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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납득할 수 없는 위기 _ 앰부배깅, 한정재 감독

그냥_ 2023. 11.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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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아무리 다양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한들 위기에 납득할 수 없다면 이야기 역시 휘발되고 만다.

 

 

 

 

 

 

 

 

한정재 감독,

『앰부배깅 :: Ambubagging』입니다.

 

 

 

 

 

# 1.

 

내과 인턴의사 김민지는 이숙자 환자에게 앰부배깅을 하고 있다. 86세인 이숙자의 상태는 좋지 않다. 곧 숨이 끊어질 것 같다. 병원에선 이숙자 환자의 보호자를 찾는 방송을 계속 하지만 병원에 있던 이숙자의 손자는 처치실로 오지 않는다. 이숙자의 호흡을 유지시키기 위해 계속 앰부배깅을 하는 민지에게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동생이 아기를 낳는다고 빨리 오라는 전화다. (2017년 제34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 2.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인간의 아이러니를 병원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의사 민지의 상황 위로 두텁게 겹쳐 놓은 단편입니다. 복잡하고 중요한 나의 이기심과, 단순하고 가벼운 타인의 이기심이 충돌합니다. 주인공과 간호사와 보호자의 윤리적 격차가 요소요소에서 드라마틱하게 대비됩니다. 결말에 이르러 시작과 환희의 울음소리와, 끝과 슬픔의 울음소리가 교차하며 처연한 페이스소로 승화됩니다. 들숨의 버거움과 날숨의 허무함. 그것을 한 호흡 한 호흡 수동으로 전개해 나가는 앰부배깅의 지난함은, 그 자체로 감독이 정의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쁜 발걸음에 은유된 누적된 답답함과 조바심이 들이치는 빛으로 해갈되며 완성되는 허탈함은 감독이 작품을 통해 포착하고자 하는 눈부심의 순간입니다. 일련의 두터운 상황들을 건조하게 전시한다는 면에서 특유의 관조적인 느낌은 흥미롭습니다. 몇몇의 이미지와 전개에 있어 부분적으로 상투적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큰 부침 없이 조합해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건 분명 인정받아도 좋은 거겠죠.

 

 

 

 

 

 

# 3.

 

다만, 이 모든 장점이 무색할 정도로 수많은 부분에서 개연성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련의 허술함은 영화를 각자의 합리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페이소스가 아닌, 특별히 이상하고 특별히 나쁜 악당으로서의 누군가로 인해 생긴 문제로 격하시키고 말죠.

 

병간호를 한 번이라도 해보신 분들이라면 너무나 잘 아실 텐데요. 손주가 할머니 이름을 모른다는 건 솔직히 말이 안 됩니다. 평소 할머니 이름을 모르고 살 수는 있지만, 병원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모든 상황은 환자 이름을 중심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죠. 데스크 접수도 환자 이름으로 하구요, 호실을 찾아가는 것도 환자의 이름으로 찾습니다. 호실이 맞나 확인하는 방법도 환자의 이름을 보는 것이구요, 배드에 붙여진 태그도 환자의 이름이구요, 심지어 의사조차 모든 브리핑을 '이숙자 환자 보호자 분'이라는 호칭으로 전개하죠. 손주가 임종의 순간까지 할머니 이름을 모르려면 그전까지 병원의 그 어떤 사람들과도 단 한마디조차 나누지 않았어야 합니다. 설득이 될 리가 없죠.

 

그래요. 데스크와 한마디도 나누지 않을 정도로 할머니 이름을 굳이 피해 다닌 이상한 손자가 있다 칩시다. 굳이 전화라는 걸 병실 밖에 싸돌아다니면서 받을 이유가 있나 하면 그것도 없습니다. 환자 옆에 의자 하나 놓고 전화한들 달라질 게 없으니까요. 의료 장비가 많아서 전화를 못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했지만 주인공도 중환자실에서 전화 잘만 합니다. 사람들 귀에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전화인가? 싶은 생각도 했지만 오만사람들 다 듣는 로비에서 전화 잘만 합니다. 물론 혹자는 이야기를 굴리기 위해 병실 밖으로 손자를 빼야 하지 않겠느냐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다면 더더욱 감독은 '손자가 굳이 1층 로비로 나가야 할 이유'라는 걸 마련했어야 합니다.

 

 

 

 

 

 

# 4.

 

주인공도 못지않게 이상합니다. 본인이 아빠라 아내의 출산에 발을 구르는 것도 아니고, 언니가 동생의 출산에 조바심을 느낀다는 것도 솔직히 설득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무슨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것도 아니잖아요. 애가 뒤집혔다느니 하는 상황에서 산모의 친정 엄마는 자연스럽게 눈앞의 딸에 집중하고 눈앞의 의사에게 의지하지, 아직 오지도 못한 전화기 너머 딸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는 건 상식적이죠. 하다못해 생사의 경계에 있는 위험한 수술을 앞두고 있어 곁에라도 있어야 한다면 또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주인공이 보호자를 애타게 찾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보호자에게 앰부배깅 맡기고 퇴근할 게 아니잖아요. 개인 사정으로 인해 다급한 상황이라면, 주인공은 차라리 자신의 역할을 대신할만한 다른 의료진을 애타게 찾았어야 합니다. 그게 합리적이죠. 막상 손자가 자리를 비운 탓에 환자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환자의 딸이자 손자의 엄마가 다행히 도착해 임종은 지켰으니까요. 이쯤 되면 손자는 '할머니 이름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나쁜 놈'이라는 용도로 동원된 욕받이에 불과하죠.

 

그 외에도 간호사의 어차피 늦었는 데 그냥 포기하라 말하는 장면이라거나, 의사들이 보호자에게 막말하는 장면들이라거나, 전날 당직을 선 의사가 붙잡힐 정도로 시스템적으로 망가져 있는 등 그 상황적 이유가 설득되지 않는 상황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그만큼 배우의 연기는 낭비되고, 관객은 영화의 핵심으로부터 튕겨져 나갈 수밖에 없었을 테죠. 한정재 감독, <앰부배깅>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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