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Animation

아이 착해 _ 클라우스, 세르지오 파블로스 감독

그냥_ 2020. 11. 14. 06:30
728x90

 

 

# 0.

 

매년 한두 편씩은 꼬박꼬박 나오는 겨울겨울 한 분위기의 편안편안하고 선량선량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철딱서니 없는 금수저 '제스퍼'의 개과천선이라는 개인 서사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신화적 서사를 적절히 엮어낸 순진무구한 동화죠. 안정적인 이야기와 편안한 전개,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릭터들과 선량한 주제의식. 네 축의 든든한 기반 위에 펼쳐지는 풍부한 영상 구성과 장엄하면서도 섬세한 음악을 즐기는. 전형적인 디즈니식 성공 모델을 차용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세르지오 파블로스' 감독,

『클라우스 :: La leyenda de Klaus』입니다.

 

 

 

 

 

# 1.

 

장난감 만드는 목수의 이름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 익숙합니다. 의심을 확신으로 키우는 풍성한 흰 수염의 배불뚝이 외모. 주인공이 드나드는 굴뚝과, 뒤에서 자꾸만 알짱거리는 순록, 썰매 따위의 코드들까지 더해지면, 영화 중반부 즈음해서 작품의 테마와 방향성을 누구나 손쉽게 유추할 수 있죠. 아~ 산타클로스구나!

 

네, 이 영화는 애초에 창의적이고 다이내믹한 전개를 즐기는 영화가 아닙니다. 말랑말랑한 시청각 표현과 세상 사랑스러운 꼬마 아이들의 웃음, 신화를 비트는 소소한 코미디로 최대한의 범용성을 확보한 후 감성에 젖게 만드는 선량한 메시지의 깊이로 승부를 보는 작품이죠.

 

 

 

 

 

 

# 2.

 

현실 묘사가 너무 미약하거나 과도하게 은유적이면 메시지가 충분히 힘을 받지 못해 지루한 도덕 교과서를 읽은 것과 같은 감상을 줄 수 있습니다. 너무 노골적으로 지적하고 질타하다 보면 갈등을 내면화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투쟁적 갈등이 폄하되고 있다는 인상을 줄테고, 인지부조화로 인해 선량한 메시지 그 자체를 부정당하게 될 겁니다. '화합'의 메시지를 다루고자 하는 창작자는 언제나 이 가운데서 줄타기를 강요받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큰 성취라는 생각입니다. 감독은 환상적인 거리 조절 능력으로 메시지를 오해 없이 전달하는 데 성공합니다.

 

 

 

 

 

 

# 3.

 

신비롭고 이상적인 동화를 가져다 그 안에 자연스럽게 현실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되, 영화를 즐길 그 누구도 특별히 불편하지 않게끔 적절한 수위에서의 변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갈등 그 자체는 강하게 부정할 지언정, 갈등의 당위에 대한 거론은 나열하기만 할 뿐 따로 논평하지 않습니다. 희망과 행복을 대변하는 신화적 대상의 이야기를 무자비하게 현실로 끌어내려 위화감이나 실망감을 유발하지도 않고, 비겁하게 논란의 도피처로서 가상의 존재를 복무시키지도 않습니다. 관객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내재된 '크럼'과 '엘링보' 가문을 발견하게끔 조력하지만, 선생님 '알바'나 사미족과 같이, 필요하다면 언제고 회피할 수 있을 정도의 심리적 여지를 열어두는 영리한 선택도 병행하고 있죠.

 

 

 

 

 

 

# 4. 

 

작품 속 가장 순수한 존재인 사미족 아이 '마르구'에서 두 가문의 장로에 이르기까지. 넓게 나열된 인물들의 도덕적 스펙트럼 속에서 나는 지금 어떤 인물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는 분명한 무게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스미어렌스버그에 얼마나 닿아 있는 걸까. 우리에겐 갈등을 독려할 리더보단 산타 클로스가. 호화스러운 재화보다는 양말 안에 든 나무 개구리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영화는 효과적으로 불러일으킵니다.

 

 

 

 

 

 

# 5.

 

스미어렌스버그의 누적된 증오심과 갈등은 이미 그 자체로 관습이자 문화이며 전통입니다. '크럼' 가문과, '엘링보' 가문은 갈등하고 있지만,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그래서 왜?"라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죠. 갈등이 평화를 무찌르기 위해 손을 맞잡는 장면은,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으로 치부하기엔 섬뜩할 정도로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대목입니다.

 

 

 

 

 

 

# 6.

 

"세상은 불타 없어져야 해!", "개혁이 필요해!!" 까지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갈등하는 사람들과의 갈등이라는 새로운 갈등은 더더욱 곤란합니다. 그저 "다 큰 나이에 태엽 장난감을 하나 선물 받고 싶다."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이들에게 목각 인형을 하나 선물해 볼까?"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런 사람이 한 명 두 명 늘어갈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만화 속 가상의 아이들이 짓는 행복한 표정만으로 다 큰 어른의 눈에 그렁그렁한 감동의 눈물을 자아낼 수 있다면 더없이 훌륭합니다.

 

 

 

 

 

 

# 7.

 

특별히 선량한 주인공이 특별한 선량함을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두려움과 이기심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작은 보람과 사소한 선의만으로도 얼마든지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라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참 좋은 메시지입니다. 베풂은 단순히 더 많이 가진 자의 아량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구원이 될 수 있으며, 그 구원이 새로운 선량함을 낳는 선순환이 될 수 있음을. 냉소적인 누군가는 유치한 것으로 회의적인 누군가는 순진한 것으로 비웃기도 하는 올바름의 가치를, 훈계가 아닌 웃음의 방식으로 전하는 멋진 영화입니다.

 

 

 

 

 

 

# 8.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구현하는 애니메이션으로서의 퀄리티는 매우 훌륭합니다만, 전반적으로 떡밥을 흘려도 너무 많이 흘리는 탓에 '서사가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긴 합니다. 아빠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갈 상황에 놓인 '제스퍼'를 두고 주변 인물들이 실망하고 질책하는 것보다는, 안갈꺼지? 라며 되묻는 쪽이 훨씬 자연스러울 테죠. 썰매 낚시극 이후, 적지 않은 런타임을 단순히 서사를 정리하는 데 쓰는 탓에 마지막 박력이 떨어지기도 하구요.

 

이야기를 즐기는 걸 중요시 하는 분이라면 어느 정도는 감안하셔야 겠습니다. 만, 솔직히 이런 작화, 이런 표현의 애니메이션을 본다면 이 정도의 말랑말랑함은 예상하셨을 겁니다. '세르지오 파블로스' 감독, 『클라우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