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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푸른 밤의 사색 _ 여섯 개의 밤, 최창환 감독

그냥_ 2023. 11. 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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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모든 여행은 여행자가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목적지가 있다.

 

 

 

 

 

 

 

 

최창환 감독,

『여섯 개의 밤 :: The Layover입니다.

 

 

 

 

 

# 1.

 

오스트리아 철학자 마틴 부버의 글귀와 함께 시작됩니다. 해당 글귀를 인용함은,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여행자로 규정한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작품을 통해 탐구하고자 하는 바가 눈에 드러나는 목표가 아닌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목적지'라는 것에 있음을 의미하는 거겠죠. 알 수 없다는 것은 통제 불가능한 불확실성을 의미할 텐데요. 예측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개인의 나약함으로도, 계획 밖의 영역에 대한 가능성과 풍요로움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영화가 탐구하려는 목적지란 것이 문자 그대로의 장소라거나 성취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타인과 함께 하는 순간 드러나는 나도 몰랐던 또 다른 나의 모습에 가까운 거겠죠. 인생이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예정에 맞춰 나아가는 것이 아닌, 불확실성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변화라 할 수 있고. 작품은 예기치 못한 사건과 맞은 편의 상대로 인해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응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두텁고 섬세하게 묘사하는 과정으로 점철됩니다.

 

 

 

 

 

 

# 2.

 

김해공항에 불시착한 뉴욕행 비행기 승객들이 보내게 된 뜻밖의 하룻밤입니다. 인천에서 출발해 김해에 떨어진 뉴욕행 비행기라는 설정은, 목적지를 까마득하게 느껴지게끔 합니다. 승객들은 막연하고 막막한 시간을 헤쳐나가야 하는 고단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바다를 무려 비행기의 속도로 건너 무언가를 찾으러 가는, 목적지향적인 삶인 것이죠.

 

감독은 그런 인물들의 엔진을 끄고 붙잡아 정체시킵니다. 삶에 제동이 걸리자 예기치 못한 무언가가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그냥 시선만 주고받다 끝났을지도 모를 관계가 시작됩니다. 억누른 채 외면하던 갈등과 불만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불안에 숨겨진 불만과 애정에 숨겨진 서운함이 드러나죠. 그렇게 숨겨져 있던, 가려져 있던,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던, 잊혀져 있던, 외면하고 있던 무언가들의 총체를 영화는 다시 '밤'이라는 품 넓은 이름 속에 녹여냅니다.

 

영화는 선우와 수정, 규형과 지원, 은실과 유진이 만드는 세 개의 옴니버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여섯'이라 부른다는 것은 관계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다만 그렇다 해서 여섯의 대상이 꼭 사람일 이유는 없을 겁니다. 여섯 '명'이 아니라 여섯 '개'라는 것은 해석의 여지를 크게 열어두려는 의도를 엿보게 하니까요.

 

가령 와인과 위스키, 금주와 맥주, 수술과 한약 등 각 인물들의 성향이 투사된 여섯 개의 이미지여도 좋을 겁니다. 설렘과 회한과 부담감과 구속감과 서운함과 불안함이라는 여섯 개의 감정과 기질이어도 좋습니다. 누군가에겐 추억으로 누군가에겐 사건으로 누군가에겐 상처로 누군가에겐 후회로 누군가에겐 사랑으로 여겨질지도 모를 여섯 개의 기억이어도 좋고, 심지어 이들 모두가 통합된 여섯에 대한 또 다른 인상이어도 훌륭합니다.

 

 

 

 

 

 

# 3.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관통하는 정서는 어쨌든 애정입니다. 여섯은 나름의 색깔과 깊이의 애정으로 관계를 시작하고 있으니까요. 반면 가장 뚜렷한 차별점은 삶을 통제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우는 드러내지 않고, 수정은 후회로 드러나고, 규형은 책임감으로 드러나고, 지원은 자유로움으로 드러나고, 은실은 불안으로 드러나고, 유진은 역설적인 애정으로 드러납니다.

 

여섯 개의 모양을 가진 인물들은 밤을 지나는 동안 비밀스러웠던 너와 그 순간의 또 다른 나를 함께 발견합니다. 선우와 수정은 해도 될 법한 이야기도 하지 않는 밤과, 하지 않아도 될 법한 이야기를 하는 밤을 경험합니다. 규형과 지원은 붙잡기엔 너무 느리게 흐르는 밤과, 붙잡히기엔 너무 빠르게 흐르는 밤을 경험합니다. 은실과 유진은 괜찮지 않은 일을 괜찮아하는 밤과, 괜찮은 일을 괜찮지 않아 하는 밤을 경험합니다.

 

그들 사이에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썩 무위미합니다. 선우와 수정이 스쳐 지나는 것도, 규형과 지원이 부서지는 것도, 유진과 은실이 단단해진 것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 불시착의 산물일 뿐입니다. 감독은 이들의 밤을 어떤 식으로도 규정하지 않은 채 담담한 대화에 실어 창백하게 건조하게 액자에 매달아 전시합니다. 까마득한 호텔 건물을 내려다보는 시선과 서늘한 밤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순간들은 영화의 주제의식이 감각화 되는 장면들이라 할 수 있겠죠.

 

 

 

 

 

 

# 4.

 

인생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럼에도 예기치 못한 무언가가 숨어있음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시간 동안 이루어진 관계와 파열은, 그것이 제 아무리 치열하다 한들 당장 레이오버가 없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일 테니까요. 선우와 수정은 서로의 눈길만 어렴풋이 느낀 채 지나갔을지도 모릅니다. 규형과 지원은 뉴욕에 갔을 테고 그 결과 적당히 타협했을 수도, 지원이 뉴욕을 마음에 들어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엄마 은실은 이미 알고 있던 딸의 서운함과 모르고 있던 자궁경부암 수술을 듣지 못한 채 지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죠.

 

무채색의 세계에 무겁게 드리우는 푸른색은 인상적입니다. 비행기 시트의 색깔과 푸른빛의 수영장, 모래사장의 푸른 천, 이 모든 것들을 담아내는 롱테이크는 비밀에 다가가는 인물들의 대화에 차분히 귀 기울일 것을 요청합니다. 각자의 이유로 편히 잠들 수 없는 여섯 개의 밤은, 그 자체로 불시착이 되어 관객의 밤을 일곱 번째 밤으로 인도합니다. 최창환 감독, <여섯 개의 밤>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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