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그냥... 의도적으로 쓴 것처럼 써 봐.

웨스 앤더슨 감독,
『프렌치 디스패치 :: The French Dispatch』입니다.
# 1.
50개국, 50만 독자를 거느린, 50년간 이어져 온 잡지사.
유달리 도드라진 40에서 60 언저리 애매한 숫자는 십중팔구 감독의 나이와 들어맞는 데 이번의 쓰임 역시 틀리지 않다. 실제 빌 머레이가 연기한 편집장 아서 하우저 주니어는 웨스 앤더슨 본인과 강하게 연결되는 데, 흥미로운 것은 굳이 50 타령을 늘어놓지 않더라도 이 시니컬한 편집증적 인물이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걸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오프닝에서부터 이런 작위적인 방식으로 이를 주지시키려 한 걸까. 영화가 끝난 후에 두 사람을 연결해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관객이 시작부터 아서를 본인을 투사한 존재로 받아들이길 요구하고 있으므로, 사건보다 서술이 중요하다는 건 결론이 아닌 전제다.
그냥... 의도적으로 쓴 것처럼 써봐.
'의도적으로 쓴 것처럼 쓴다'는 말은 역으로 의도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인간은 사건을 서술함에 있어 스스로 특정한 목적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의도되어 버린 서술의 궤적을 다만 의식적으로 자각할 뿐이고, 이 자각의 과정은 이후 웨스 앤더슨이 제안하는 영화적 감상의 실체다. 아서의 유언은 다음과 같다. 인쇄기를 해체해 녹일 것. 건물은 모두 비우고 매도할 것. 스태프는 계약 해지와 함께 합당한 보너스를 지급할 것. 잡지 발행은 영구적으로 중지할 것. 유언은 수단에서 시작해 공간으로, 관계로, 역사로, 즉 미시적인 것에서 거시적인 것으로 해체의 영역을 확장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와 극 중 인물들에 의해 서술된 사건은 온전하다. 그렇다면 질문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프렌치 디스패치는 어디에 있는가.

# 2.
지역색 섹션.
에디터 세저랙이 가상의 프랑스 도시 앙뉘를 소개한다. 프롤로그에서 암시한 영화적 야심을 가볍게 환기하는 파트다. 기사가 담아낸 앙뉘(Ennui, 권태)는 다분히 끔찍하다. 지하철에는 쥐떼가 들끓고, 건물 지붕은 길고양이들로 가득하며, 못된 아이들은 노인을 공격하고, 밤이면 홍등가의 불이 꺼지지 않는다. 강에는 매주 평균 8.25구의 시신이 떠내려온다는 걸 보면 그야말로 끔찍한 우범지대. 하지만 그것을 서술하는 세저랙은 다분히 서정적인 자전거를 타고서 다분히 낭만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으므로, 관객은 이 도시를 여타의 낭만적인(혹은 낭만적일 것이라 스스로 서술하고 있던) 프랑스 도시들마냥 그 뉘앙스를 전달받았을 것이다. 에디터는 기사 말미에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저마다 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말한다. 이어질 영화는 아름다울 것이고, 무엇이 이 영화를 아름답게 하는가 탐구해 보자 제안함이다.
예술과 예술가 섹션. 정치/시 섹션. 맛과 냄새 섹션.
개별 옴니버스의 완결성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성이다. 예술가 모세와 간수 시몬을 서술하는 베렌슨, 학생 제피렐리와 줄리엣을 서술하는 클레멘츠, 지지 납치 사건과 네스카피에를 서술하는 라이트의 이야기가 주고받는 무언가다. 에디터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객관성(강연, 시니컬한 태도, 사진 기억)을 전제하지만, 정작 그렇게 객관화된 사실은 '흑백'으로, 그 사실이 서술자의 감정으로 굴절되는 순간들은 '컬러'로 묘사된다. 빛나는 장면들은 사건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서술하는 찰나들이다. 이를테면 시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세가 서술하는 시몬이 중요하다. 모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카다지오가 서술하는 모세가 중요하다. 모세의 추상화는 관객들로선 해석할 도리가 없지만 그것이 모세의 입을 빌려 "전부 시몬(It's all Simone)"이라 서술됨에 따라 광휘를 얻는다. 관객은 벽화의 의미를 알지 못함에도 그것이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때 아름다움이 가진 비밀이란 당연하게도 모세와 시몬의 사랑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이야기들조차 베렌슨에 의해 쓰인 것이다. 베렌슨은 이후 모세와 잠자리를 가지는 등 관계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즉, 관객이 본 모세는 베렌슨의 애정으로 인해, 시몬은 베렌슨의 질투로 인해, 로젠탈러는 베렌슨의 귀찮음으로 인해 의도되어 버린 결과다.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인 '시몬이 돌아보는 장면'의 감수성조차 사실 베렌슨의 것이다.

# 3.
정치/시 섹션은 68 운동을 근거하지만 본질은 직전 섹션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창작의 영역뿐 아니라 픽션과 논픽션을 통틀어 세상의 모든 사건이 '서술'의 원리 아래 놓여 있음을 논증하기 위함일 뿐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첫 번째 에피소드와 다른 사건임에도 다르지 않다 말하기 위한 것이므로, 첫 번째 에피소드와 같은 사건 구조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베렌슨과 클레멘츠는 주인공과 동침하며 개입한다는 면에서 동일하고, 모세-시몬의 관계는 제피렐리-줄리엣의 관계와 겹쳐지며, 제피렐리의 친구 마치는 로젠탈러의 변주와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에피소드가 첫 번째 에피소드와 구분되는 것은 에디터의 존재감이 훨씬 도드라진다는 점에 있다.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던 베렌슨과 달리 클레멘츠의 서술적 드라이브가 훨씬 강하다는 의미. 그 결과, 68 운동이 가진 역사적 의미는 제피렐리와 줄리엣의 사적인 사랑, 그들을 바라보는 클레멘츠의 그리움 하에 매몰되어 버린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서술이 사건의 감정을 점유하는 과정을, 두 번째 에피소드는 서술이 사건을 굴절시키는 과정을 논증했다. 마땅히 마지막은 그것이 '옳은가'일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맛과 냄새 섹션이다. 사건 구조는 여전히 동일하다. 아들과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에 놓고, 앞선 섹션의 로젠탈러와 마치의 역할을 운전기사로 대체한다. 가장 감정적인 대목은 납치된 차에서 뛰어내린 지지가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장면인데, 감독은 이 대목을 실사 대신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함으로써, 로버트가 흑백 화면보다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객관화하려 함을 보여준다. 이렇게 섹션이 끝난다면 에피소드는 '경찰청장 부자의 납치 사건'으로 그칠 것이고, 요리사 네스카피에는 사건을 돌파하기 위한 도구, 죽어도 상관없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직전의 에피소드, 마치의 연극에서 5층에서 뛰어내린 모리조처럼 말이다.
하지만 세 번째 에피소드가 앞 선 두 에피소드와 구분되는 것은 에디터가 감정을 공유하는 대상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경찰서장이 아니라 수석 요리사 네스카피에라는 점이다. 라이트는 네스카피에와의 인터뷰를 '너무 감정적'이라는 이유로 잘라냈다 말한다. 반면 아서는 이 부분이 가장 좋다며 기사에 싣도록 지시한다. 그것이 사건의 서술이 드러나는 가장 본질적인 순간이기 때문이다.

# 4.
이때의 본질은 인터뷰를 진행한 라이트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최종적으로 승인한 아서의 것이기도 하다. 이 선택에 주인은 따로 없으며 글을 쓴 사람과 글을 읽는 사람 사이에서 얼마든지 중첩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아서의 규칙인 '울음 금지(No Crying)'가 극적으로 환기된다. 아서의 울음 금지는 감정의 통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이 그 순간 울고 있음을 자각하라는 것. 감정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슬픔으로 서술하고 있는 나를 응시하여 그 본질을 오롯이 '맛'보라는 것이다.
에필로그 쇠락과 사망 섹션.
관객은 에필로그를 통해 영화의 오프닝이 마지막 아서의 부고문임을 알게 된다. 즉, 이 영화 전체가 객관적인 것으로 합의된 화자가 증언한 것이 아니라, 프렌치 디스패치의 에디터들이 모여 하나하나 서술한 문장의 짜깁기였단 사실이다. 그것은 개개인이 서술하고 있는 아서일 뿐 객관화된 사건으로서의 아서일 수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들조차 웨스 앤더슨이란 사람이 과거 사건들을 끌어와 서술한 이야기일 것이고, 다시 그가 서술한 영화를 두고 설왕설래할 관객들의 입 위에서 아서와 이 모든 사건들은 새로이 서술된다.
예술은 '사건'을 '서술된 사건'으로 전환하는 데 의의가 있지 않다. 우리 모두 이미 세계를 '서술된 사건'으로써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술가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술가 자신의 죽음에 슬퍼 울고 있을 때조차 잠시 울음을 멈추고 그 슬픔을 맛보라 말하는 자다. 작중 무수히 많은 감정들을 미끄러지듯 오가는 동안 이것이 서술된 사건의 액자임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이유이며, 마지막에 이르러 영화 전체를 다시 순환적으로 닫음으로써 작품의 경험 일체가 당신 스스로에 의해 서술된 것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이유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Netflix, Tving, WatchaPlay, CoupangPlay, Appletv,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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