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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Humanism

말하자면 삶은 희망입니다 _ 블랙 아웃, 에바 웨버 감독

그냥_ 2019. 1. 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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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서아프리카의 빈곤국 기니. 그곳을 살아내는 사람들과 허약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맨발의 어린 학생들이 거리를 헤맵니다. 빛을 찾고 있습니다. 문학적 은유가 아니라 진짜 빛, 조명을 찾고 있죠. 전기공급이 안정적이지 않아 밤을 밝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무사히 치러 졸업장을 따고 다음 단계의 학교로 진학하려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인프라가 안정적으로 갖춰져 있지 못한 기니에는 대중교통도 도로망도 부실합니다. 밤늦게까지 불 밝히는 시설은 공항과 주유소 정도가 전부네요. 불이 들어오는 기간시설들까지의 거리는 가까워도 6㎞, 7. 가녀린 아이들은 그 거리를 홀로 걸어가고 홀로 돌아와야 합니다. 새벽 3시, 새벽 4시가 지나도록 창백한 조명 아래엔 공부하는 기니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에바 웨버' 감독,

『블랙 아웃 :: Black Out』입니다.

 

 

 

 

 

# 1.

 

카메라 앞의 아이들은 학구열에 대한 간절함을 절절하게 토로하지 않습니다. 그저 공부를 할 뿐이죠. 담담한 말투로 카르타고의 역사를 암기하고 홍채와 안구운동 따위를 복습하며 미생물학과 철학, 사회학을 암송하는 동안 그 뒤로 처절한 현실이 가감 없이 펼쳐집니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그 어떤 말보다도 선명하게 전달되죠. 공부를 하는 이유는 거창한 꿈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살아내기 위해서입니다. 꿈과 희망을 가득 머금어야 할 맑은 눈의 한 아이는 도무지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말들을 담담히 입에 올립니다. "더는 아픔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공공시설의 조명 아래 거친 길바닥에 주저앉아 공부를 하는 동안 '쓰기'를 하지 않습니다. 반복해서 읽고 또 읽죠. 이질적입니다. 우리는 공부하는 모습을 연상하면 보통 안락한 공부방, 책상, 의자, 쌓아놓은 학습서와 공책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는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릴 텐데요. 기니의 학생들에겐 그 어느 것도 당연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공부방도, 책상도, 의자도, 책도, 심지어 작은 조명과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공책과 펜도 주어져 있지 않죠.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빼곡히 적은 종이 서너 장을 읽고 또 읽을 뿐입니다.

 

연히 안전하지 않습니다. 야간 조명 시설조차 구비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치안이 안정적이길 기대하는 건 미련한 일이죠. 가로등 하나 찾기 힘든 어두운 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혼자 길을 걷는 건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지만 어린 소녀들에겐 더더욱 가혹한 일입니다. 소녀들은 상해와 살해, 강간의 위험과, 그래도 공부를 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슬픈 말을 함께 전합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기니의 소녀들은 제한적인 가정형편으로 인해 학업의 기회에서 밀려납니다.

 

소년들의 삶이라고 나을 것도 없습니다. 가족들 중에 글을 읽을 수라도 있는 사람은 아버지뿐이라 말하는 한 소년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을 장담할 수 없는 기니의 현실에서 아버지에 이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유일한 동아줄입니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질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이어달리기의 바통은 십 대 소년에겐 너무 버거운 짐으로 보입니다. 이곳에 소년이 힘드냐 소녀가 힘드냐 따위의 성 갈등은 끼어들 틈조차 없습니다. 모두 각자의 몸으론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만 같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버텨낼 뿐이죠. 반쪽짜리 달빛 아래 분명한 것은,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은 그런 짐을 짊어져선 안된다는 것뿐입니다.

 

 

 

 

 

 

# 2.

 

해가 떴습니다. 낮입니다. 가려지지 않는 기니의 현실이 햇빛 앞에 가감 없이 드러납니다. 기니는 오랫동안 군부독재를 경험했습니다. 지도층의 무능력과 이기심은 사회의 잠재력을 장악해 자신들만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선거로 군부를 몰아내긴 했지만, 새로운 지도부라고 다를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일상화된 블랙아웃에서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사라지고, 힘없는 발전소 직원들만이 모욕적인 수평 폭력에 희생됩니다. 그들의 고충이 주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건, 처절한 사회적 상황과 더불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교육이 부재한 현실의 파편이기도 합니다.

 

기니는 자원 부국입니다. 풍부한 광물자원과 수력발전을 안정적으로 가동할 천연자원이 있죠. 그래서 별칭도 '서아프리카의 저수지'입니다. 허구한 날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가족에게까지 욕을 듣는다는 한 발전소 직원의 고향에는, 우라늄 광산이 있다고 합니다. 우라늄의 실어가는 거대한 외국 회사 소유의 기차가, 기니 사람들 머리 위로 마치 짓누르는 듯 지나는 동안, 깡마른 체구의 아이들은 싸구려 양초를 팔고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발전과 교육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이들은 쓰레기 더미를 뒤집니다.

 

선생님은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꼭 이루리라 소망했던 것들을 하나도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살았죠.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더 큰 세상과 교류하고 싶었죠. 헌데 길이 안 보였어요. 제 꿈은 존경받는 지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니처럼 가난하고 궁핍한 나라에 머물러선 안됩니다. 돈만 있으면 벌써 떠났겠죠. 아직도 미지의 세계가 궁금합니다. 하지만 제가 무슨 재주로 여길 뜨겠습니까? 이젠 아예 잊고 삽니다." 기니의 밝은 낮은 블랙아웃에 꺼져버린 어두운 밤보다도 더욱 어둡고 더욱 절망적입니다.

 

 

 

 

 

 

# 3.

 

감독은 47분의 런타임 내내 밤과 낮을 교차해 보여줍니다. 영화가 비추는 기니 공화국 전체가 마치 언제라도 꺼질 듯 아슬아슬한 조명처럼 보이죠. 아이들은 바람 앞에 놓인 촛불, 곧 블랙아웃이 닥칠 조명과 같은 현실에 놓여있습니다. 낮에는 절망적인 현실을 어른들의 입을 빌려, 밤에는 허약한 희망을 아이들의 입을 빌려 전합니다. 이 영화에서의 빛은 역설적입니다. 빛으로 가득 찬 낮은 절망적이죠. 어둠으로 가득 찬 밤은 그나마 희망적입니다. 낮동안 아이들은 비루한 몰골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쓰레기통을 뒤지고, 밤이 되면 공부를 합니다. 영화의 종반부 하늘에 뜬 선명한 반달은 감독의 담담하면서도 진지한 태도를 시각화합니다. 저 반달은 차오르는 중일까요, 꺼져가는 중일까요.

 

마지막 날의 아침.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의 관저에 테러가 일어났다는 뉴스 보도가 흘러나옵니다. 현실은 유치한 동화처럼 해피엔딩이 담보되어 있지 않죠. 앵커의 보도가 끝나고. 기니의 절망을 반복적으로 토로하던 선생님은 영화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희망을 말합니다. "게으름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행복은 신의 선물이 아닙니다. 신께 기도하면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행복을 찾아 나서라!'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삶은 희망입니다. 희망이 없는 삶은 죽은 삶이죠. 그것이 진리입니다." 선생님은 인터뷰와 함께 구두를 닦고, 의자에서 일어나, 복도를 걸어 나갑니다. 그리고 그 뒷모습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리죠.

 

연출의 개입은 거의 없습니다. 감독은 철저히 인터뷰어와 관찰자로서만 존재하려 합니다. 기니의 사람들에게 개입하지도, 그렇다고 그들을 동정하지도 않습니다. 억지로 감성을 건드리거나, 특정한 이념성을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숭고한 교육의 중요성' 따위의 싸구려 연출도 없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보여주며 너의 행복을 찾으라 훈계하지도 않습니다. 영화는 질문하기 조차 조심스러워합니다. 런타임 내내 보여주려는 데 집중합니다. 고요히 숨소리를 죽이던 감독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선생님의 입을 빌려 조심스레 밤의 희망이 낮의 절망을 몰아내길 기원하고 응원합니다. 희망은 현실에 종속된 변수가 아니라 말합니다.

 

 

 

 

 

 

# 4.

 

기니만큼은 아니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우리의 현실도 결코 녹록지 않음을 잘 압니다. 여전히 어린 학생들은 학대적 교육환경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많은 젊은 이들은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부부들은 늘어만 가는 양육부담과 노후 부담에 고개를 떨구고, 노년층의 빈곤율 역시 끝을 모르고 늘어만 갑니다. 빈부격차는 벌어져만 갑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지만, 누군가는 인스타그램에 해외여행 사진을 도배합니다.

 

모든 국민들의 최종적 꿈은 건물주입니다. 많은 분야에서 수단은 목적을 압도했습니다. 사람들은 막다른 길 앞에서 인지부조화와 배타적 갈등의 이지선다에 내몰려 있습니다. 그 길을 헤쳐 나와야 합니다. 위험하고, 어둡고, 불확실하며, 또 먼길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역시 이 깊은 블랙아웃을 넘어 빛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삶은 희망이니까요. '에바 웨버' 감독, <블랙 아웃>이였습니다.

 

# 5.

 

사족으로 감독의 선의를 의심치는 않으나, 그럼에도 이 영화 역시 기니의 빈곤이 다시 상업화되어 있는 영화이기는 합니다. 기니의 현실을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영화감독이 영상화하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어떤 사람이 세계 최강국 '미국'의 스트리밍 시스템을 통해 상업적으로 소비한다는 게 비극적이고, 역설적입니다. 유럽의 사람들이 k-pop을 듣고, 우리가 미국으로, 유럽으로 휴가를 떠나는 게 세계화의 본질인가. 편의에 의해 보편성에서 조차 배타된 보편성과, 세계화에서 쫓겨난 세계를 목격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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