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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ction

피로 쓴 스탠드업 코미디 _ 헌트, 크레이그 조벨 감독

그냥_ 2021. 2.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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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엄마가 해 줬던 이야기가 있어요. 토끼와 거북이가 나오죠. 토끼는... 재수탱이였어요. 늘 뻐기기만 했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빠르다면서요. 사실이긴 했어요. 달리기를 할 때마다 항상 이겼으니까요. 온 숲이 그 자랑을 듣고 또 들어야 했죠. 재수탱이는 뽐내기 위해 늘 경주를 하려고 했고, 거북이는 생각했어요. '내가 한번 해 볼까?' 토끼는 비웃었어요. '아이고, 재밌겠다 어디 해 보실까?'

 

거북이에게 먼지를 날리며 토끼는 출발했죠. 엄청 앞서간 거예요. 당연하죠, 토끼는 언제나 이기니까. 하지만 토끼는 막상막하의 경기로 재미를 더하고 싶었고, 멈춰서 낮잠을 잤어요. 하지만 계획보다 오래 잤고. 깨어났을 무렵엔 엿 됐다는 걸 알았죠. 전속력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늦었어요. 거북이가 결승선을 먼저 통과했고 관중은 미친 듯 열광했어요.

 

그날 밤, 거북이는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새끼 거북이들에게 말했죠.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계속 기어서 전진하면 다 이겨낼 수 있단다' 이때 현관문이 박살 나고 토끼가 나타났어요. 망치를 들고 거북이가 보는 앞에서 아내와 새끼들을 먼저 박살 냈죠. 그리고 거북이도 죽였어요. 온 가족을 박살 낸 뒤 토끼는 거북이의 저녁을 먹었어요. 마지막 한 입까지.

 

왜냐면, 토끼는 언제나 이기니까요.

 

 

 

 

 

 

 

 

크레이그 조벨 감독,

『헌트 :: The Hunt』입니다.

 

 

 

 

 

# 1.

 

골 때리는 영화입니다. 맘에 안 드는 놈들 싸그리 다 죽이는 이야기. 라는 한마디로 가볍게 요약할 수 있는 작품이거든요. 상식을 벗어나는 상황 속에 펼쳐지는 특유의 과격한 액션과, 사이사이 치고 빠지는 모두까기식 블랙 코미디가 주요 매력입니다만 정확히 그에 반비례하는 만큼 휘발성이 강하고 호불호가 갈리며 무자비하기도 하다는 점은 리스크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작품의 성격은 분명 B급 코드의 슬래셔 무비가 맞습니다. 도덕적 우위를 확보한 먼치킨 주인공이 죽어 마땅한 악당들, 보다 정확히는 갈려나간다 하더라도 관객이 전혀 불편해하지 않을 만큼 업보를 착실히 쌓은 악당들을 싸그리 도륙 내는 과정을 구경하는 작품이죠. 이 분야 끝판왕인 타란티노의 영화들로 적당히 빗대자면, <킬빌>의 키도 열화판 비스무리한 느낌의 주인공 한 스푼, <헤이트풀 8>의 옹기종기 모인 빌런 반 스푼, <장고>의 업보 스택 쌓기 반 스푼쯤 집어넣고, 특유의 문학적 유머와 시네필의 오마쥬 대신 블랙 코미디를 열 스푼쯤 집어넣은 후, 염세주의적 계급론자의 시니컬함을 쏟아부은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퀄리티의 차이는 차치하고서 말이죠.

 

 

 

 

 

 

# 2.

 

하지만 과격한 액션의 슬래셔 무비는 관객을 붙잡아 두기 위한 장르적 매력이라는 미끼 상품에 불과합니다. 진짜 장르는 굳이 말하자면 스탠드업 코미디 쪽에 훨씬 가깝죠.

 

영화 <헌트>의 가장 큰 특징은 평범한 영화들이 [이야기 속 은유]로 표현할 캐릭터 묘사들을 모조리 [대사 속 농담]으로 대체했다는 점입니다.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들이 장르와 아이템을 불문하고 대단히 수다스러운 건 (감독의 작가적 성향 외에도) 후반부 갈려나가게 될 빌런들의 업보를 시나리오에 녹여내기 위해 문학적 은유를 동원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볼륨이 있기 때문인데요. 크레이그 조벨 감독은 이 작업 일체를 대상이 한 마디씩 툭툭 내뱉는 아이러니와 농담으로 대체합니다.

 

자의 대상을 언어유희를 적절히 곁들인 농담으로 소화하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훨씬 직설적인 수단이라, 전달력이 뛰어나고 구성이 간결해 영화의 볼륨을 덜 차지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헤이트풀 8>의 경우 고작 8명의 빌런을 소개하는 데 런타임 절반인 80여분을 소비합니다만, 이 영화는 그보다 훨씬 많은 인물들의 훨씬 많은 비판적 설정들을 10분 안짝으로 가볍게 해치워내고 있죠. 그렇게 절약한 런타임을 더더욱 많은 농담에 투자함으로써 시간 대비 최대한 많은 인물들이 시원하게 갈려나갈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었고, 파괴적인 폭력 묘사에 더 많은 공을 들일 수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런타임을 90분에 깔끔하게 잘라낼 수 있었습니다.

 

 

 

 

 

 

 

 

 

# 3.

 

하지만 모든 일엔 장단이 있는 법이죠. 이 같은 방법론은 관객의 몰입을 필연적으로 희생합니다. 일수라도 찍듯이 "자, 얘 이렇게 말했어. 죽을 만 하지? 푹! 다음! 죽인다? 찍! 다음! 죽인다? 펑! 다음!!" 하면서 빠르게 빠르게 넘어가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과격한 액션에도 불구하고 장르물을 보는 감각 외에 데이브 샤펠과 같은 시니컬 한 코미디언의 듣고 흘리기 식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보는 것만 같은 감각이 함께 느껴지게 되는 건 그런 이유에서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 빌런이 몇 명 있었으며 각각 빌런들의 이름과 그들이 대변하는 부조리한 인간상을 모두 매치해보시라 말하면 쉽게 할 수 있는 관객 거의 없으실 거라 예상합니다. 주인공의 액션 시퀀스를 제외한 빌런의 이야기들은 모조리 휘발되고 그나마 주인공의 성격을 공들여 은유했던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스노볼> 정도만이 간신히 기억에 남으시겠죠.

 

 

 

 

 

 

# 4.

 

이 지점에서 역설적인 의문이 생깁니다. 왜 하필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만큼은 '은유'했을까. 답은 간단합니다. 다른 모든 설정은 날아간다 하더라도 날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그곳에 담아뒀기 때문에. 즉, 저 두 은유에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크리스탈이 엄마에게 전해 들은 우화를 이야기하자 돈은 질문합니다. "누가 토끼예요? 우리? 그놈들?". 감독은 해당 우화의 핵심이 누가 토끼이고, 누가 거북이 인가라는 질문에 달려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후 영화의 전개를 통해 사냥꾼과 사냥감 모두 보기에 따라 토끼이자 동시에 거북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죠. 크리스탈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의 명단에 부자들 외에 돈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게 의미심장합니다. 감독은 돈 많고 많이 배운 잘난 엘리트들이건, 쪽수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대중이건 모두 조심해라. 선 넘으면 상대 망치에 뚝배기 날아간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군요. 반면 왜 크리스탈이 스노볼인가 라는 질문은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대답만큼은 다소 두리뭉실하게 넘어갑니다. 이 메시지는 감독이 관객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둔 덤이라 할 수 있겠네요.

 

 

 

 

 

 

# 5.

 

영화가 시작한 후 폭력적인 슬래셔 무비라는 장르와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특성을 얼마나 빨리 캐치할 수 있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다행히 영화 시작부터 눈깔을 뽑아 드는 막장 연출 덕에 폭력성은 쉽게 유추할 수 있으니 결국 후자의 특성을 얼마나 빨리 캐치할 수 있느냐가 특히 중요하다 해야 하겠군요.

 

기본적으로 폭력적 묘사를 싫어하신다면 고민말고 피하셔야 합니다. 보통의 영화들처럼 내러티브를 타이트하게 쫓으려 든다면 역시나 망하겠죠. 캐릭터 하나하나에 담긴 비판점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풍자물로 이해하셔도 망할 거구요. 여주 옆에 앉아 적당히 나쁜 놈들 무리를 호쾌하게 갈아 넘기는 걸 구경한 후, <동물농장>이나 다시 한번 읽어보고싶다 정도의 감상만 얻어 나오신다면 썩 훌륭합니다. 크레이그 조벨 감독, <헌트>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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