 

당장 퍼스트맨이나 에드 아스트라, 엑스 마키나 모두에서 과학은 인간 내면을 은유하기 위한 조건 내지 수단으로 전락해요. 아무리 창의적이라 한들 결론은 언제나 인간 승리와 인간 예찬으로 귀결되었죠. 물론 그것을 과학의 내면화라 정당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글쎄요. 옹색한 변명이라 생각해요. 과학은 몇몇 클라이맥스 장면에서의 시청각적 스펙터클을 자신의 지분으로 배당받을 뿐이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죠.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과학적 사고의 경이로움이 전면에 대두된 SF에요. 장르에서 기대하는 경이감을 우주적 스케일이 아니라 지적 발현의 순간에서 찾아낸 영화. 문제에 대처하는 순간 하나하나가 클라이맥스로 기능한다는 면에서 공학적 감수성이 짙은 작품이에요. 어떤 면에선 SF 영화를 볼 때면 진지한 입시 시험을 앞둔 것마냥 긴장해야 했던 현대 관객의 피로감에 대한 반작용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래서 그레이스는 용기로 충전된 히어로가 아니에요. 과학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훈련한 과학자일 뿐이에요. 결말은 지구로 귀환해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죠.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전 인류를 구원한 위대한 영웅의 연설이나 담대한 회고가 아니라, 빛의 속도가 얼마냐는 질문인 건 영화의 성격을 분명히 해요.

 

맹렬히 손드는 에리디언 학생들은 도입의 인간 학생들과 다른 모습이지만 같은 존재들이에요. 수미상관적인 영화로 인해 달라진 건 없다는 거예요. 그레이스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이지 다른 사람이 된 것이 아니에요. 마션의 와트니나 그래비티의 스톤 박사는 집으로 돌아왔음에도 새로운 사람이 되었지만, 이 영화의 그레이스는 다른 곳임에도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는 건 흥미로운 대비예요.

 

 

 

 

 

 

# 3.

 

주인공은 우주선에서 기억을 잃은 상태로 등장해요. 플래시백은 유년기가 아닌 임무의 시작부터 출발하죠. 인물의 정체성이 곧 과학적 임무 그 자체인 거예요. 여타 인문학적 SF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그리운 가족도 없고 돌아가야 할 사연도 없어요. 이례적일 정도로 드라마가 제거된 주인공은 정보의 측면에서 주인공과 완벽히 동기화된 인물인 거예요.

 

이후 주인공은 한걸음 한걸음 자신의 국적과 직업과 상황을 추론하는데, 그 과정을 논리적으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요. 사실상 과학자의 직업 정신을 의인화한 것과 다름없는 그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력할 뿐이죠.

 

대표적인 장면은 역시나 로키와의 조우예요. 행성의 위치를 표시한 모형으로 최초의 소통을 시도한다거나, 몸동작을 따라 해 평화적인 시그널을 교환하는 건 논리적이에요. 우주의 언어로서 수학을 첫 소통의 매개로 삼는다거나, 우주의 균질성과 등방성에 입각해 시간을 징검다리 삼는 장면은 과학적이죠. Voyager Golden Record를 만든 칼 세이건이 이 시퀀스들을 봤다면 아주 흡족해하지 않았을까요.

 

여타의 영화에서 외계인은 충동적이고 공격적이잖아요. 생각해 보면 이상한 거거든요. 그쪽도 굳이 수고를 감수해 탐사에 나섰다면, 최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연구자가 사절로 등장하는 게 당연할 테니까요. 그 역시 상당히 긴장 상태에서 인간을 경계하면서도 상대의 경계심을 누그러트리려 노력할 것이라는 게 훨씬 자연스럽죠. 대항해 시대, 해적을 다룬 문학의 관습이 기계적으로 이식된 영향일 텐데요. 그걸 담대하게 재고한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면이 있어요.

 

이처럼 과학적 문제 해결 프로세스 자체가 작품의 드라마를 상당 부분 대신해요. 대부분의 SF가 과학을 결과로 소비한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사고 과정 자체가 지적 유희로 환원되어 있어요. 감정을 끌어올려 과학적 세계로 견인했던 인터스텔라와 반대로 논리적 사고의 축적이 자발적으로 감정을 발생시킨다는 건데요. 방향은 정반대지만, 관객의 지성을 깊이 신뢰하는 영화라는 면에서만큼은 놀란과 같다 할 수 있겠죠.

 

 

 

 

 

 

# 4.

 

앤디 위어의 원작은 추론 - 가설 - 실험 - 결론(수정)이 무한 반복되는 구조였는데요. 그것이 영화화 과정에서 상당 부분 희생된 것은 아쉬워요. 그나마도 몇몇의 시퀀스에 지나치게 압축되어 있고, 타협에 대한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도 있어요.

 

특히 언어 문제를 지나치게 축소하고 지나가버리는 건 아쉽죠. 컨텍트처럼 완전히 언어학적인 영화를 만들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계 놓고 1, 2, 3 배우다가 갑자기 프리 토킹이 가능한 단계로 넘어가면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테마가 따로 있다면야 바벨 피시처럼 영화적 타협이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를 텐데요. 이 영화는 스스로 단계적인 과학적 방법론에 주목하는 영화잖아요. 과학적 태도를 취하면서, 정작 가장 복잡한 문제(언어)를 회피한다는 건 적잖이 뼈아프죠.

 

후반부는 픽사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만 같은 버디 무비, 아니 어쩌면 라라랜드 못지않은 로맨스 무비로 흘러가요. 이런 영화에서 라이언 고슬링의 캐스팅은 반짝반짝 빛이 나죠. 협력과 우정, 용기와 희생, 신뢰와 사랑은 얇고 넓게 깔려 영화를 떠받쳐요. 그래도 의미가 있는 건 관계가 협력을 이끄는 게 아니라, 협력이 관계를 만든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이 관계가 타락하는 건 절대 아니죠.

 

 

 

 

 

 

# 5.

 

앞서 과학 이성이 전면에 대두된다 했지만, 그렇다고 인본주의적 알레고리가 전혀 없다는 건 아니에요. 당장 주인공의 편도 여행만 하더라도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삶을 축약한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개체의 일생을 두고 종과의 관계를 논한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레이스와 로키 모두 어쨌든 종을 위해 희생이 요구된 개체고, 동승자가 모두 죽었다는 설정은 이 개체적 속성을 크게 강조해요. 클라이맥스의 선택 역시 개체와 종 사이의 갈등이죠. 이러한 종과 개체의 관계는 다시 절대성과 상대성이란 개념으로 확장되고, 그것은 그레이스의 빛과 로키의 소리로 물리화돼요.

 

눈이 그렁그렁한 그레이스는 시각적인 존재고, 사물을 소나처럼 탐지하는 로키는 청각적인 존재예요. 고도화된 지성체이면서도 로키들이 빛의 속도나 방사선, 상대성 이론에 접근하지 못한 건 그들이 소리적인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빛은 언제나 광속으로 이동하는 절대적인 것이지만, 소리는 매질에 따라 왜곡되는 상대적인 거예요. 대신 절대적인 빛은 모퉁이 너머에 닿을 수 없지만, 상대적인 소리는 모퉁이 너머에 얼마든지 닿을 수 있죠.

 

물론 옳고 그른 건 없어요. 로맨스 영화라니까요. 그레이스가 없었어도 로키가 없었어도 실패했을 거예요. 빛과 소리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건 우스운 거예요. 개체의 희생이 상수가 된 종이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종이 절멸한 세계의 개체도 의미는 없어요. 우주는 절대적 진리로만 이루어져 있지도 않고, 모든 것이 상대적인 채로 부유하고 있지도 않아요. 우리 인생도 그렇구요.

 

우주선이 분리되고 회전하며 인공 중력을 만드는 모습, 내다본 우주의 전경, 압도적인 클라이맥스의 표현처럼 영화 속엔 경이로운 이미지가 가득하잖아요. 오아시스의 샴페인 슈퍼노바, 헤리 스타일스의 사인 오브 더 타임스, 비틀스의 투 오브 어스 등 경이로운 사운드도 가득하죠. 그것들이 경쟁하거나 택일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해 하나의 거대한 '헤일 메리'가 된다는 면에서 영화의 연출 미학은 그 자체로 작품의 주제의식을 실천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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