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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아시발꿈 _ 완벽한 타인, 이재규 감독

그냥_ 2018. 11. 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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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시작부터 독특합니다. 누구나 유해진들이 나올 줄 알았을 텐데 웬 아이들이 물고기 낚시를 하거든요. 늦은 밤 강가에 모여 물고기를 구우며 월식을 구경하면서 그곳이 강인지 바다인지로 다툼을 벌입니다. 쉽게 규정할 수 없는 타인과 개인의 경계를 슬며시 은유하며 이후 어른이 된 캐릭터들도 은근히 들이밉니다. 능구렁이 같네요. 재밌습니다.

 

 

 

 

 

 

 

 

'이재규' 감독,

『완벽한 타인 :: Intimate Strangers』입니다.

 

 

 

 

 

# 1.

 

수십 년이 지나 친구들이 모입니다.

석호의 집들이 겸 월식 구경 겸 식사 모임이네요.

 

유해진과 염정아, 조진웅과 김지수, 이서진과 송하윤 등의 낯익은 얼굴들이 앞다퉈 스크린에 등장해 무섭게 대사를 쏟아냅니다. 바삐 대화가 오가는 사이 인물들의 배경과 관계, 성격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집니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개성적이면서 또 일상적입니다. 독특한 상황이 얽혀있지만 하나하나는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는 얘기를 주고받다 예진의 제안으로 게임을 시작합니다.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스마트폰을 통해 오는 모든 메시지, 전화, 메일을 공유하자는 거죠. 영화는 서스펜스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갑니다. 관객은 쫄 이유가 없는데 감독 혼자 쫄고 자빠지는 식의 갑갑한 장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적당히 웃기다가 적당히 쪼았다가 다시 적당히 웃기다가 적당히 쪼았다가 하는 리듬이 훌륭합니다.

 

허투루 낭비되는 대사가 거의 없습니다. 얼기설기 꼬이는 떡밥들은 빠짐없이 회수되고 그 과정에서 관객의 웃음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냅니다. 영화 끝나기 10분 전까지는 과장 조금 더해서 서스펜스를 살린 블랙코미디로서 거의 완벽에 가깝습니다. 이때까지의 옥에 티라고는 15살 연하의 배우와 꼼냥꼼냥 부부연기를 하는 이서진에 대한 부러움과 순실전자 빅스비뿐이죠.

 

 

 

 

 

 

# 2.

 

응? 근데 왜 10분 전까지야? 라 물으신다면 기가 막히게 조립해가던 영화가 종반부 거하게 헛발질을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영화에서 일어난 게임이 몽땅 다 없었던 일이었답니다! 하하하하하하하ㅏㅏ하하하ㅏ하핳하ㅏㅎ하ㅏ하... 그러니까 아시발꿈 이란 거죠.

 

특유의 지랄 맞은 아티스트병이 중증으로 도지며 영화는 산을 타다 못해 월식 중인 달로 날아갑니다. 사실 느낌이 쎄하긴 했어요. 태수가 수현에게 무언가의 이유로 오해를 사는 지점에서부터 영화가 갑자기 일상 코미디에서 사이코 드라마로 톤을 바꾸거든요. 석호 역의 조진웅도 나왔던 분노의 윤리학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의 사회 실험 같은 분위기가 갑자기 진하게 풍기고 인물들은 어색하게 공간에 흩뿌려져 배치됩니다. 세경이 모종의 이유로 내던진 반지가 빙글빙글 돌면서 쓰러지지 않는 연출. 누가 봐도 인셉션이 연상될 수밖에 없는 오마주가 나오는 순간 욕이 나옵니다. 이거 봐요. 박찬욱이 감독들 버릇 다 버려놨다니까요?

 

월식에 가렸던 달이 나오며 가상의 심리극으로부터 벗어난다... 뭐 이딴 중2병스러운 연출인 건데요. 관객이 2시간 내내 열심히 감정 이입했던 인물들이 매력 하나 없는 평이한 연기로 영화를 허겁지겁 마무리하는 데,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라는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 3.

 

관객이 딸피가 됐다는 걸 눈치챈 감독은 기어이 마지막 페이탈리티를 날립니다.

자막이죠.

 

차라리 제 척추를 뽑지 그러셨나요. 그게 덜 잔인했을 텐데요. 안 하면 뒤지는 병이라도 걸렸는지 주야장천 해대는 영화의 메시지를 지 입으로 그것도 대사도 아닌 글자로 띄우는, 멍청하고 무능하다고 밖엔 도저히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그 거지 같은 연출이 여기서 터집니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할 거면 어디 절간에라도 들어가서 면벽 수행이라도 하면서 진짜 좋은 문장을 짜내기라도 하던가. 세 개의 얼굴이 있다. 뭐 이 따위의 아무 의미도 감동도 특별함도 없는 대사를 그것도 왼쪽 사선으로 날리면서 써 갈깁니다. 굴림체에 볼드랑 이탤릭도 걸지 그러셨어요? 이거 봐요 이거 봐. 김지운 감독이 감독들 버릇 다 버려놨다니까요?

 

뭘 하고 싶었는지는 알겠습니다. 모든 걸 공유하려고만 드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개인을 인정하고 눈 감을 건 눈 감으면서 관계를 맺어 나가도 그게 관계의 본질을 훼손하는 건 아니다. 라는 식의 꼬꼬마들이 초등학교 생활 1학년만 해도 알법한 얘기를 굳이 다 큰 어른들에게 하려는 거잖아요?

 

 

 

 

 

 

# 4.

 

영화관을 나서며 유독 짜증이 났던 이유는

그 전까지의 전개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병이 도져 마지막에 빅 똥을 싸기 전까지 근래 한국영화에서 쉽게 찾기 힘든 완성도 높은 코미디 영화, 그 자체였거든요. 최동훈 감독 부럽지 않은 찰진 대사들이 밀도 있게 쏟아집니다. 그 대사들이 소리로 옮겨질 때의 템포도 너무나도 좋습니다.

 

배우들 역시 베테랑답게 존재감을 내뿜으면서도 어쭙잖은 힘싸움을 하려들 지도 않습니다. 조진웅 특유의 인간미가 녹아있는 사려 깊은 눈빛, 유해진의 시니컬하면서도 츤데레스러운 시그니쳐 연기, 이서진의 단단한 기본기에 바탕한 능글맞은 표현, 윤경호의 가슴 시린 섬세한 감정 연기가 극장을 가득 메웁니다. 김지수는 특유의 불안함을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송하윤은 베테랑 선배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반짝반짝 빛냅니다. 염정아는 말해 뭐합니까. 누나, 사랑해요.

 

한정된 공간 안에서의 연출도 좋았고, 공간을 적절히 이용하는 방식도 좋았습니다. 관객과 인물만 있는 외부, 일부의 인물끼리만 만나는 중립적인 복도, 모두가 올라오는 게임의 링인 식당의 위계를 명확히 나눠 관객으로 하여금 대화가 발생하는 공간만으로도 집중의 정도를 캐치하게 합니다. 서스펜스와 대조되는 잔잔한 벨소리 선택, 그 전화벨을 활용한 사운드와 음악의 타이밍에 딱딱 맞아떨어지는 배우들의 시선처리, 카메라 워크도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식탁에 올려진 7개의 시한폭탄은 각기 다른 참신한 형태로 터져나가고 그걸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억지가 없습니다. 영화관에서 소리 내는 걸 매우 안 좋아하는데요. 그럼에도 웃음소리를 참지 못한 코미디가 수차례 나왔습니다.

 

근데, 이렇게 차근차근 잘 만들어 놓고 왜 마지막에 똥을 싸냐구요.

 

 

 

 

 

 

# 5.

 

영화를 왜 볼까요. 특히 대중 오락영화를 왜 볼까요. 감독의 예술가 놀음 철학자 놀음에 장단 맞춰 주기 위해서가 아니잖아요. 관객이 인물들에 감정 이입하려고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는 걸' 즐기려고 보는 거죠.

 

열심히 감정 이입하고 서스펜스를 다 즐겨놨더니 아시발꿈 해버리면 어쩌자는 걸까요. 마라톤 1등으로 달리다 결승선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똥을 싸는 거랑 다를 바가 없습니다. 메시 빙의해 6명 제치고 키퍼까지 다 제친 다음 토레기마냥 골대 밖으로 걷어내는 짓과 다를 바 없습니다. 스테판 커리가 프리 찬스에서 골든 스테이츠의 골대에 3점 슛을 던지고, 떡밥 오지게 뿌리다 디아블로 이모탈을 내놓는 것만큼이나 처참합니다. <헤이트풀 8>에서 유혈이 낭자하는 총싸움 다 해놓고 알고 보니 이건 다 마더 퍼킹 장인의 꿈이었음. 실제로는 다들 악수하고 룰루랄라 오두막 떠났음. 하는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마냥 못 만든 영화면 화날 것도 없습니다. 올해 하반기에만 상류사회, 목격자, 명당, 협상, 창궐을 봤습니다. 어차피 똥 무더긴데 하나쯤 더 얹는다고 뭐 달라지겠나요. 근데 이 영화에 유독 열을 내는 건 아까워서 그렇습니다. 영화 1시간 40분까지는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그러지 말고 우리 재편집하거나 아니면 추가 촬영을 해서라도 결말만 좀 다시 내면 안될까요? 회수는 떡밥만 해야지 웃음까지 회수하면 어떡하나요... 완벽한 초반부와 완벽한 중반부를 지나 전혀 완벽하지 못한 결말로 마무리된 완벽할 뻔했던 영화. 수작과 명작 사이 어딘가에 자리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범작과 수작 사이 어딘가로 내려온 영화. 분명히 그럼에도 좋은 영화고 티켓값 하나도 안 아쉬운 영화긴 하지만 참 아까워요. 이재규 감독, <완벽한 타인>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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