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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호러에도 여름은 오는가

그냥_ 2023. 8.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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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텐트폴까지는 고사하더라도 어째 호러가 한편도 없네?

 

 

 

 

 

 

 

 

『빼앗긴 호러에도 여름은 오는가』

 

 

 

 

 

# 1.

 

2023 여름 텐트폴은 류승완 감독의 밀수,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작전, 김용화 감독의 더 문,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입니다. 티켓값이 만만찮은 요즘인 데요. 없는 살림에 전부 극장에서 봤다는 것이 내심 스스로 대견스럽군요. 티켓값에 반비례한 관객의 인내심이 점점 낮아지는 탓에 스코어는 더 엄격하고 냉정해지는 듯합니다. 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제 예상보다 조금 더 선전하는 것 같구요, 비공식작전과 더 문은 손익분기점을 크게 밑도는 모양새인데요. 갈수록 흥행 성적과 작품성의 괴리가 좁혀지는 듯한 느낌도 있군요.

 

밀수와 비공식작전은 공통적으로 충무로 특유의 안전제일 메타를 따라간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모 유튜브에서 비공식작전의 주연 하정우가 '특별한 단점 없이 무난하게 두루 볼 만하다'는 평은 혹평이 아님에도 박스가 나쁘게 나온 것이 의아하다는 류의 이야기를 하던데요. 어떤 느낌으로 만들어진 작품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죠. 성패와 무관하게 어쨌든 도전적인 면이 있었던 더 문이나 콘크리트 유토피아와는 애초에 접근부터가 다른 작품이랄까요.

 

각론을 차치한다면 밀수와 비공식작전의 성패는 턱걸이에 성공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의 차이지 않나 싶긴 합니다. 밀수의 캐스팅 규모와, 감독의 명성이 보증하는 장르적 완성도가 소위 '볼 만한 영화'의 하한선을 간신히 넘긴 듯 보이구요. 비공식작전은 그전 모가디슈와 수리남, 교섭 등에서 이미 과소비된 아이템과 주연 배우의 불미스러운 구설, 직관적으로 상위호환처럼 보이는 밀수의 존재 따위가 커트라인 아래로 작품을 끌어내린 듯한 모양새라는 것이죠. 어쨌든 두 작품이 그 자체로 하나의 경계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은 있습니다. 특별히 작가주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대신 무난한 상업 영화를 무난하게 만들어 성공하고 싶다면, 비공식작전 정도로는 부족하고 밀수만큼은 되어야 한다는 식이죠.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큰 기대를 하진 않았고 조금 더 솔직하자면 다소간의 의심도 있었습니다. 아이템부터가 간접성이 매우 떨어지는 계급론일 수밖에 없다 봤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웬걸. 입체적인 서사 및 캐릭터와 유려한 연출과 나름의 깊이가 의외의 만족을 준 작품이었습니다. 올해 나온 한국 작품들 가운데 수준급이라 해도 무리는 없다 싶은 데요. 적당한 기회에 생각이 정리되는 데로 글로 옮겨봐도 좋겠죠. 더 문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이걸 까기 시작하면 글을 새로 하나 파야 할 테니까요. 오만하기 그지없는 감독의 망언까지 고려하면 글 하나로 모자랄지도 모르겠군요.

 

여하튼 찌는 듯 더운 와중에 영화관을 뻔질나게 드나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텐트폴까지는 고사하더라도 어째 호러가 한편도 없네?

 

 

 

 

 

 

# 2.

 

솔직히 그 산업적 규모나 창의적 성취에 비해 한국 영화계는 이례적일 정도로 호러가 취약하긴 합니다. 내수시장 규모의 한계와 비영어권의 특수성 때문에 일정한 장르 편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여타 장르가 처한 현실이 호러 정도로 가혹하냐 하면 그렇지는 않죠. 봉준호와 박찬욱이 견인하는 스릴러는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장르라 할 수 있을 테고요. 이창동, 이준익 등의 거장뿐 아니라 윤가은 같은 젊은 감독들이 만드는 드라마도 강력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류승완으로 대표되는 액션 코미디라거나 최동훈식 범죄 누아르 물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요. 이젠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홍상수라거나, 김기덕이라는 희대의 이단아도 있었죠.

 

매니악한 소장르라 할 수 있는 오컬트조차 곡성이나 검은 사재들, 사바하 등을 통해 일정한 파이는 차지하고 있는 데 반해 정통 호러는 전혀 자기 공간을 얻지 못하고 있는 데요. 이 정도로 초토화된 장르는 SF 정도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듭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우리에겐 소름, 알 포인트, 장화 홍련, 여고괴담이 있다. 다시는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각각 2001년, 2004년, 2003년, 심지어 여고괴담은 1,2,3편 모두 90년대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비참하기만 할 뿐이죠. 기껏해야 기담의 정범식 감독이 (블레어 위치나 그레이브 인카운터를 고스란히 가져다) 만든 파운드 푸티지, 곤지암이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며 명맥을 이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마저도 벌써 5년 전입니다.

 

호러 영화란 태생적으로 타 장르에 비해 감독의 능력을 크게 요구하는 데요. 제작 과정에서 감독의 카리스마가 상대적으로 잘 먹히는 한국의 제작 환경을 생각하면 더욱 이상한 일이기도 합니다. 할리우드는 제작사, 일본 영화는 투자사의 입김에 이리저리 휘둘리기 마련인데 반해 상대적으로 우리는 감독의 입지가 그래도 일정하게 보장되는 문화니까요.

 

 

 

 

 

 

# 3.

 

호러는 뭐랄까요. 몸 대신 머리 갈아 넣는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발로 뛰어 만드는 대신 엉덩이로 만드는 영화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아무리 큰돈과 발품을 들인다 하더라도 흥행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은 장르입니다만, 역으로 몇몇의 특출 난 발상과 아이디어가 어마어마한 가성비로 승화되기도 하는 장르물이죠. 당장 앞서 말씀드린 곤지암만 하더라도 제작비는 고작 24억, 손익분기점은 70만 밖에 되지 않는 저예산 영화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괜히 제임스 카메론이나 샘 레이미와 같은 거장들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다 보면 초기작 중 저예산 호러가 하나씩은 꼭 끼어있는 게 아니죠.

 

따라서 결국 호러의 위기라는 것은 시나리오의 위기와 연결될 수밖에 없을 텐데요. 특히 인디 영화에서 조차 재기 발랄한 호러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씁쓸하게 합니다. 글쎄요, 이유는 여러 방면에서 찾을 수 있겠죠. 영화판 전체가 해가 갈수록 축소되어 가는 탓에 새로운 작품을 찍는 데 위축될 수밖에 없고, 그 영향을 가장 외곽의 장르가 먼저 받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구요. 대규모 자본의 상업 영화뿐 아니라 작은 영화들조차 마음껏 시도하고 실패할 수 있는 토양이 그만큼 메말라가고 있다는 것이 현상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죠. 신인 감독들을 견인하는 리딩 그룹이라 할 법한 감독들의 강력한 스타일이 내러티브보다는 미장센에 치중된 영감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되구요. 무조건 영화는 일정 부분의 사회적 문제를 품어야 한다는 관성(혹은 소명의식 혹은 요구사항)이 호러에 악재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혹자는 '호러는 원래 가난한 거야'라며 관객 기호를 탓할지도 모르고 영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합니다만, 한창 뉴 밀레니엄의 시대적 불안과 맞물려 호러가 각광받던 90년대 말 00년대 초의 장르적 동력을 양산형 시리즈물의 형태로 소비한 영화계의 실책도 부정할 수 없다 보니, 여기까지 가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냥 호러의 수요가 없다 말하기에도 조금 애매하긴 해요. 200만이 넘는 흥행을 거둔 조동필의 겟 아웃도 있었구요, 아리 에스터의 유전이나 미드소마 같이 사랑받는 작품들도 있으니까요. 일단 잘 만든 영화가 있는 데 이렇게 잘 만들어도 망했다더라고 울어야 최소한의 설득력도 생길 겁니다.

 

 

 

 

 

 

# 4.

 

이러저러한 이유로 헛헛한 마음에 국산 호러가 생각날 때면, 결국 돌고 돌아 <장화, 홍련>을 다시 보곤 하는데요. 이번 여름도 또 보게 되었군요. 벌써 20년이 지난 작품의 내러티브, 이를 테면 자매의 정서적 관계라거나, 수연의 내면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 만들어 낸 허상과 실존하는 귀신의 대비, 뒤틀어진 가족 관계와 반전 플롯, 이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저택의 디자인과, 목조 건축물의 습기와, 호수의 처연함과, 정서를 지배하는 꽃무늬 벽지와, 이병우의 ost 돌이킬 수 없는 걸음 따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솔직히 이젠 시시합니다. 다시 봐도 재미있긴 합니다만 그래봐야 '그래 이런 영화였지...' 하며 재차 확인할 뿐이니까요. 겸사겸사 비현실적인 미모의 임수정에 감탄하는 정도가 덤이랄까요.

 

다만, 그럼에도 볼 때마다 새로 보게 만드는 건 단연 염정아입니다. 얼굴 반쪽 가린 단발머리의 염정아. 싱크대 아래 흘러내리는 피와 침대 위 목 꺾인 귀신 따위보다 긴 복도를 미끄러져 흘러오는 사람도 귀신도 괴물도 환경도 무엇도 아닌 염정아 말이죠. 지금도 영화를 보다 어떤 배역이 '뱀'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이 영화에서의 염정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데요. 이런 류의 등골 송연한 감동을 줄 수 있는 매혹적인 캐릭터는 호러에서 밖에 찾을 수 없는 거겠죠.

 

당장 생각난 김에 조금 찾아보니 <신체모음.zip>과 <치악산>이 올해의 호러 영화로서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합니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수상작으로서의 명성을 등에 업고 무난히 개봉을 앞둔 신체모음.zip과 달리, 치악산의 경우 그 제목을 이유로 지자체와 홍역을 치르고 있다는 소식인데요. 다소 의아하긴 합니다. 설마 하니 원주에, 밀양은 납치 피해자의 도시라 생각하고(밀양(2007)), 부산 앞바다는 매년 쓰나미가 몰려오고(해운대(2009)), 곡성군엔 아쿠마가 뭐시 중하냐 묻고 다니고(곡성(2016)), 부산행 KTX에는 좀비가 득실거리고(부산행(2016)), 텍사스에는 전기톱 학살자가 돌아다닌다(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 진지하게 믿는 모지리들만 살고 있는 건 아닐 텐데 말이죠.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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