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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어차피 목적지는 같으니까 _ 골목길, 오수연 감독

그냥_ 2023. 10.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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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두려움과 불편함의 갈림길에서 함께 걷는 법을 배운다.

 

 

 

 

 

 

 

 

오수연 감독,

『골목길 :: A Blind Alley』입니다.

 

 

 

 


# 1.

 

늦은 밤 골목길을 걷던 문영이 추행을 당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폭력성과 별개로 흥미로운 것은 치한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라, 굳이 조깅하는 모습을 보여준 후 추행한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뒤에서 와락 덮치는 장면으로 연출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걸 생각할 때, 해당 장면은 의도된 것이라 추측하는 것이 썩 자연스럽겠죠.

 

오프닝의 치한은 이후 서사에 유의미하게 개입하지는 않습니다. 은채가 치한과 만난다거나, 중간에 치한이 잡혀 서사의 흐름이 바뀐다거나 하는 것은 없으니까요. 즉, 일련의 오프닝은 상당히 제한적이고 목적지향적인 시퀀스라 할 수 있고, 그렇다면 더더욱 왜 정면에서 조깅하며 다가오는 컷을 넣은 걸까는 생각해 봄직합니다.

 

조깅은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돌변해 추행한다는 것은, 일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평범해 보이는 타인의 숨겨진 성적 욕구를 최대한 과격한 형태로 과장합니다. 당사자가 느낄 폭력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숨겨져 있다는 점입니다.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한 당혹스러움인 것이죠. 이는 본론의 핵심적인 내러티브라 할 수 있을, 은채는 몰랐던 문영의 성적 지향 및 갑작스러운 고백과 구조적으로 연결됩니다. 두 사건은 방향과 윤리의 측면에서 크게 대비되어 있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일방적인 당혹스러움으로 느껴진다는 면에서 만큼은 동일합니다.

 

영화는 이성애자와 동성애자가 '숨겨뒀던 마음을 온전히 꺼내 놓고서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를 탐구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은채가 말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야지'라는 말은 역으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실제 문영이 자신의 지향과 마음을 고백하자 두 사람은 각자의 이유로 상처받고 관계는 서먹해지고 말죠.

 

 

 

 

 

 

# 2.

 

전반부는 매일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방에 누운 두 사람이 사실은 얼마나 다른 사람인가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과정입니다. 이를테면 한 명은 침대에 위에 있고 한 명은 침대 아래에 있다거나, 요소요소에서 각기 다른 자세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모습 따위죠. 각자가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인격임은 함께 잡히지 않는 카메라의 초점으로도 표현되고 있고요, 다른 언어로 생각하고 있음은 영어 단어를 공부하는 장면으로도 귀엽게 은유됩니다.

 

은채는 문영이 동성애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합니다. 어렴풋이, 어쩌면 어렴풋이라는 말보다는 조금 더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이는 잠자리에서 동성애 코드의 웹툰을 찾아보는 장면으로 확인됩니다. 불안한 은채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다름을 부정하고 거절하고 있었던 것이죠. 영화는 문영의 고백과 함께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클라이맥스 고백신의 폭발적인 연출은 그 순간 두 소녀가 느끼고 있을 불안과 혼란을 표현합니다. 나란히 엎드린 모습과 보건실이라는 공간은, 각자가 느낄 고민에 느슨한 회복과 포용의 이미지를 더합니다.

 

말없이 엎드린 두 사람에게 또 다른 친구가 "싸웠지?"라 묻는 아이러니는 갈등의 허망함을 지적합니다. 결국 두 소녀의 실수는 지향의 문제를 과도하게 크게 심각하게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은 원래부터 다른 사람이었고 그저 무수히 많은 다름 가운데 또 다른 다름이 하나 더해졌을 뿐이지만, 서로가 같은 사람이라 여겼던 친구들은 처음으로 느낀 정체성이라는 다름을 과대평가하고 말았던 것이죠.

 

 

 

 

 

 

# 3.

 

그리고 앤딩입니다. 골목길은 치한을 당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이성애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계단은 동성애를 상징한다 할 수 있겠죠. 학교에서 레즈비언으로 알려진 친구가 계단을 오르는 모습으로 연출되는 이유랄까요. 동성애자 문영에게 골목길은 치한으로 비유되는 두려움의 길이라면, 이성애자 은채에게 계단은 에둘러가야 하는 불편한 길입니다. 둘은 갈림길에 섭니다. 은채가 문영의 가방을 받아 드는 것은 문영의 마음속 무언가, 그것이 불안이든 정체성이든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은채는 문영의 계단을 동행하고, 문영은 은채의 골목길을 동행합니다.

 

두 사람의 내적 성장은 '골목길과 계단의 다름'과 '나란히 걷는 걸음의 같음'을 통해 공간적으로 구현됩니다. 두 사람은 그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충분히 다른 사람이었고 못지않게 충분히 많은 같은 것들을 공유하는 사람이었음을, 나와 너에 대한 두터운 입체성을 깨닫습니다. 골목길과 계단이라는 공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추억이 가득한 편안하고 안락한 방입니다. 계단으로 돌아가든 골목길을 가로질러 가든 목적지는 같습니다. 두 사람의 인간적 관계는 훼손되지도 훼손될 필요도 없는 것이죠.

 

# 4.

 

퀴어라기보다는 개개인의 두터운 입체성을 깨닫는 성장 영화라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합니다. 굳이 동성애가 아니라더라도 나와 매우 달라 막연하게 두려운 원초적인 무언가, 이를테면 국적이든 인종이든 종교든 과거든 그 무엇으로 대체되어도 작품의 가치는 전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던 소녀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과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놀라운 시간들을, 영화는 간결한 은유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오수연 감독, <골목길>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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