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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손가락의 방향 _ 이츠 어 디재스터, 토드 버거 감독

그냥_ 2023. 5.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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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빌어먹을 세상이 또 망했습니다.

이쯤 되면 망하지 않는 세상이 잘못인 것 같아요.

 

 

 

 

 

 

 

 

토드 버거 감독,

『이츠 어 디재스터 :: It's a Disaster』입니다.

 

 

 

 

 

# 1.

 

네 쌍의 커플이 커플 브런치라는 이름의 소소한 파티에 참석하는데요. 갑자기 세상이 망했다 합니다. 이유 모를 공격으로 미국 한 복판에 방사능 오염과 신경독 가스가 퍼지게 되고, 파티 중인 집 안에 모조리 고립되어 버렸다는 설정인 것이죠. 나름의 발버둥이랍시고 덕트 테이프를 문틀에 처덕처덕 발라보지만 그 정도로 해결될 리 없습니다. 결국 몇 시간 못가 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 상황. 사람들이 보이는 각양각색의 발버둥을 수다스러운 대사에 얹어 관찰하는, 고런 느낌적인 느낌의 코미디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방사능이 어쩌고 신경독이 어쩌고 하는 탓에 얼핏 재난영화처럼 들리지만 재난영화는 아닙니다. 재난을 증명하는 건 솔로라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이웃의 어설픈 주장과,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해 까마귀 밥이 되어버린 상습 지각범 친구의 시체가 전부죠. 되려 감독이 주목하는 것은 재난이 아니라 재난 앞에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여덟 명의 감정과 선택에 있습니다. 인간의 다양한 본성과 삶에 대한 의미를 탐구함과 동시에, 이들의 사단에 손수 Disaster이라 이름 붙임으로써 블랙 코미디로서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있죠. 포스터 속 방호복을 입은 남자가 손가락질하는 대상은 영화를 보게 될 불특정 다수입니다. 제목이 지적하는 Disaster는 좁게는 영화 속 여덟 명의 사람들, 크게는 그들로 대변되는 모든 현대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종말이란 그저 사회적 관계로 통제되어 있던 내면의 스트레스를 뒤흔들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물 잔의 물이 넘치게 만드는 폭력적 계기에 불과합니다.

 

작품의 매력은 제한적인 환경 속에서 다소 난해할 수도 있었을 다양한 층위의 요소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잘 버무려내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코미디와 드라마와 스릴러 따위의 다양한 장르들이 교차되면서도 크게 충돌하는 바 없이 각자의 목적에 맞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죠. 시트콤을 보는 것만 같은 소소한 유머와 코미디는 작품의 핵심입니다. 아니시 차칸티의 <런>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침실과 화장실, 차고와 부엌 따위의 공간들을 알뜰하게 동원해 비슷한 코미디들의 클리셰를 영리하게 비껴나가는 맛은 결코 나쁘지 않죠. 주제의식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수다스럽게 토해내는 위트만으로도 최소한의 티켓값 정도는 방어하고 있달까요.

 

 

 

 

 

 

# 2.

 

모두는 각자의 입장과 문제와 갈등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들의 비밀과 거짓말, 배신과 용서, 사랑과 죽음을 나름의 진지함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도 특기할만합니다. 웃기는 상황에서도 인물들이 우스워지진 않도록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죠. 성향에 따라 점차 발전되어 가는 단계적 심리 변화는 전개에 유의미한 깊이감을 형성합니다.

 

관객에게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관계할지를 상상하게 한다는 면에서 사이코드라마스러운 면 또한 발견됩니다. 영화는 우리가 삶과 죽음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솔직하게 대화하는 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인물 간의 의식적인 대비는 영화가 진단하는 인간상에 대한 이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하는데요. 그 과정에서의 캐릭터 간 균형 역시 시나리오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네요.

 

제한적 상황을 최대한 다채롭게 풀어내기 위한 다양한 촬영과 편집도 준수합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기대보다 더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한 것도 장점으로 짚을 수 있겠죠. 토드 버거 감독은 배우들에게 대본을 외우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도록 허락했고, 그 결과 괴랄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몰입감 높은 현장감을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단점이라면 (어쩔 수 없긴 했겠습니다만) 플롯이 단순하긴 합니다. 장르적 재미와 별개로 특유의 블랙 코미디라는 한 가지 톤으로만 일관하는 탓에 다소 지루하기도 하죠. 작품에 완급으로 활용되어야 했을 몇몇의 포인트, 이를테면 3p 낚시나 이혼을 앞둔 부부의 화해와 같은 장면들에서 충분한 긴장감이나 감동을 자아내지는 못합니다. 결말은 컬트적인 작품의 정체성을 생각할 때 다소 심심하죠. 에반 골드버그, 세스 로건의 <디스 이즈 디 엔드>를 떠올린다면, 규모의 차이는 감안한다 하더라도 더 많은 상상과 조작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은 가시지 않을 겁니다.

 

 

 

 

 

 

# 3.

 

일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멈블코어 영화에서 최대의 연출은 언제나 연기이기 마련인데요. 극을 장악하고 이끌어나가야 했을 여덟 명의 배우는 모두 나름의 괴짜스러움과 진심을 안정적으로 소화합니다. David Cross가 연기한 Glen은 새로운 멤버로서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모습과 마지막의 트위스트가 인상적입니다. America Ferrera가 연기한 Hedy는 화학 선생님으로서 위기 상황을 가장 먼저 파악한 후 극단적인 자유를 찾는 모습으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Julia Stiles가 연기한 Tracy는 까다로운 의사로서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불안함을 느끼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죠.

 

특별히 음악에 대해서도 짚을 만 합니다. 인상적인 오프닝은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 원하는 분위기와 주제의식을 부여하기 위해 음악을 크게 활용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은 제한적인 공간의 영화에 유의미한 완급을 부여하며, 때로는 긴장감을 때로는 유머를 때로는 사랑을 돋보이게 합니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흘러나오다가 되려 낚시 요소로 사용해 이후의 소소한 전개를 예상치 못하게 방해하기도 하죠. 영화를 보고난 후 앤딩 크레디트 마지막을 두텁게 오르는 ost 리스트는 마치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이 음악인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구태여 화려한 화면까지는 필요 없을지라도 썩 괜찮은 음향의 도움을 받으며 봐도 나쁘지 않을 작품이랄까요. 토드 버거 감독, <이츠 어 디재스터>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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