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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Mystery & Thriller

블루 루인 (2013, dir. 제레미 소니에): 복수의 색조

그냥_ 2026. 4.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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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처연하고 서늘하지만 그 끝에 묘한 안도감이 든다

 

 

 

 

 

 

# 1.

 

우선 ruin부터 생각해 보죠. '폐허'라는 명사적 의미와 '파멸시키다'라는 동사적 의미가 같이 있는데요. 감독은 두 의미를 거의 구분하지 않아요. 남의 집에서 씻고 나온 드와이트는 시작부터 사회적으로 정서적으로 ruined 된 상태에서 출발하고 있고, 복수하면서 타인과 자신을 계속해서 ruin 시키고 있죠.

 

그 앞에 blue가 붙어요. 우울, 침잠, 냉각 같은 감정의 톤이죠. 실제 영화의 폭력은 전혀 뜨겁지 않아요. 아버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폭발한다기보다는 이미 식어버린 감정이 관성처럼 흘러가는 느낌에 가깝죠. 대사는 극도로 절제되어 있고, 건조한 정적은 감정이 조금이라도 발화하려 할 때마다 꺼버려요. 드와이트가 돌아다니는 공간들, 버려진 집이나 차 안도 전부 주인공의 blue를 물리적으로 확장한 것처럼 보여요.

 

그러니까 blue ruin은 우울한 폐허, 차가운 파멸 정도가 될 거예요. 이때의 파멸은 여타 비극처럼 수렴되는 종착지는 아니에요. 일반적인 복수극에서 파멸은 결과지만, 제레미 소니에의 복수는 조건에 가까워요. 감정의 색조만 짙게 던져둔 셈이랄까요.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흘러가겠지만, 이미 게임은 끝났고 승패는 무의미해요.

 

보통의 복수극 주인공은 유능해요. 시작부터 아예 폭력 전문가거나, 최소한 점점 숙련되기라도 하죠. 반면 드와이트는 철저하게 서툴고 우발적이에요. 저나 당신처럼요. 폭력은 효율적이거나 깔끔하긴커녕 자기 자신을 계속 망가트리는 데요. 덕분에 영화의 긴장감은 일반적인 스릴러와 정반대에서 형성돼요. 보통은 '성공할까?'를 궁금해하는데, 여기서는 '언제 망가질까?'를 보게 되거든요. 서스펜스의 방향이 완전히 반전된 셈이죠.

 

 

 

 

 


# 2.

 

손쉽게는 감성적인 반-복수극처럼 보여요. 어쨌든 복수가 모든 것을 망가트리는 영화니까요. 그치만 흥미로운 건 인간 행위에 대한 꽤나 냉소적인 시선이에요. 적극적으로 복수를 부정하고 있긴 한데, 옳고 그름을 따지는 윤리적 차원은 아니거든요.

 

영화 속 폭력은 그 어떤 의미도 조직하지 않아요. 망가진 채로 굴러가는 차처럼, 버려진 폐가처럼 말이죠. 이건 이상한 거거든요. 보통 복수는 서사적으로 정당화되잖아요. 원인-동기-실행-해결이라는 인과의 사슬이 꽉 붙잡고 있어야, 그 레일 위에서 관객도 주인공을 따라갈 테니까요. 반면 드와이트의 동기는 분명하지만, 이전의 원인도, 이후의 실행도, 마지막 해결도 전혀 조직되지 않아요. 실수하거나 우발적이거나 모르거나 나약하거나 한 상황이 계속 끼어들어 인물의 복수 서사를 계속 망가트려요.

 

'현실의 복수는 그런 거야'라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기엔 현실 묘사를 썩 등한시하고 있거든요. 때문에 더 근본적으로 인간은 자기 행위를 통제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받아들였어요. 저는 이 영화가 상당히 강력한 결정론적인, 혹은 비관론적인 인생관을 갖고 있다 생각합니다. 인간은 선택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고 그에 책임진다던 샤르트르보다, 세계는 맹목적인 의지의 발현이고 개인은 그것을 통제하지 못한 채 끌려다닌다던 쇼펜하우어적인 영화랄까요.

 

 

 

 

 

 

# 3.

 

드와이트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불완전한 정보 위에서 행동하고, 그 결핍은 비극을 증폭시켜요. 이런저런 내막을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이 결핍 상태는 전혀 해갈되지 않죠. 다른 영화였다면 감독이 나서서 결핍을 교정해주기도 하는데요. 그런 것도 없어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원수의 아들이 총 들고 뒤로 돌고 있다는 걸 드와이트는 모르고, 이후 홀로 살아남은, 직전까지 '사람을 죽일 수 없다'던 그 아들이 드와이트의 누이에게 복수할지 말지도 모르죠.

 

지식이 결핍된 상태니까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도 성립할 수 없어요. 뭘 알아야 잘 선택하든 잘못 선택하든 하죠. 그냥 선택이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허망한가를 보여줄 뿐이에요. 드와이트가 더 현명했다면, 더 강인했다면, 더 침착했다면 달랐을까? 아닐 거라는 거예요. 그 가정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허망하다는 거예요. 개인의 능력이나 판단이 아니라, 이 시스템 자체가 예측 불가능성과 통제 불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거예요.

 

알 수 없고 선택할 수 없으니까 이야기도 없어요. 사실 복수라는 건 서사적으로 완결성이 엄청 높은 구조거든요. 인과도 명확하고, 감정의 방향도 쏜 화살처럼 일원화되니까요. 그런데 블루 루인은 이 서사적 완결성이 맹렬히 거부된 영화예요. 사건은 간간이 발생하는 데 그것들이 의미 있는 이야기로 통합되지 않으니까, 말하자면 '이야기처럼 보이는 어떤 것'이 버려진 폐허처럼 있는 거죠.

 

 

 

 



# 4.

 

이 모든 것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윤리적 고양감이란 red 대신 blue를 느낀 이유예요. 영화는 그저 검푸른색 공백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어요. 드와이트는 복수를 통해 자신을 정의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 공허해질 뿐이에요. 복수는 목적처럼 보이지만 그저 소진시킬 뿐이라는 것. "왜 살아?"라는 질문에 "복수"라 답하는 순간 끝난 거예요.

 

'복수는 나의 것'이라잖아요. 박찬욱의 것도 있고, 이마무라 쇼헤이의 것도 있는데, 개인적으론 후자를 더 좋아해요. 어쨌든 두 작품 모두 생각이 났어요. 복수를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자신을 황폐하게 했던 그들을 말이죠.

 

점점 더 냉소적인 세상이다 보니 복수를 경고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윤리선생님의 공염불처럼 생각되는 것도 같아요. 저라고 해서 울분이나 복수심에 자유롭지도 않고요. 그래서 복수를 윤리 밖의 영역에서 다룬 영화가 특히 인상적인 것도 있어요. 이 카타르시스 없는 복수극이 주는, 처연하고 서늘하지만 동시에 이상한 안정감 같은 것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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