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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도감작 _ 러브 앤 몬스터스, 마이클 매튜스 감독

그냥_ 2026. 3. 28. 06:30

 

 

# 0.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은~) 내 꿈을 위한 여행 (피카츄~)

 

 

 

 

 

 

 

 

마이클 매튜스 감독,

『러브 앤 몬스터스 :: Love and Monsters』입니다.

 

 

 

 

 

# 1.

 

태초 마을은 안전하지만 성장은 없다. 마을 NPC 조엘은 깨어있지만 잠든 척했던 것처럼, 이미 죽어버린 안드로이드처럼 7년 전에 멈춰있다. 친구들이 대신 지켜주는 지하 벙커는 물리적 보호소인 동시에 세계를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심리적 은둔처다. 조엘이 무리 뒤에 숨어야 했던 건 고질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프리징. 우악스러운 괴물을 맞닥뜨리는 순간 온몸이 얼어버리는 버릇이다. 물론 생물학적 공포 때문이겠으나, 기저에는 새로운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언어의 부재를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7년 전 조엘에겐 그의 못난 그림조차 사랑해 주던 에이미가 있었다. 재앙으로 헤어지게 된 그는 얼마 전 기적적으로 에이미의 크루와 무전할 수 있었고, 누구나 예상하다시피 겁쟁이 조엘이 에이미를 찾아 나서며 영화는 시작된다. 익숙한 로맨스 어드벤처의 주인공, 왕자님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나, 고립된 자아의 자발적 노출이라는 면에서 여정은 실존주의적인 가치도 겸한다. 안전한 벙커 안에서 외롭게 사느니 밖에서 살아보고 죽겠다 말하며 문을 여는 자아,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 2.

 

조엘의 모험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관찰. 그는 제법 유려한 솜씨로 몬스터 도감을 그리는데, 내용은 나쁘다, 착하다, 만만하다, 무섭다 따위의 가치판단이 아니다. 소리에 민감함. 껍질이 단단함. 배 아래 약점이 있음. 과 같은 객관화된 생태 정보다. 미지의 거대 공포에 '이름'을 붙이고 습성을 기록한다는 건 대상을 초자연적 악마의 영역에서 예측가능한 생물학적 범주로 끌어내림을 의미한다. 역사 속에서 인류가 이어온 방식, 박물학적 지식의 축적을 디스토피아에서 답습하는 것이다. 비슷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로드무비였던 좀비랜드(2009)와 비교하면 도감의 가치는 더욱 분명하다. 콜럼버스의 규칙들이 좀비들을 효율적으로 회피하거나 사살하기 위한 기계적 생존 매뉴얼이었다면, 조엘의 도감은 대상을 깊이 있게 탐구하여 거리를 조정하는 관계 척도에 가깝다. 좀비를 지워야 할 대상으로 본 콜럼버스와 달리, 조엘은 괴수를 새로운 세계의 일원으로 인정한 후 그 사이에서 생존할 틈새를 찾은 것이고, 이는 두 작품이 전혀 다른 결말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된다.

 

도감은 연출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감독은 괴물을 어둠 속에 숨겨 공포를 유발하는 대신 대낮의 햇살 아래 던져 기괴하고 화려한 디테일을 가감 없이 노출하는데, 그들이 조엘이 관찰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조엘의 시선에 따라 괴물의 비늘, 점막, 눈동자의 움직임을 관찰하게 되고, 과정에서 공포는 점차 호기심으로 심지어 경이로움으로 치환된다. 이때의 경험은 작품이 주장하는 관찰의 미학, 작품이 지향하는 내적 성장의 감동이다.

 

 

 

 

 

 

# 3.

 

조엘은 예정된 위기와 조력자들을 만난다. 유머러스하게 표현하자면 그들은 각각 조엘의 포켓몬 도감에 '확장 키트'를 달아주는 역할이다. 강아지 보이는 조엘에게 없었던 본능과 용기를 보완한다. 위험을 소리나 냄새로 감지해 아직 기록되지 않는 위험을 예고하는 본능적 감각. 떠내려 가는 빨간 드레스를 위해 기꺼이 강에 몸을 던지는 모습과 역으로 결정적인 순간 위기에 봉착한 보이를 조엘이 구출하는 시퀀스는 선택의 순간 과감히 몸을 던지는 용기의 중요성을 몸소 가르친다. 물론 장르적으로도 밝고 선명한 여행기에 생동감을 더하는 삽화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어드벤처에서 강아지는 언제나 옳은 법이다.

 

선배 클라이드와 미노는 생존술을 가르쳐 주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특히 클라이드는 조엘의 도감을 비웃는 대신 그가 놓쳤던 자연의 신비와 자연의 섭리를 덧붙인다. Good instincts are earned by making mistakes. If you're lucky enough to survive a few mistakes, you're gonna be okay out here. 즉발적인 폭력보다 축적된 지식과 관찰이 더 강력한 생존 자산이 될 것이란 클라이드의 조언은 작품의 주제의식으로, 그로 말미암아 조엘의 도감은 개인의 일기에서 종의 지침으로 격상된다.

 

안드로이드 메이비스는 도감에 기록된 생물학적 사실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적 가치를 환기하는 역할. 메이비스의 배터리가 다하기 전에 가족의 사진을 보고 음악을 듣는 건, 이 여정이 단순한 생존기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는 조엘에게 '왜 위험한 지상을 기록하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정서적 당위를 부여하고 있고, 비유하자면 도감 아래 인간성이란 주석을 다는 캐릭터인 셈이다. 마침내 보이의 '본능'과 메이비스의 '기억', 클라이드와 미노의 '지혜'가 더해지며 조엘의 도감은 입체성을 얻고, 조엘은 고립된 개인에서 탈피해 세계(동물, 기계, 타인)와 연결된 관찰자로 도약한다.

 

 

 

 

 

 

# 4.

 

빌런 캡과 그의 무리는 당연하게도 조엘의 안티테제. 그는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조엘이 정립해 온 '관찰의 윤리'에 정반대 되는 인물일 수밖에 없다. 캡은 새로운 생태계를 이해하는 대신, 거대 게를 전기 사슬로 묶어 동력원으로 부리는 등 오직 착취 가능한 도구로만 간주한다. 괴물은 '이름' 붙여줄 생명체가 아닌 제압하고 이용해야 할 짐승일 따름이고, 멸망 전 인류가 생태계를 대했던 오만, 즉, 구시대 정복과 약탈의 언어를 새로운 세계관에 고스란히 이식한 존재다. 둘러 모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의 소소한 함의. 따라서 조엘과 캡의 갈등은 '세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가치관의 충돌을 대변하고 있고, 캡은 결국 자신이 통제하던 괴수에게 파멸을 맞는다. 소유하려는 자는 세계에 먹히고 이해하려는 자는 세계와 공존할 것이라는 동화적 교훈이다.

 

한편, 조엘이 도착한 에이미의 정착지는 그가 고대하던 낙원이 아니다. 7년이란 시간 동안 에이미는 자신을 기다리는 공주님이 아닌, 공동체를 돌보는 강인한 지도자로 변모한 모습이다. 목적지의 상실은 익숙한 할리우드식 보상을 뒤집은 나름의 반전이다. 조엘은 자신이 찾아야 했던 건 의존적인 과거의 관성이 아니라, 여정을 거치며 도감을 채워낸 현재의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끝으로 조엘은 자신의 도감과 여정을 무전을 통해 모든 벙커로 송출한다. 도입의 조엘처럼 얼어붙어 있던 지하의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용기와, 세계를 다시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선물하는 결말이다.

 

전형적인 왕도물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숱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들 가운데 독특한 위치를 점한 영화는 멸망에 슬퍼하거나 과거를 복구하려 애쓰는 대신 변화된 세계를 관찰하고 기록할 것을 제안한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코로나가 그러했듯, 점차 빈번해지는 듯한 전쟁들이 그러하듯. 우리는 앞으로도 예측 불가능한 위기를 마주할 것이나 분명한 것은 세상을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는 만큼 살아갈 수 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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