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결국 설득의 문제

세바스티앙 드루앙 감독,
『콜드 미트 :: Cold Meat』입니다.
# 1.
폭설에 고립된 차 안에 사이코패스와 단둘이 갇혀버린 여자의 스릴러. 살인마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표,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윤리적 제약, 답이 보이지 않는 추위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 동안, 인물들은 선택을 강요받게 되고 그것이 서스펜스로 환원된다는 원리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인물 간 힘의 균형. 이를테면 한쪽이 우위를 점하려는 순간 새로운 위협이 개입한다거나, 결착이 날 법한 시점에는 협력 혹은 배신이 강제된다거나, 아예 외부 변수가 내부 관계를 꾸준히 교란하는 모습들은 익숙한 장르 문법일 것이다.
콜드 미트의 문제는 이 균형이 얼마의 서스펜스를 만들어보기도 전에 무너진다는 점이다. 겁도 없이 정찰 나간 데이비드의 다리가 부러지더니 자신이 납치한 애나에게 역으로 제압당한 순간, 두 인물 사이의 긴장은 완전히 소거된다. 장르적 자살. 애나는 더 이상 그를 경계할 필요도, 협력할 필요도 없기에 선택할 것이 없고, 때문에 서스펜스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감독은 간헐적으로 상황을 만들어 긴장을 복구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가령 방심한 애나가 볼일 보러 나간 사이 데이비드가 문을 잠그는 씬. 혼자 죽을 수 없었던 애나가 창문을 깨며 상황 변화를 시도해 보지만, 그조차 테이프 바르는 걸로 무마되기에 아무 효과가 없다.

# 2.
스스로 스릴러를 제거한 감독은, 그 자리를 수다스러운 대화로 대신한다. 몇몇의 윤리적 논쟁, 데이비드의 플래시백, 유년기 모성과 관련된 감정적 고백 따위다. 이런 요소들은 보통 주제 영화들에서 기능한다. 예컨대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처럼 대놓고 윤리 논쟁을 벌이는 영화라면, 대화 자체가 긴장이 될 수도 있다. 스릴러라 하더라도 대화로 밀어붙일 수 있다. 저수지의 개들이나 헤이트풀 8처럼 장시간의 긴장을 오직 대화만으로 끌고 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들의 경우엔 대화가 곧 권력 게임이기 때문이다. 반면, 콜드 미트의 셋업은 윤리적 주제의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물리적 위협과 투쟁하는 스릴러고, 본격적으로 수다스러워지는 순간 역시 인물 간 힘싸움이 종료된 이후다. 어떤 대화를 나누든 애나와 데이비드의 권력관계가 바뀔 수 없으므로, 관객은 긴장감보다 '영화가 멈췄다'는 느낌을 먼저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일련의 장르 전환 자체가 매력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살인마를 무력화한 것으로 스릴러의 경험은 완전히 종료된 것이고, 이후 영화는 심리 드라마로 이동한다는 변호다. '당신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던 데이비드의 대사, 뒤바뀐 입장과 과거의 단서들은 전환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이 관점에서 두 인물은 더 이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니라 동일한 조건 속에 놓인 존재가 된다. 극한의 상황에서 과거의 폭력과 죄책감은 재평가되고, 서로를 죽이고 싶었던 두 사람이 생존을 위해 체온을 나누는 아이러니가 강조된다.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교차, 그것을 표현하는 두 배우의 연기를 즐기는 영화라는 것. 일련의 예측 불가능성이 결말부 오컬트적 전환으로 터져 나온 것이라는 논리다.

# 3.
결국 설득의 문제. 장르 믹스를 개성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중심 테마의 부재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에서, 안타깝게도 필자는 영화의 방법론에 설득되지 않았다. 아무리 다양한 장르적 시도를 감행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한 가지 축은 확실히 잡았어야 했다는 생각. 인간은 극한 상황에서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는 어떻게 뒤집히는가, 생존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것은 정당한가. 무엇이든 상관없지만, 영화는 구심점이 되어 줄 수 있었던 그 모든 가능성을 조금씩만 건드리고 지나가 버린다.
설득되지 않은 관객에게 결말의 오컬트적 해결은 개성이라기보다 돌연한 이탈일 뿐이다. 지옥행 특급 택시의 하데스나, 트라이앵글의 타나토스처럼 운명을 신적 존재처럼 다루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런 영화들은 고유의 세계를 미리미리 준비해 둔 작품들이다. 반면 콜드 미트는 피해자들의 이름을 줄줄이 나열하듯 현실적인 생존 스릴러라 주장하다 마지막에 갑자기 전제를 뒤집어버린 꼴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제 어떻게 수습하지?'라는 제작자의 고민이 드러난 순간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애나가 재난과 살인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온몸 비틀기 하고 있기도 하지만, 감독 역시 장편 영화를 성립시키기 위해 온몸 비틀기를 하고 있다 평한다. 보통 저예산 영화는 제한을 미학으로 바꾸는 순간 힘을 얻는데, 드루앙 감독의 영화는 그 제한을 감추려다 오히려 불안정해지고 말았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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