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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원 히트 원더의 딜레마 _ 낙원의 밤, 박훈정 감독

그냥_ 2021. 4. 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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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감정이든 행위든 합리성이 부재하다 느끼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겉멋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겉멋이냐 간지냐를 구분짓는 건 사소한 디테일을 물고 늘어지는 식의 개연성 진단과는 무관합니다. 오히려 직관의 영역에 가깝죠.

 

 

 

 

 

 

 

 

'박훈정' 감독,

『낙원의 밤 :: Night in Paradise』입니다.

 

 

 

 

 

# 1.

 

엄태구 입니다. 역시 멋있어요. 감독 생각하면 당연히 범죄 누아르일 테고 당연하다는 듯 양복 입은 주인공의 멋있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시한부 설정의 이부 누나가 때마침 생일인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조카를 데리고 등장합니다. 어째 벌써부터 지루하네요. 다행히 전개는 초고속으로 이뤄집니다. 주인공은 역시나 조폭이구요. 도 회장이라는 경쟁자가 있다는군요. 사랑해 마지않는 누나와 조카가 석동출 당하고, 빡친 '태구'가 이렇게 간단한 거였나 싶을 정도로 쉽게 복수하고, 러시아로 런하기 전에 잠시 제주를 찍먹합니다. 굳이 이 배경 설정들을 하나하나 숙제하듯 그림으로 소화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잠시 들기도 했습니다만, 뭐. 세팅이니까요. 적당히 넘어가도 좋은 거겠죠.

 

 

 

 

 

 

# 2.

 

최대한 좋게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캐릭터들이 너무 후져요. 태구는 내 여자에겐 따뜻할 차가운 도시 조폭 이구요. 재연은 "나 곧 죽어." 만 무한 반복하는 극한의 겉멋충이죠. <달콤한 인생>의 백 사장 마냥 비열한 양아치여야 했을 양 사장은 대체 어떻게 조직을 키우는 데 성공한 건지 도무지 모를 상등신 찐따로 그려집니다. 당장 상대 조직 이인자 앞에 벌벌 떨 정도로 체급 차가 심하다면 쫄보 양아치 양 사장은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라도 애초에 개기질 않았어야 말이 되죠.

 

박 과장 역시 중재자라는 설정에 비해 지배력과 카리스마가 너무 부실합니다. 마 이사는 작품의 톤과 동떨어져 분리된 캐릭터인 데다 무수히 반복되는 '약속' 타령은 고유의 캐릭터성에 온전히 녹아들지 못한 채 행동을 규정하기 위한 단순 설정으로 전락하고 말죠. 연기톤도 영화를 하는 건지 콩트를 하는 건지 연극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애매한 가운데 삼시세끼 스타일의 어색한 개그까지 개입하며 캐릭터의 성격을 더욱 어지럽힙니다. <독전>에서 보여준 차승원의 호연을 생각할 때 이건 배우의 역량보다는 캐릭터 메이킹의 실패 쪽에 책임이 있어 보이는군요.

 

 

 

 

 

 

# 3.

 

캐릭터 기반이 단단하지 못하다 보니 할 수 있는 거라곤 시종일관 버럭! 버럭! 소리지르기뿐입니다. 상황이 긴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기로 긴장을 만드는 것이죠. 당장 <신세계>만 하더라도 최민식의 강 과장이나, 황정민의 정청은 영화 내내 거의 한 번도 소리 지르는 법이 없지만 개멋있었던 것과 완벽히 대조됩니다. 그래요. 배의 카리스마가 없다면 배가 자가발전을 돌리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었을 테죠.

 

<신세계>의 정청과 이중구의 면회 신을 촬영하며 황정민이 화만 바득바득 내는 박성웅에게 조언을 해줬다는 에피소드는 이젠 너무도 유명합니다. 어쩌면 감독의 영화에는 캐릭터들의 어색함을 알아서 정돈해 줄 극소수의 베테랑 배우들이 반드시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군요.

 

# 4.

 

이야기도 밋밋하고 단순합니다. 막말로 중반쯤 되면 영화가 어떻게 굴러가게 될지 훤히 알 수 있죠. 어떻게 될 거 같냐구요? 다 죽겠죠 뭐. 특히나 나이와 반말 얘기하며 "억울하면 먼저 죽든가"라 말하는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인 복선까지 더해지면 다 죽는 와중에 태구가 재연보다 먼저 죽을 거라는 것까지 명확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 5.

 

잠시 샛길로 빠져 <신세계> 줄거리를 기억나는 대로 요약해 볼까요.

 

⑴ 골드문의 석동출 회장이 사망합니다. ⑵ 경찰 강 과장이 정청에게 접촉해 후계자 경쟁을 돕겠다 제안합니다. ⑶ 정청은 일단 거절한 후 께름칙해하며 경찰청 자료를 해킹하고 연변 거지를 불러 모읍니다. ⑷ 이중구는 자기 나름대로 후계자가 되기 위해 이사들을 겁박 회유합니다. ⑸ 갑작스레 구속된 이중구는 자신의 구속과 석동출의 사망이 정청의 짓일 거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⑹ 강 과장이 정청을 다시 매수하려다 거절당합니다. ⑺ 해킹을 통해 바둑 선생 신우와 이자성의 심복 석무가 경찰이라는 것이 발각되어 정청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⑻ 자성이 강 과장을 만나 원망하는 와중에 장수기가 등장합니다. 장수기를 바지로 세운 후 자성이 골드문을 실질적으로 먹게 하려는 작전이죠. ⑼ 강 과장의 간계에 이중구의 칼춤이 벌어집니다. 그 유명한 '드루와'가 이때 나오죠. ⑽ 자성의 집에까지 중구의 부하들이 들이닥치지만 경찰이 지키고 있었고. 스트레스로 자성의 아내는 유산하고 맙니다. ⑾ 중상을 입은 정청이 마지막으로 자성을 만나 독하게 굴 것을 당부합니다. ⑿ 석방된 중구는 아지트에서 "죽기 딱 좋은 날씨네"라는 유언을 남긴 후 살해당하구요. ⒀ 장수기가 이자성을 해치우고 자신이 골드문을 집어삼키려 하지만 역관광 당합니다. ⒁ 결국 자성이 골드문을 집어삼키는 것으로 영화는 끝나게 되죠.

 

 

 

 

 

 

# 6.

 

이번 영화 <낙원의 밤>의 줄거리를 살펴보죠.

 

⑴ 태구의 가족이 죽고 태구는 조 회장에게 복수합니다. ⑵ 제주도에 내려가 재연 네를 만납니다. ⑶ 재연의 삼촌 쿠토가 죽임을 당합니다. ⑷ 박 과장이 마 이사와 양 사장을 중재합니다. ⑸ 그동안 태구와 재연이 스쿠터 타고 물회 나눠먹는 데이트를 합니다. ⑹ 공항에서 추격 액션 한번 나오구요. ⑺ 납치된 후배와 재연을 구하기 위해 창고로 돌아온 태구가 죽습니다. ⑻ 재연의 학살극이 벌어집니다. 끝이죠.

 

그나마 쪼개 둬서 여덟 단계처럼 보이는 거지 관객의 체감은 태구가 제주 내려가서 재연이랑 데이트하다가 어찌어찌 다 죽었다. 라는 한 줄로 깔끔히 정리될 겁니다. 믿기지 않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신세계>도 2시간 14분, 이 영화의 런타임도 2시간 12분입니다. 대충 봐도 이야기의 밀도 차이가 넘사벽이죠.

 

 

 

 

 

 

# 7.

 

상황 설정이나 인물 배치 및 동선 역시 하자가 다수 발견됩니다. 뻔히 러시아 갱이 총 들고 뒷각을 보러 오는데 "고마 잘 가입시다"라는 뻘소리를 하는 대목이라거나, 덜떨어진 러시아 갱이 은폐 엄폐도 없이 맞다이 총질을 하는 건 모두 디테일이 망가진 부실한 상황의 좋은 예라 할 법합니다. 총격전 이후 도주하는 와중에 재연이 통증에 바둥대다 왜 갑자기 태구의 손을 무는 건지 누구도 알 수 없구요. 빨리 주사 놓을 생각하지 않고 왜 손을 물리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습니다. 카메라는 왜 갑자기 조감으로 날아가며 숲을 찍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구요, 다음 컷에서 왜 또 재연은 새근새근 자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태구의 손은 수면제인 걸까요.

 

누가봐도 찝찝하기 그지없는 대열로 마 이사랑 양 사장이 약속 장소인 공항에 같이 내리는 걸 보며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거참 다행스럽게도 때마침 태구의 부하가 양 사장의 배신을 알려주는데요. 그럼에도 고개 숙이고 토끼는 것이 아니라 굳이 뒤 돌아봐 얼굴을 보여준 후 쫓아오게 만드는 것 역시 너무 비상식적인 괴랄한 행동들이죠.

 

# 8.

 

한 달에 사람 한둘 들릴까 말까 한 촌구석 버스터미널도 아니고 무려 제주 공항에서 난리를 피우는 데 경찰이 없는 것도 이해가 안 갑니다만, 그래요. 이 정도는 영화적 허용이라 치죠. 그치만 애초에 시끄러운 일이 안 생기게끔 몰래 처리하는 조건으로 박 과장이 중재한 것 아니였나요? 아무리 한산한 제주라지만 대낮에 차 붕붕 날아다니는 카체이싱은 뭔가요. 박 과장 인사평가고 나발이고 저 지랄 나면 범죄와의 전쟁 시즌2 바로 직행일 텐데? 야, 약속 좋아하는 마 이사야. 조용히 처리하겠다는 약속은 안 지켜도 괜찮은 거야???

 

카체이싱에서 태구의 차를 압박하던 차량이 뒤집히자 몇 초간 멀뚱멀뚱 구경하는 컷이 있습니다. 추격전을 좀 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시겠지만 대부분 해당 시퀀스에서는 앞에 차가 뒤집히자마자 과격하게 기어를 변속하며 앞으로 치고 나가야 할 타이밍이거든요.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연출이람? 싶었는데 아... 차를 세워둔 이유가 있었네요. 그 유명한 신세계 엘리베이터 씬, 드루와 v.2를 좁은 차 안에서 재탕하고 싶었던 거군요. 자기 복제 무엇?

 

 

 

 

 

 

# 9.

 

캐릭터는 밋밋하고 이야기도 빈곤하며 상황도 부실합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잘못 만들어서?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제 대답은 이 영화는 누아르가 아니기 때문에 입니다. 영화의 폭력 서사만 떼 놓고 보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한 데 그마저도 초반 10여분 마지막 20분에 몰려 있고 방식 역시 너무 편리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훨씬 악질인 온갖 악당들 죄다 칼 들고 다니는 데 여자애 혼자만 총이라는 치트키로 무장하고 다니는 건 이 영화가 범죄 누아르의 완성도에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케 하는 대목이죠. 누아르는 그저 아이템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제목도 <낙원의 밤>. 필연적 죽음을 앞둔 태구와 재연이 마지막으로 나눈 서정적 제주의 밤이 메인 장르입니다.

 

# 10.

 

누아르를 클리셰로 비벼버릴 정도로 희생했다면 서정성만큼은 정말 야들야들한 멜로 작가의 그것처럼 섬세하게 매만졌어야 합니다. 겉보기엔 범죄 액션물이지만 사실은 퀴어 로맨스에 방점을 뒀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좋은 예라 할 수 있겠죠.

 

두 주인공의 스쿠터 드라이브가 어지간한 냉혈한도 막 가슴을 저릿하게끔 눈물을 글썽이게끔 만들었어야 합니다. 세상에 홀로 남은 외로운 존재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짙은 고독감과 비장미를 육중하게 다듬었어야 합니다. 이도저도 아니면 최소한 김지운 식 간지 분위기라도 만들었어야 합니다만, 냉정히 이 부분을 위해 투자된 시나리오의 힘이 너무 빈약합니다. 영화의 서정성 대부분은 이야기의 완성도나 연출의 조력을 거의 받지 못한 채 배우 엄태구와 전여빈의 개인기 + 괜찮다 드립 같은 반복적인 파편적 대사 몇에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멜로 드라마라는 본래 장르가 실패하고 나니, 부실한 누아르라는 가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양새입니다. 결국 실제 동원된 클리셰의 양보다 더 많이 더 노골적으로 느껴지고 말았죠. 충분히 설득되지 않는 폭력성 역시 덩그러니 남아 쓸데없이 잔혹해 보이는 건 덤이구요.

 

 

 

 

 

 

# 11.

 

분노가 되었든 연민이 되었든 고독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감정 표현은 가득한데 그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섬세함이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이라는 생각입니다. 표현은 격정적인데 그걸 보는 동안의 심정은 되려 공허합니다. '허무함'이라는 감정을 잘 그려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냥 아무것도 없어 관객인 내 느낌이 허무하다는 것이죠.

 

<V.I.P.>에서와 같은 나이브한 느낌과는 또 다릅니다. 뭐랄까요... 서정성이 그다지 특별하지 못한 사람이 억지로 감수성을 만드려다 실패한 것 같은 느낌에 가깝습니다. 가슴에 손 올리며 "여기가 아프다..." 뭐 이런 거 말이죠. <은교>에서 김무열이 연기한 서지우가 멜로를 만들면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싶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요.

 

감독이 간~신히 만들어낸 서사 속 유의미한 정서표현인 물회와 식당이라는 공간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은 스쿠터나 이불털기와 같은 지루한 묘사로 일관합니다. 엔딩에서 이어폰 끼고 있는 주인공 주변을 빙글빙글 말아 넣는 카메라 워크와 마지막 머리에 총 대고 쏘는 장면은 책으로 학습한 듯한 반세기 전 홍콩 영화 갬성의 기시감을 노골적으로 불러 일으키죠.

 

 

 

 

 

 

# 12.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은 어쩌면 딜레마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세계>의 대성공 이후 새로운 장르를 도전하려고 <대호>를 만들었지만 혹평을 받았죠. 본래 잘하는 장르로 돌아와 유명 배우를 때려붓고 폭력성도 한껏 부풀려 <V.I.P.>를 만들었지만 각종 논란과 함께 폭망 했습니다. 비판의 내용은 대부분 너무 말초적이고 내용이 없다. 그래서 이번엔 그 '내용'이라는 것과 '감성'이라는 걸 채우기 위해 주특기가 아닌 <멜로 드라마>를 끼얹어 보았습니다만 결과는 이렇게 실망스럽고 말았군요. 다른 장르도 힘들고, 폭력성도 답이 아니고, 서정성도 특기가 아니다. 글쎄요. 어쩌면 좋을까요... 참, 어렵네요. '박훈정' 감독, <낙원의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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