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결국 음악의 본질은 연결인 것일까
T.G. 해링턴 / 대니 클린치 감독,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밴드 :: A Tuba to Cuba』입니다.
# 1.
가끔은 치졸한 질투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외세의 침탈로 인한 역사적 단절, 절멸 수준의 전국 전쟁을 겪으며 스스로 발현된 것보다 수입된 것을 현지화하며 성장한 한국은, 삶의 부분집합으로서의 음악을 향유할 뿐이다. 반면, 굴곡진 근현대사를 성숙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스스로 발현될 만큼 충분히 고립된 뉴올리언스의 음악은 삶의 일부분이 아닌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합집합이다. 우리는 발라드를, 힙합을, 클래식을, 트로트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 재즈는 선택이 아닌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존재와 닿아있는 음악이라니. 그 감각을 상상에 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아쉽고 부럽다.
재즈를 소개하고자 한다면 가장 위대한 뮤지션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장 성공한 뮤지션을 이야기할 수도, 가장 음악사적인 뮤지션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T.G. 해링턴, 대니 클린치의 다큐멘터리는 프리저베이션 홀(Preservation Hall)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는 상주 밴드에 주목한다. 감독이 천착한 것은 1750년여에 세워져 1961년부터 공연장으로 자리 잡은 프리저베이션 홀이라는 역사적 '공간'과 그 공간이 위치한 '터전'이다. 역사적이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고 지정학적인 의미에서의 그 모든 것을 통할하는 총체로서의 음악인 것이다.
# 2.
프리저베이션 홀의 창립자 앨런 재프(Allan Jaffe, 1935-87)의 아들이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밴드의 리더가 된 벤 재프(Ben Jaffe)는 통상 금지령으로 인해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유지를 잇기 위해 밴드와 함께 쿠바로 떠난다. 밴드와 동행하는 다큐멘터리에는 정작 음악에 대한 기술적인 내용은 그리 많지 않다. 그보다는 도시와 사람과 역사와 종교와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에 크게 집중한다.
밴드 멤버들과 쿠바 음악가 사이의 대담, 에너지 넘치는 라이브 공연, 음악적 뿌리에 대한 철학적 탐구, 그 사이 즉흥 연주와 잼 세션을 통한 음악가들의 우정을 그린다. 언어를 극복하는 재즈 음악의 보편성과, 물리적 제도적 한계를 뛰어넘는 역사적 문화적 연결성은 화합과 교류의 메시지로 승화된다. 후반부 작품은 뉴올리언스와 쿠바 이전에 있었을 아프리카의 음악적 영향으로까지 과감하게 뻗어나간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리듬과 멜로디가 카리브해를 거쳐 뉴올리언스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재즈라는 독특한 장르의 발현을 역산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충분히 즐겁다.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동료와 이웃, 뉴올리언스와 쿠바와 아프리카 그 모든 것들로부터 연결되는 재즈의 총천연색 청각적 풍경은 작품의 의의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재즈 음악이 (각 음악을 분류해 서술할 소양이 없음에 크게 안타깝다) 리드미컬한 컷 전환의 뒤를 떠받히는 데, 그 순간에조차 음악은 결코 보조적이지 않고 본질적이라는 것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증명하는 듯하다. 영화는 충분히 정보적이지만 보노라면 그 정보는 아무래도 좋다 싶다. 교양으로서의 지적 허기를 채워주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뿐이다. 중요하지만 흘러가도 그만인 이야기들을 듣는 동안 삶의 흔적이 재즈로 승화되는 순간을 입체적으로 감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다.
# 3.
조금 사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음악을 앨범 단위로 듣는 별종에게 요즘은 그리 유리한 시대는 아니다. 디지털 싱글과 실시간 리스트 중심의 음악 시장의 틈바구니에서 정규 앨범을 찾는 것만도 만만치 않다. 신해철 등의 꼬장꼬장한 원론적인 노인들이 살아있던 시절을 끝으로 앨범은 팬심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전환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음악을 앨범 단위로 듣는 것을 고집하는 건 3~4분짜리 개별 음악뿐 아니라 자신의 특정한 시점을 박제한 예술적 인간의 감정 혹은 사상과 교감하는 감각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는 개개인을 넘어 수많은 삶이 응축된 역사의 편린과 교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면에서 크게 감동적이다.
소리는 찰나처럼 짧은 시간이다. 울려 퍼지고 나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 짧은 시간들이 꼬리를 물고 뻗어나가며 만들어지는 음악들이 뉴올리언스의 재즈가 되고, 다시 쿠바의 음악과 아프리카의 음악과 연결되는 장대한 역사는 미세한 블록들이 연결되어 시간의 캠버스를 수놓는 거대한 청각적 콜라주다. 유쾌하고 순수한 표정의 영혼을 담은 음표 하나하나의 연결은 작게는 재즈의 이유이자 크게는 음악과 역사의 전경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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