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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피해망상의 주인 _ 웨더링, 메갈린 에치쿤워크 감독

그냥_ 2023. 6.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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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피해망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메갈린 에치쿤워크 감독,

『웨더링 :: Weathering입니다.

 

 

 

 

 

# 1.

 

확실히 넷플릭스는 단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단편을 낼 거라면 차라리 시리즈를 선호하는 편인데요. 체류시간을 최대한 길게 뽑아내자는 운영방침에 반하기 때문인 거겠죠. 그럼에도 가끔씩은 단편을 제작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단편은 왓챠에서 주로 본다지만 외국 단편은 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소소하게나마 제작되는 넷플릭스산 단편들은 생각보다 더 쏠쏠합니다.

 

아이를 유산하게 된 엄마가 느끼는 자책감과 트라우마를 조명하는 작품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병원과 집을 오가는 각각의 장면들은 실제 일어난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인공 '제미나'를 짓누르는 가혹한 감정들의 시각적 투사처럼 보이기도 하죠. 엄마와의 대화는 엄마의 조언대로 집에서 아이를 낳았더라면 결과가 달랐을까 싶은 후회를 반영한다거나, 다 잘될 거라는 식의 무조건적인 응원과 위로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2.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의사는 홀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사람의 고독감이라거나, 충분히 케어받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원망을 과장합니다. 어두운 밤의 집은 어둠으로 상징된 고통스러운 현실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동굴이라 이해한다면 무난하겠죠.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고양이는 일련의 현실을 외면하거나 부정하고자 하는 바람이 무의미함을 의미합니다. 집 안에 숨어든 자신을 찾아온 후드를 뒤집어쓴 또 다른 자신은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을 직시하는 순간입니다.

 

욕실에서 샤워를 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씻어낸다는 것을 의미할 테고요. 씻어내려는 의지가 폭력에 무마된다는 것은 이미 벌어진 일은 지워낼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입에서 새어 나오는 피는 출산과 유산되어 버린 아이의 은유라 할 수 있을 테고요. 치마 아래로 흘러나오는 뱀도 비슷한 이미지와 뉘앙스로 이해한다면 무난하겠죠. 후반부 어둠과 대비되는 낮으로 시간이 바뀝니다. 집안과 대비되는 밖으로 공간도 바뀝니다. 불현듯 누군가가 주인공을 끌고 나가 수영장에 집어넣고 목을 조릅니다. 앞서 등장한 후드를 쓴 자기 자신인 데요. 수영장을 가득 메운 물은 극복과 재탄생의 이미지처럼 보입니다. 자신을 숨 쉬지 못하도록 물에 처박아 넣은 것도 자신이지만, 동시에 허공에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은 물에서 끄집어내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극복인 것이죠.

 

여기까지는 유산을 겪은 산부의 트라우마와 자책감과 회한 따위를 스릴러의 작법을 통해 표현한 후, 남편도 엄마도 친구도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드라마적 메시지로 마무리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개뜬금 결말이 관객을 의아하게 합니다. 기자 출신 주인공이 사건을 극복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흑인 여성을 보호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죠.

 

 

 

 

 

 

# 3.

 

이 모든 고통은 [유산이라는 사건] 때문이 아니라 [흑인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생긴 사건이라는 결말입니다. 엄마가 집에서 아이를 낳은 것은 백인 의사는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고, 의사가 주인공을 무시한 것도 환자가 흑인여성이기 때문이고, 백인 남편이 떠난 것도 아내가 흑인여성이기 때문이고, 친구가 찾아와 찝쩍거린 것도 흑인여성을 만만히 봤기 때문이고, 회사가 아랑곳 않고 복귀를 강요당하는 것도 흑인여성이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이런 억지가 설득이 될 리가 없죠. 때문에 결말을 보고 나면 주인공에 감정적으로 동화되어 그녀의 극복에 감동을 느끼는 것 대신, 이건 그냥 피해망상 아냐?라는 불쾌한 감상에 먼저 도달하고 맙니다.

 

그리고 잠시 후 문득, 지금 피해망상에 빠진 건 누구인 거지?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더군요. 만약 감독이 피해망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 작품은 보이는 그대로 흑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모든 불행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싸구려 작품이 될 겁니다. 정석적인 해석이긴 하죠.

 

반면, 감독 또한 주인공이 피해망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면 어떨까요. 유산이라는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겪은 여성이 남편과 엄마와 친구와 자기 자신까지 밀어낸 끝에, 유일한 도피처로써 피해망상에 미쳐버린 누군가로 재탄생하며 막을 내리는 영화라고 말이죠. 결말의 밝은 느낌은 어디까지나 미쳐버린 내면을 대비시키기 위한 장치였을 뿐,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서늘한 스릴러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쪽이라면 적어도 앞서의 해석보다는 훨씬 개연성이 개선된 그림처럼 보이죠. 확률이 낮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요. 메갈린 에치쿤워크 감독, <웨더링>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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