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이미지로 표현할 것은 텍스트로, 텍스트로 표현할 것은 이미지로 표현한다.

고혜진 감독,
『하얀 차를 탄 여자 :: The Woman in the White Car』입니다.
# 1.
어차피 미스터리물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형사의 발, 다른 하나는 작가의 머리. 고혜진 감독의 데뷔작은 명백히 후자다. 오프닝에서부터 문학적인 티를 팍팍 내고 있기도 하거니와, 용의자 도경의 직업부터가 유명 소설가, 경찰 현주는 역동적인 수사를 기대하기 힘든 중년 여성이니 말 다했다. 통상 발로 뛰어다니는 미스터리는 몇몇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주요한 반면, 작가의 머리로 풀어나가는 미스터리에는 쫀쫀한 텍스트가 중요한데, 영화 하얀 차를 탄 여자는 이례적일 정도로 이미지에 의존하는 모습이다. 굳이 싶을 만큼 친절한 플래시백과, 인물의 감정선 마다마다에 마킹하려는 듯한 앵글, 굳이 순경의 입을 빌려 한 땀 한 땀 재현해 손에 쥐어주는 가설 따위다. 작가의 머리와 줄다리기 하는 소설적인 미스터리들은 관객 스스로 인물과, 그 인물들의 관계도, 단서를 취합한 나름의 추리를 상상하는 것이 매력이라는 면에서, 일련의 지나치게 수비적인 방법론은 테마와 역행하는 듯한 인상이 짙다.

# 2.
실체는 지나치게 번잡하다. 대충 기억나는 대로 정리해 보자면 살인자 정만이 출소했고, 언니 은서가 정만을 납치하고, 차 트렁크에 넣어 설산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도경을 만나고, 둘이 서로의 필요를 확인한 후 모의하고, 잔치국수 끓여 먹고, 도경의 언니가 나타나고, 몰래 야밤에 달아나려는 데 들키고, 우당탕탕 몸싸움하는데 우연히 트렁크가 열리고, 우연히 정만이 굴러 떨어지고, 우연히 뒷덜미에 문신이 있고, 그걸 때마침 도경이 목격하고, 정만은 냅다 미경한테 날라차기를 시전 하고, 미경은 반격기 눌러 정만의 뚝배기를 깨고, 은서는 미경을 차로 밀어 죽이고, 사실 도경은 정신병자인 척하는 정상인이었고, 도경은 차에 소품을 채운 후 미경의 시신을 운전석에 앉혀 절벽 아래로 밀었고, 은서 동생 시신의 위경도를 검색해 수첩에 적었고, 그걸 언니 떨어진 절벽에 같이 던졌고, 그 위치를 현주에게 알려주기 위해 경찰차 쌔벼 자살쇼를 벌였고, 사실 이 모든 건 1년 전부터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고, 야밤에 차 지나는 소리에 탈출했다가 정만이 시신 유기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때마침 주머니에 있던 대못을 길가에 세워뒀고, 그게 1년 후 은서가 운전하는 차 타이어에 정확히 펑크를 냈다.
라는 게 영화 하얀 차를 탄 여자 속 미스터리의 실체다. 충격적인 반전에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위해 우연과 고의를 한 100개쯤 가져다 이리저리 기워둔 꼴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방법 때문에라도 관객은 아무런 감동을 느낄 수 없다. 내가 여태껏 몰입해 온 미스터리가 '어차피 정답을 맞히는 것이 불가능한 퀴즈'였음을 깨닫는 순간, 감독이 열심히 준비한 문제풀이 일체에서 어떻게 귀결되든 상관없다는 듯 이탈해 버리기 때문이다. 즉, 결말부 장례식장에서 도경과 은서가 만나는 장면은 사실상 영화 혼자 주절주절 떠드는 것에 지나지 않기에, 가장 드라마틱해야 할 파트는 작품 전체를 끌어안고 지루하게 침몰하고 만다.

# 3.
한편 미스터리에 병행해 피해자들의 연대를 메시지로 두고 있는 데 이 부분들은 또 지나치게 연설적이다. 특히 현주가 절벽 앞에 선 도경에게 일장 연설하는 대목은 시시하기 이를 데 없다. '폭력에 굴복하지 말자'라는 당연한 메시지를 사람들이 몰라서 그 설명을 들으려 영화를 보는 게 아니다. 그 메시지를 어떤 상황에 녹여 어떻게 미학적으로 표현하는가를 즐기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이다.
캐릭터는 지나치게 기능적이다. 가해자들, 현주의 아버지나 도경의 언니 미경, 은서의 원수 정만 모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납작한 일차원적 악당으로 설정된다. 그들에게 폭행할 수밖에 없는 서사를 부여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시종일관 노려보거나 소리 지르거나 술에 취해만 있는 사이코패스들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세 악당을 아주 납작하게 짓눌러뒀기에 이들에 저항하는 도경과 현주와 은서는 그 반동으로 가해자에 강하게 종속되어 같이 납작해지고 만다. 피해자가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영화에서, 정작 세 주인공 모두 '피해자'라는 정체성에서 출발해 '전 피해자'로 끝나버리는 광경은 황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물론 영화가 내린 연대의 모습은 그보다 더 황당하다. 그러니까 피해자라는 정체성이 모든 걸 정당화해 줄 테니 그냥 서로 입 다물고 공범이 되라는 것이다. 너도 존나 피해자고, 나도 존나 피해자니까. 니가 쟤 죽이는 거 눈 감고, 내가 쟤 죽이는 것도 눈 감고, 이거 알게 된 경찰 너도 눈 감으면 다 행복하다는 게 영화의 결론이다. 어차피 나쁜 놈들이 죽거나 버림받은 거니까 걔네 죽인 너나 나는 정당한 것이니, 창문 열어 시원한 바람맞으며 완장 집어던지고 다리 건너 인생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면 그만. 대체 언제부터 연대가 무조건적인 폭력의 공모로 추락한 건가.

# 4.
결국 남은 영화의 감상은 역시 초췌한 연기는 정려원이 최고라는 점. 이정은을 이렇게 어색하게 만들 수가 있나 라는 점. 내내 노려보고 있는 장진희와 강정우와 김정민은 눈이 많이 아팠겠다는 점. 최대의 미스터리는 이정은 옆에 따라다니던 순경이 왜 자꾸 형님이라 부르는 건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점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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