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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지독하게 성찰적인 _ 사스콰치 선셋, 데이비드 젤너 / 네이선 젤너 감독

그냥_ 2025. 10.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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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으어... 으아... 으에...

 

 

 

 

 

 

 

 

데이비드 젤너 / 네이선 젤너 감독,

『사스콰치 선셋 :: Sasquatch Sunset』입니다.

 

 

 

 

 

# 1.

 

감동적인 명대사가 난무하는 영화, 사스콰치 선셋이다. 영화의 조작은 익숙한 자연 생태 영화의 틀 한가운데 냅다 사스콰치를 집어던지는 것이 전부고, 대부분의 감상은 이들을 지켜보는 동안의 코미디와 불쾌감으로 소집된다. 감독은 대체 이 역겨운 존재들에 비춰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자연 다큐멘터리의 감정선은 보통 연민이나 경외감이고, 그것은 명확한 거리감을 전제한다. 엄마 기린이 새끼를 낳고, 사자가 얼룩말을 사냥하는 장면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기보다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다. 반면 영화 속 사스콰치의 행동들은 이례적으로 역겹다. 그들이 서로의 체취를 맡고 교미하는 모습은 사실 평범한 것임에도 불쾌한 데, 행위 자체보다 그 행위의 주체가 우리들과 '애매하게 가깝기' 때문이다.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범주화를 시도해 왔다. 인간과 동물, 문명과 야생, 인공과 자연 등의 이분법은 우리 인식의 기초적인 틀이다. 문제의 사스콰치는 그 경계선 위의 존재다. 인간처럼 슬픔을 느끼고 사회를 이루면서, 동물처럼 배설하고 교미하는. 그래서 분류 체계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한 아슬아슬한 존재인 것이다. 범주화의 실패는 관객에게 혼란과 불안을 야기하고 있고, 인식의 실패는 후반부 환경 파괴로 직결된다. 차라리 사스콰치가 완벽한 '동물'로 인식되었다면 보호구역이라도 설정되었을지 모른다. 차라리 사스콰치가 완벽한 '인간'으로 인식되었다면 소통을 시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중간자적 존재는 문명의 이분법적 인지 체계에서 자리를 얻지 못했고, 그 결과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운명을 맞는다.

 

 

 

 

 

 

# 2.

 

그래서 제시 아이젠버그와 라일리 키오의 캐스팅은 흥미롭다. 관객은 저 털가죽 안에 명백한 '문명인'이 존재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슬쩍 보이는 눈만 가지고는 어떤 유인원 안에 그가 들어있는지조차 쉬이 구분할 수 없다. 관객은 저 털가죽 안에 유명배우가 버둥거리고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스크린을 통해 그를 '인식'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진정으로 인식하는 것'의 간극은 스크린 속 원시적 존재를 단순한 동물로 범주화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방해한다. 즉, 유명 배우의 존재는 관객이 사스콰치를 안전한 타자로 대상화한 후 지적으로 도피할 경로를 원천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덕분에 관객은 저 존재를 완전히 이해할 수도,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는 인지적 교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일련의 경험은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는 숲에 수많은 생명이 존재한다는 '정보'를 알지만, 그들의 개별적 고유성이나 주체성을 '인식'하지는 못한다. 그저 자연이라는 거대한 추상명사로 묶어버릴 뿐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지금 스크린 속 존재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묻는다. 유명 배우를 통해 인식의 장벽을 의도적으로 경험하게 하고, 그 장벽이 현실에서 어떻게 숲을 밀어버리는 도로로 구체화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환경 문제는 단순히 기술이나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인식의 문제임을 역설하는 것이다.

 

 

 

 

 

 

# 3.

 

자연의 시간은 연속적이고 순환적이다. 봄의 끝과 여름의 시작이 칼로 자르듯 나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서로에게 스며든다. 사스콰치에게 시간은 ‘따뜻한 때’, ‘추운 때’와 같은 감각적 경험의 연속일 뿐, ‘봄’이나 ‘겨울’이라는 추상적 개념일 수 없다. 그러나 영화는 의도적으로 이들의 삶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명확한 4개의 막으로 분절해 놓았다. 관객의 인지 체계에 가장 익숙하고 안정적인 틀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스콰치의 연속적인 삶을 인간의 ‘기승전결’이라는 서사 문법 속에 강제로 밀어 넣는 장치다. 사스콰치에게는 그저 하루하루의 생존이었을 뿐인 사건들이, 이 인공적인 계절의 틀 안에서 ‘필연적인 파멸’을 향해가는 단계들로 재해석됨을 느낀다.

 

이 같은 서사 구조는 결국 인식론적 감옥을 확장한다. 인간/동물이라는 이분법이 사스콰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감옥이었다면, 사계절이라는 서사 구조는 삶의 과정을 가두는 또 다른 감옥이다. 관객은 이 안전한 서사적 감옥 안에 있는 사스콰치의 비극을 ‘관람’하며, 그들의 파멸을 하나의 잘 짜인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결말로 소비하게 될 위험에 처한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Netflix, Tving, WatchaPlay, CoupangPlay, Appletv,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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