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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Horror

창궐 이펙트 _ 드라마 킹덤, 김성훈 감독

그냥_ 2019. 2. 1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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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단점이 전혀 없는 시리즈는 아닙니다만 이 드라마의 최고 강점은 때를 잘 만났다는 겁니다. 작년에 하필 꼴통 좀비 영화가 한편 나왔었거든요. 영화빠라는 게 부끄러워 접시물에 코라도 박고 싶어 지게 하는 졸속 좀비 영화 <창궐>이 비교 대상이라면 얘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김은희 작가, 김성훈 감독,

『킹덤 :: Kingdom』 시즌1 입니다.

 

 

 

 

 

# 1.

 

하필 이름도 같네요. 드라마의 김성훈 감독은 <창궐>의 김성훈 감독 집 방향으로 매일 절이라도 하셔야 합니다. 이 드라마가 국내에서 받는 호평에는 분명 <창궐>과 <물괴>에 적지 않은 빚이 있으니까요. 특히 창궐을 본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는 빛 그 자체였을 겁니다. 창궐에 비하면야 이 드라마는 모든 것이 완벽해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장동건과 현빈의 참담한 만행에 사망선고가 떨어진 줄만 알았던 국산 좀비물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네요. 작가님, 가난해서 드릴 건 없고 집 주소 알려주시면 종이학 천마리라도 접어드릴게요.

 

이 드라마는 말이죠. 무려 말이 됩니다. 김은희 만세. '앞뒤 말이 되게 만든다'라는 그 어려운 일을 기어이 해냅니다. 밥을 안 먹으면 배고프고 밥 먹으면 배부릅니다. 잠을 안 자면 잠이 오고 잠을 자면 깨어납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죠.

 

창궐 속 좀비 발생의 원인은 대충 외국에서 수입했다 우기는 게 전부지만, 킹덤에선 좀비가 발생하게 된 데에 대한 디테일하고 본질적인 서사가 있습니다. 창궐의 정만식은 그냥 병신이지만, 킹덤의 김상호는 충분히 유능하고 충분히 합리적인 나름의 서사를 가진 입체적 인물이죠. 창궐이 전염병이 도는 곳 한복판에 자국의 왕자를 무책임하게 드랍하는 동안, 킹덤의 주지훈은 스스로의 합리적인 선택으로 위험지역으로 향합니다. 창궐의 RPG 게임식 무능한 주인공 파티는 현빈 돋보이게 하기 용으로 쓰다 버려지지만, 킹덤의 주인공 파티는 설정에 충실히 부합하는 유능함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안정적으로 확보합니다.

 

창궐의 현빈이 좀비가 득실득실한 가운데서도 발정이라도 났는지 이선빈과 형수에게 껄떡대는 동안, 킹덤의 주지훈은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진득하게 생존을 위한 투쟁을 이어나갑니다. 창궐의 장동건은 가오 잡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는 병신이지만, 킹덤의 류승룡은 악역으로서의 입체성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유능한 정치인이죠. 창궐의 어의가 좀비가 된 왕에게 차도가 있다는 둥의 개소리를 하는 동안, 킹덤의 류승룡은 좀비가 된 왕의 얼굴에 담담히 분을 칠합니다.

 

 

 

 

 

 

# 2.

 

창궐의 감독이 스스로 주제의식을 대사로 뱉어내는 멍청함을 범하는 동안, 킹덤은 인간 군상에 대한 탐구라는 주제의식을 관객의 몫으로 진득하게 남겨둡니다. 창궐의 장동건은 지가 수입하고 지가 사육해서 지가 풀은 좀비에 지가 물려 뒤지는 영화 사상 최악의 머저리를 연기하지만, 킹덤의 류승룡은 권력자답게 유능한 인물답게 가장 안전한 곳에서 모든 리스크를 성공적으로 통제합니다. 창궐의 좀비들은 순간순간 지들 편한 데로 달려들었다가 걸었다가 북소리를 들었다가 말았다가 햇볕에 죽었다가 살았다가 칼싸움을 했다가 물어뜯었다가 하는 쌩쑈를 벌이지만, 킹덤의 좀비들은 관객과 합의한 설정이란 약속을 결코 어기지 않습니다.

 

창궐이 자신의 허접함을 숨기기 위해 억지 신파와 억지 로맨스를 무책임하게 접붙이기하는 동안, 킹덤은 좀비물이란 장르의 힘, 정치극이란 장르의 힘을 올곳이 밀어붙입니다. 창궐의 모든 인물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만 골라서 하고, 킹덤의 인물들은 합리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범주 안의 행동들만을 똑똑하게 선택합니다. 창궐의 주인공은 불탄 목재 건물의 옥상으로 도망가는 머저리이지만, 킹덤의 주인공은 좀비들을 막기 위해 죽창의 요새를 쌓죠. 글을 쓰다 보니 새삼 열 받네요. 창궐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따위로 만든 걸까요.

 

드라마는 실체는 간명하나 파편적 요소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리 오해할 여지가 풍부한 이야기라는 좋은 스릴러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멍청이들이 억지로 반전을 만들어보겠답시고 달려드느라 이야기가 베베 꼬여버리는 명탐정 코난식의 이야기는 이 드라마에선 찾을 수 없습니다.

 

류승룡이 왕을 좀비로 만들어 버리는 숨겨진 과거와 세자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미래의 중간 지점에서 드라마가 출발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서사를 밟아 나가면서 과거의 실체가 드러나는 병렬적인 서사가 발생하죠. 자칫 잘못하면 과거와 미래라는 독립된 이야기 속의 떡밥이나 설정이 마구잡이로 충돌하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는 구성입니다만, 시그널에서 두 개의 독립된 시대를 깔끔하게 엮어냈던 작가의 능력은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폭발합니다.

 

 

 

 

 

 

# 3.

 

좀비물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캐릭터 쇼로서도 상당한 매력을 가집니다. 세자 이창은 후궁 태생의 왕자로 콤플렉스와 생존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백성을 위하기는 하는데 이는 백성에 대한 본질적인 애민정신의 발현이라기보단 적대적인 조 씨 일가와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서가 더 커 보이죠. 하지만 의도야 어떻든 착한 행동을 하는 인물은 맞긴 합니다. 근데 또 마냥 선역이라기엔 애매한 게 왕족으로서의 특권의식이 내면화되어 있는 인간 특유의 싸가지 없음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하고, 실제 자기 아버지 몰아내는 역적모의를 하기도 했죠. 관객은 세자의 시선에서 주요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이창의 다면적인 입체성은 관객과 이 인물 사이에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게 만들어 전체적인 사건의 맥락을 탐구할 수 있게 합니다.

 

좌익위 무영은 세자를 호위하는 측근입니다. 역시 기본적으론 정 많고 서글서글한 선역처럼 보입니다만 이 인물 역시 찝찝한 구석이 많죠. 세자의 주안상 음식에 손을 댈 만큼의 애처가인 데 볼모로 잡히기 딱 좋은 임신한 처가 있고, 하필 그 처가 조 씨 집안의 손에 떨어져 있습니다. 드라마 내내 거의 유일하게 세자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시간이 있는 인물이라 안현 대감이 귀띔한 배신자 떡밥의 유력 용의자로서의 가능성이 있기도 한 인물이죠. 세자의 스승 안현 대감 역시 세자의 든든한 조력자로 보입니다만 이 인물 역시 찝찝합니다. 목숨을 걸고 세자를 호위하는 무영은 안현 대감을 신뢰해도 되는 것인지 의구심을 표하고 있는 데다, 특히 절대악 조학주가 안현 대감은 자신을 절대 적대할 수 없다는 막강한 떡밥을 던져 놓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 4.

 

영신은 세자의 위기를 수차례 넘게 해 준 든든한 무력 셔틀입니다만, 정체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은 게 많은 미스터리한 인물입니다. 행동 원리는 오롯이 자신의 안전과 생존에 맞춰져 있는터라 언제든 세자의 안전과 자신의 안전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예상 밖의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인물이죠. 또한 이 모든 사단이 일어나게 된 최대 주범이기도 한 데 또 마냥 미워하기엔 그 사고의 이유는 지극히 선합니다. 지율헌 의녀 서비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인물이긴 합니다만, 대신 이 인물의 목적은 오롯이 사람들을 구한다에 맞춰져 있기에 다른 어떤 캐릭터들보다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반경이 압도적으로 넓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조학주를 살펴볼까요. 세자 이창이 상대적 선역이라면 조학주는 그 대척점에 있는 인물입니다. 권력에 대한 강박적 집착을 보이는 인물이죠. 자신과 자신 가문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 대하듯 하는 천인공노 할 인물입니다만, 동시에 가족 특히나 아들사랑은 또 지극합니다. 그냥 자기 손주를 왕으로 앉히기 위해서 세자를 죽인다라는 나이브한 동기를 벗어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하나뿐인 아들의 복수라는 공감하기 쉬운 직관적인 동기를 가진 덕에 관객은 감독이 일방적으로 제안한 선악구도를 벗어난 대립 구도를 경험하게 됩니다.

 

조학주의 딸인 계비 조 씨. 욕 많이 듣던데요. 그건 뒤에 이어서 얘기하도록 하고 캐릭터 자체는 역시 매력적입니다. 일단 아비 못지않게 대단히 권력지향적인 인물이죠. 여러 면에서 주요 악역 조학주의 카리스마와 유능함에 밀리는 미숙한 인물이지만, 이후 아빠인 조학주와도 거리낌 없이 뒤통수를 서로 때리는 대립관계에 들어가게 되리란 떡밥이 쏟아지기도 한 재밌는 인물입니다. 극단적으로 필요하다면 공공의 적인 조학주를 잡기 위해 세자와 손을 잡아도 이상하지 않아 보이죠.

 

이처럼 대부분의 인물들은 각자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각각 또다른 상대인물들과의 복잡한 접점을 가집니다. 선악의 기준은 옅고 그 희미한 틈새로 누구나 이해할 법한 인간의 본성이 자연스레 스며듭니다. 각자가 나름의 이기심을 가집니다만 그 이기심의 대상은 인물에 따라 자신, 식솔, 가문, 우군, 모든 인간으로 또 다시 갈라집니다. 각자의 캐릭터들을 대표하는 이미지나 관념이 존재하여 직관적으로 인물과 세력의 구분이 가능하면서 동시에 그 각각의 인물들이 특정 관념이나 사상에 지배되지도 않습니다.

 

 

 

 

 

 

# 5.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좀비물이고 좀비물의 핵심은 결국 '설정 놀음'입니다. 정확히는 참신한 설정을 둘러싼 두뇌싸움과 그 설정을 넘나드는 동안의 스펙터클이죠. 이 드라마는 좀비들의 페널티에 대한 일관된 설정, 그런 설정을 하나하나 밝혀내는 과정, 밝혀진 설정들을 파훼하기 위한 조건들을 주인공 파티가 수집해 나가는 여정이라는 기본적인 좀비물의 구성 요소를 충실히 구현합니다.

 

설정은 디테일하면서 동시에 분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설정들 중 그 어느 것 하나 서로 충돌하지도 억지를 부리지도 않습니다. 알고 보니 다른 종류의 좀비도 있었다는 식의 무책임함은 적어도 이 드라마에선 찾을 수 없습니다. 대충 얻어걸려 좀비가 생겨났다는 식의 무성의한 배경도 없습니다. 수습되지 않는 사고를 무마하기 위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나, 그런 무신경함을 얼기설기 메우기 위해 억지로 동원된 신파나 로맨스 역시 이 드라마엔 없습니다. 좀비물의 액션씬은 적어도 3가지 중 하나의 효과는 동반되어야 스릴러로서의 긴장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다채로운 전투의 양상, 둘은 안전할 것만 같은 인물의 갑작스러운 리타이어, 셋은 액션신을 통한 주요 이야기의 진행이죠. 이 드라마는 위의 세 가지 요건을 벗어나는 소위 그럴싸해 보이긴 하지만 정작 보고 나면 남는 건 하나 없는 쓸데없는 액션씬 또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든 액션씬에서 최선을 다해 다채로운 환경과 구도의 싸움을 보여줍니다. 닫힌 공간에서의 폐쇄적인 공포, 광활한 들판을 죽어라 내달리는 좀비 떼의 모습,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밖에서 덮치려 드는 좀비들을 보는 불안함, 높은 건물에 고립되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절망적인 광경, 시야가 차단된 갈대숲에서 갑자기 땅에서 솟아 나오는 좀비들, 강가에서의 싸움과 시가전, 배 위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출몰한 좀비 등, 한번 봤던 장면은 다신 보여주지 않으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참신하고 다양한 장면들이 그야말로 쏟아집니다. 덕분에 드라마를 보신 분들이라면 좀비들이 출몰하는 장면의 스틸컷만으로도 지금이 어떤 상황이고 서사의 어느 지점인지를 또렷이 기억하실 수 있을 정도죠. 많은 분들이 전회 6시간에 달하는 긴 드라마를 불편함 없이 한숨에 정주행 하실 수 있으셨던 건 반복된 액션씬이 주는 지루함이 없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 6.

 

좀비물로서의 액션씬들이 콩트처럼 이야기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 역시 훌륭합니다. 모든 액션씬들은 이야기에 철저히 복무합니다. 필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필요한 장면들이 동원됩니다. 전투씬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 주인공 파티는 좀비에 대한 새로운 힌트나, 다음 쳅터를 인도할 인물과의 접점, 혹은 다음 서사의 근거를 수집합니다.

 

좀비물이란 장르가 스스로 가진 풍부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대중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건 적절한 표현의 수위를 설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잘려나가고, 터지고, 괴기하게 뒤틀리는 건 누구나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니까요. 다행히도 이 작품은 불필요하게 고어틱한 장면들로 불편함을 유발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물론, 아예 없을 순 없습니다만.) 대신 동양의 오리엔탈리즘이 주는 신비감과 건조하고 음습한 배경이 주는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관객들이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장르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평소 좀비물을 딱히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들이라도, 평소 호러물의 표현에 대한 거부감이 크신 분들이라도 이 드라마는 한 번쯤 시도해 보실 만하리라 생각됩니다.

 

새삼 이만하면 잘 만들긴 잘 만들었다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 7.

 

불행히도 거의 완벽해 보이는 이 드라마 역시 논란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 작품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 듯한데요. 하나는 중전 역의 김혜준과 의녀 서비 역의 배두나의 연기력 논란이고, 다른 하나는 역겨운 마약사범이 둘이나 나온다는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드라마를 보고 나서 연기력 논란이 일어날만하다 싶기는 하더군요. 여러 부분에서 특히나 앞서 말씀드린 두 배우 김혜준과 배두나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방해할 만한 표현이 포착된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감독과 배우들이 사후 인터뷰를 통해 주저리주저리 이런 저련 변명들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걸 관객이 이해해줘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죠. 배우와 감독은 작품으로 말하고 작품으로 평가받는 거지 무슨 혓바닥이 그리 긴가요.

 

하지만 그 일련의 논란이 배우만의 잘못이냐?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습니다. 지금은 두 배우가 대표로 욕을 오지게 먹고 있습니다만 그에 가려있어서 그렇지 요소 요소에서 다른 배우들의 연기 역시 핀트가 날아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거든요. 연기는 배우 고유의 영역이고 원칙적으론 연기력 논란의 1차적인 책임은 배우가 지는 게 맞습니다만, 그 대상이 엑스트라나 단역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지죠.

 

엑스트라나 단역들은 뭐랄까요. 감독 디렉팅의 리트머스 종이와 같습니다. 배역에 대한 해석의 여지나 여유가 없는 단역의 경우, 기본적으로 섭외되어 지시받은 내용을 기계적으로만 딱 표현하기 때문에, 단역의 연기를 보면 감독의 디렉팅 능력을 엿볼 수 있으니까요. 막말로 단역들의 연기가 불편하다? 엑스트라의 움직임에 이물감이 느껴진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감독의 책임입니다.

 

 

 

 

 

 

# 8.

 

드라마 내 연기 논란의 본질은 감독이 시대적 통일성을 잡아줄 표현의 표준을 세팅하는 데 미흡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표준이라는 게 무슨 KBS에서 한창 양산하던 대하사극 식의 "수달이가 주거써!"나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를 또 다시 반복하라는 건 아닙니다. 시대극에서 묘사하는 억양에 대한 재해석은 언제나 환영이죠. 사도에서 송강호가 보여준 일상적인 영조는 제가 본 최고의 사극 묘사 중 하나입니다. 다만 해석은 자유롭게 할지언정 작품 내에서의 같은 시간을 사는 캐릭터들 간의 일관성은 있어야 합니다. 이 드라마는 시대 설정이라는 방향키를 잡아야 할 감독이 핸들을 놓아버리면서 배우마다 표현의 톤이 달라져 버리고 맙니다.

 

감독의 일관된 지시가 없다 보니 단역과 엑스트라들은 언제나처럼 관습적인 사극의 톤으로 연기해버립니다. 중견 배우들은 배역의 무게감을 중심으로 적당히 묵직한 표현을 하되 정통사극물까지는 오버라는 걸 직관적으로 캐치하죠. 젊은 배우들은 배경만 조선이지 픽션에 좀비물이라니까 재기 발랄하고 자유로운 재해석을 시도하고, 그 와중에 궁중 한가운데서 비슷한 연령대 없이 홀로 버텨야 했던 김혜준과, 해외 작품의 경험이 풍부한 도전적인 배우 배두나가 조금 더 도드라져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표현의 무게에 있어 단역 및 엑스트라 >> 류승룡, 허준호, 김상호 등의 중견배우 >> 어느 정도 무게를 잡을 수밖에 없는 주지훈, 정석원, 김성규 >>>>> 넘사벽 >>>>> 배두나, 김혜준이라는 층위가 생겨버린 거죠. 다들 일관성 없이 중구난방이라면 기본적으로 쪽수가 적은 쪽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건 흔한 일입니다. 이 드라마에선 배두나와 김혜준이 딱 걸렸네요.

 

만약 이 드라마가 배두나와 김혜준 정도 연령대의 배역이 다수 등장했다면. 예를 들어 주지훈과 정석원이 박보검이나 여진구 같은 더 어린 배우였다거나, 김상호도 어린 무예 신동으로 바뀌고, 허준호도 젊고 인망 있는 유림의 차세대 주자, 뭐 이런 식의 배역이었다면 배두나와 김혜준의 연기가 덜 도드라져 보였을 겁니다. 어쩌면 연기력 논란은 류승룡에게 돌아갔을지도 모르죠. 혼자 진지한 연기하고 있다고 말이죠.

 

 

 

 

 

 

# 9.

 

이러니 저러니 해도 국내에선 경쟁제를 찾는 게 쉽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를 가지는 드라마임엔 틀림없어 보입니다. 한국산 좀비물이라는 장르로 한정하면 그야말로 독보적이죠. 이거 보고 KBS, MBC, SBS의 망상 포르노 드라마를 보노라면 저런 것들을 보느니 차라리 좀비가 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됩니다.

 

본의 아니게 연기 디렉팅에 있어 감독을 좀 깟습니다만 그거 말곤 감독의 연출은 나무랄 지점이 없다고 생각하니 맘 상하지 않으셨음 하네요. 동아시아 하면 일본 아니면 중국밖에 모르던 외쿸인들이 어쩌면 처음 만날지도 모를 전통 한국 문화의 맛을 상당히 잘 살렸습니다. 단풍이 울긋불긋 물든 우리의 자연을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넷플릭스의 엔터테인먼트 컨텐츠를 통해 볼 수 있다는 게 이채롭네요. 일본의 단아함과 다르고 중국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우리 문화만의 섬세한 미려함이 서사와 상당한 결속력을 보이는 건 연출자의 힘입니다. 익숙해 이쁜 줄도 몰랐던 우리 전통의상들, 특히나 모자들에 대한 세계인들의 반응들은 유쾌하군요. 김은희 작가, 김성훈 감독 드라마 <킹덤> 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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