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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모성 만세 _ 노웨어, 알베르트 핀토 감독

그냥_ 2023. 10.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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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눈부신 모성을 우러르는 눈물겹고 집요하고 처절하고 지독한 신화적 예찬

 

 

 

 

 

 

 

 

알베르트 핀토 감독,

『노웨어 :: Nowhere』입니다.

 

 

 

 

 

# 1.

 

요 며칠 깜냥에 맞지 않는 어려운 영화를 연이어 보았는데요.

모처럼 날로 먹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나이스.

 

모성 만세! 모성에 대한 영화라 말하기도 뭣한 게 그냥 모성이 전부입니다. 아빠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엄마 최고예요 엄마 사랑해요 노래를 부르는 작품이죠. 제한적인 영화라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노골적입니다. '연약한 여자'였던 주인공이 '강인한 엄마'로서의 모성을 각성한다는 내용이고, 영화는 그 목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일련의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폭력적인 장치들, 이를 테면 위험천만한 컨테이너에서 혼자 애를 쑴풍 낳는다거나, 출산을 앞두고 갑자기 훌렁 옷을 벗어던진다거나, 먹을 것이 떨어지자 잔여물을 먹어치운다거나, 날생선을 뜯어먹는다거나, 찢어진 허벅다리를 셀프로 수술한다거나, 순식간에 배테랑 어부로 전직해 질릴 정도로 물고기를 낚아내는 등의 장면이 속출하는 데요. 그 목적과 수단이 너무 노골적이라 오히려 재미있기도 합니다. 저렇게까지 한다고? 싶은 순간들 마다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죠.

 

관객이 영화가 제시하는 위기에 공감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바다 한복판에 컨테이너를 띄우고 그 속에 엄마와 갓 태어난 아기를 집어넣겠다. 라는 목표가 먼저 결정되어 있고 도입의 20분은 이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민망한 억지로 귀결됩니다. 아무튼 전체주의 정권이라는 게 들어서서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을 막 납치하고 죽인답니다. 왜 그래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도망가라니까 도망가는 수밖엔 없죠. 심지어 그 전체주의가 유럽 전역에 막 퍼져 있다는데요. 때마침 아일랜드인지 아이슬란드인지만 괜찮답니다. 그래야 바다 위에 고립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모성 찬가를 부르는 데 남편이 걸리적거리면 곤란하겠죠. 잘생기고 로맨틱한 스페니쉬 남편은 임신한 아내 두고 굳이 정찰 나섰다가 생이별하구요. 다른 여자들 역시 걸리적거리면 안 되니까 이상한 빨간 휘장 달고 나타난 민머리 나치스트가 잔뜩 악당 표정 지으며 살육하고 지나갑니다. 편리하죠.

 

 

 

 

 

 

# 2.

 

어쨌든 바다 한가운데 동동 떠있는, 밀폐용기와 후드집업만 잔뜩 들어찬 컨테이너에 홀로 갇혀 버린 만삭의 주인공 미아.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엄마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때가 된 아이는 가혹한 환경에서 태어납니다. 그 순간부터 주인공에게 생존이란 더 이상 자기 목숨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죠.

 

영화는 모성을 크게 '강인함'과 '상호성장'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규정합니다. 강인함의 크기는 앞서 말씀드린 과격한 표현들을 통해 직관적으로 묘사하는 데 반해, 상호성장의 가치는 몇몇의 메타포를 거쳐 간접적으로 은유하고 있는 데요. 감독은 다시 이를 최대한 극화시킨 후 빛과 어둠의 대비를 곁들여 제2의 탄생이라는 식의 신화적인 뉘앙스로 재해석합니다.

 

아기를 낳을 때 줄을 잡고 힘을 주는 모습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같은 자세로 컨테이너를 여는 장면은 엄마 미아의 탄생이라 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컨테이너는 그 자체로 거대한 자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가야만 하는 날짜가 정해져 있다거나, 점점 차오르는 물에 밀려 빛과 숨이 있는 곳을 향해 구멍을 넘어 나오는 등의 연출은 탄생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게 합니다.

 

엄마가 태반을 먹는 것은 두 생명의 강한 연결성과 더불어 상호적이고 순환적인 이미지를 부여합니다. 엄마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아기가 볼일을 본 기저귀를 미끼 삼아 다시 물고기를 낚는 것 역시 비슷한 이미지의 반복이구요, 엄마가 아기를 위해 배를 만들고 그 배가 구출됨에 따라 탯줄의 은유와도 같은 끈에 매달린 엄마가 구원받는 시퀀스 역시 마찬가지의 의미라 할 수 있겠죠. 아기 노아는 엄마와 아빠의 희생에 힘입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지만, 동시에 엄마 미아 역시 태어난 딸 덕에 살아있게 된 것이라는 결말은, 모성이란 일방향적이고 시혜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 성장의 관계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물론, 이제야 진정한 엄마가 된 거라면 첫째 아이는 뭐가 되나(...)라는 찝찝함은 모른 척해야겠죠.

 

 

 

 

 

 

# 3.

 

다만 어떤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든 어쨌든 재난영화일 수밖에 없고, 모름지기 재난 영화라면 최소한의 그럴싸함은 담보되어야 했을 텐데요. 아무리 모성을 띄우는 게 목적인 영화라지만 이 부분에 있어 너무 미흡합니다.

 

안 그래도 지친 상황에서 분만까지 했다면 여분의 식량으로는 도무지 견적이 나오지 않을 것 같지만 적당히 피곤한 표정만 보일 뿐 잘만 살아갑니다. 배가 불렀는지 태반과 날생선을 뜯어먹을지언정 남편이 준 스니커즈만큼은 안 먹고 남겨둡니다. 마실 물 떨어졌다 싶으면 기다렸다는 듯 비옵니다. 저렇게 바닷물이 10여 일에 걸쳐 천천히 차는 게 가능한가? 싶지만 뭐 그렇다 치고 지나갑니다. 1년 내내 따뜻한 지중해도 아니고 북유럽의 바다면 무지 추울 텐데요. 심심하면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데 저체온증 그딴 건 없습니다. 비슷한 류의 영화들이 언제나 그렇듯 감염은 면역인가 봅니다. 박테리아, 플랑크톤은 그렇다 치죠. 상처에 민물도 아닌 바닷물이 닿으면 통증에 쇼크가 와도 이상하지 않지만 적당히 꿰매면 그만입니다. 심지어 잘 보면 그 와중에 북유럽 감성으로 인테리어까지 해두고 있어요. 세상에나.

 

통상 재난 영화라는 게 편집증적인 몇몇의 작품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는 영화적 허용이 있고, 관객 역시 그 점은 양해하고 있기 마련입니다만 이 영화는 그걸 감안하더라도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때문에 보다 보면 주인공이 엄마여서 살아남은 건지 그냥 톰 크루즈 못지않은 슈퍼 우먼이라 살아남은 건지 애매해져 버리고 말죠.

 

# 4.

 

정리하자면 모성을 증명하는 주인공의 투쟁적 에너지가 인상적인 작품이긴 합니다. 촬영의 난이도와 몰입감은 인정받아도 좋을 테고, 특히 아무리 재연된 공간이라지만 상당히 가혹한 여건 속에서 몸 던져 개고생 한 배우 '안나 카스틸로'의 열연은 크게 칭찬받아도 좋은 거겠죠. 반면, 사람에 따라선 얼마든지 거북할 수 있는 표현들이 있다는 점과, 재난 영화로서의 기준에 크게 미달한다는 비판은 감수해야 할 겁니다. 알베르트 핀토 감독, <노웨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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