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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언어의 여백 _ 폴라로이드 일기, 김채윤 감독

그냥_ 2023. 9.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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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언어로는 온전히 채울 수 없는 삶의 흔적들을 탐구하는 여정

 

 

 

 

 

 

 

 

김채윤 감독,

『폴라로이드 일기 :: Polaroid Diary』입니다.

 

 

 

 

 

# 1.

 

'일기'는 일상적이고 회고적인 뉘앙스만을 전담하는 일종의 그릇이라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핵심은 그런 일기를 형용하는 '폴라로이드'죠. 폴라로이드는 회사명임에도 불구하고 즉석 사진을 뜻하는 보통 명사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이 작품에서의 쓰임 역시 그러하다 해야 할 겁니다. 사진은 순간순간의 단편적 장면들이 파편화되어 있는 상황을 건조하게 의미합니다. 구태여 '즉석' 사진이라 설정한 것은, 영화가 활용하려는 사진이라는 개념에 불필요한 예술성 따위를 배제하고 현장감과 생활감, 즉시성 따위만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이해할 수 있겠죠.

 

영화는 가정 폭력이라는 파괴적 사건에 묻어 나오는 흔적으로서의 폴라로이드로 점철됩니다. 소녀 '하늘'이 직접 찍는 사진은 물론이거니와, 사진 찍는 소녀의 모습을 포함한 모든 것들 이를테면 스탠드, 계단, 의자, 시소 등 각기 다른 공간에 홀로 앉아 있는 순간들이라거나, 침전된 작은 목소리, 깨작거리는 손놀림까지 모두 흔적으로서의 폴라로이드 사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주 보이는 앉은 자세는 인물의 주눅 들어 가라앉은 내면과, 인생의 특정 시점에 정체되어 있음을 표현함과 동시에, 운동성을 제약해 그 자체로 단편적 장면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 기여합니다. 후반부 소녀의 흔적들을 이어받는 연주의 흔적들 역시 중요합니다. 목덜미의 멍자국을 가리는 파스뿐 아니라, 집에서 옷을 갈아입는 순간 비치는 앙상하고 가냘픈 실루엣 역시 연주의 내면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소소하지만 중요한 미장센이라 할 수 있겠죠.

 

흔적으로서의 폴라로이드를 강조하기 위한 영화의 방법론은 '대비'입니다. 대상은 '언어'인데요. 사진을 깊은 간접성의 표상이라 한다면 언어는 얕은 직접성의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어 수업, 발표, 일기 따위의 언어적 활동들이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이유죠.

 

하늘이 사진을 찍어주지 않는 것에 화가 난 친구가 소녀를 공격했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하필 공격의 수단이 언어의 도구인 연필이라는 점입니다. 교사 연주가 화해시키는 순간조차 소녀는 친구의 사진을 찍지 않는데요. 영화가 사진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핵심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겠죠. 연주의 훈육 수단이 언어였던 것에 반해, 구름사다리에 오른 하늘에게 손을 뻗는 결말이 그 자체로 하나의 사진처럼 연출된다는 점 역시 유사한 효과의 대비입니다. 하늘의 부모와 연주의 남편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방식 역시 흥미롭습니다. 부모는 목소리라는 '음성 언어', 남편은 스마트폰에 찍힌 '문자 언어'라는 점에서 통일된 흐름을 읽을 수 있죠.

 

 

 

 

 

 

# 2.

 

단정할 수 없는, 선명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절박하게 내비치는 흔적의 역설입니다. 학생 간의 폭력을 옳은 말로 중재하면서도 자신은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아이러니이자, 스탠드에 앉아 있던 선생을 발견하고 같은 장소에 앉아 기다리던 아이와 달리 시소에 앉은 아이를 모른 채 지나치는 선생의 아이러니이자, 주저앉은 아이에게 하늘이라는 가장 넓은 이름을 붙이는 아이러니입니다. 단편적인 흔적들과 파편적인 아이러니가 서서히 조각되다 결말에 응집되며 힘을 받는 구성은 인상적이죠.

 

성장의 공간이자 보호의 공간인 학교에 깊숙이 파고드는 폭력이라는 면에서 비장미도 있구요. 선생이 서서 학생을 내려다보며 시작한 영화가 높은 곳에 앉은 학생을 올려다보며 끝난다는 점에서 두 인물 사이에 강한 연결성 내지 연속성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무수히 많은 포착하는 영화들과 차별되는 '포착되지 않는 여백을 진중하게 포커싱하는 작품'이라는 데에 그 가치가 있는 단편이라 할 수 있겠죠.

 

# 3.

 

사진에 대한 영화이니만큼 작품 외적인 이야기, 소위 폴라로이드 바깥의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요. 영화는, 언어가 상황을 선명하게 하는 대신 단편화 시킨다면, 장면은 상황을 모호하게 하지만 입체적이게 만든다 생각하는 데요. 장면의 행간을 읽는 것은 까다롭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언어가 아닌 장면이기에 읽을 수 있는 어떤 것이 두텁게 존재한다는 면에서 그 자체로 영화론과도 닿아있는 지점이 있어 보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영화에서의 가정 폭력이란 핵심적인 내러티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되어도 그만인 것이기도 합니다. 작품의 본질은 '일기를 글이 아닌 폴라로이드로 채우는 행위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에 있으니까요. 매일 같이 써 내려가게 될 일기를 인생이라 한다면, 폴라로이드 일기란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는 과정과 그렇게 찍은 무언가를 유심히 보는 과정으로 인생을 채우겠다는 선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송곳니>를 통해 자신의 영화를 인식과 사고와 상상의 울타리를 뛰어넘게 만드는 창조적 계기라 선언했던 것처럼. 김채윤 감독의 영화란 언어로는 온전히 채울 수 없는 삶의 흔적들을 탐구하는 여정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젊은 감독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영화관을 선언한다 생각하며 다시 보노라면 전혀 다른 의미에서 감동적인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달까요. 김채윤 감독, <폴라로이드 일기>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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