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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카드놀이와 드라이빙 _ 조용한 남자의 분노, 라울 아르바로 감독

그냥_ 2020. 7.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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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강도 사건으로 아내를 잃게 된 남자가 범인들을 찾아 복수하는 영화입니다. 건조한 제목만큼이나 담백한 영화죠. 다만,

 

 

 

 

 

 

 

 

'라울 아르바로' 감독,

『조용한 남자의 분노 :: Tarde para la ira』입니다.

 

 

 

 

 

# 1.

 

'조용'하기만 할 뿐 '남자'답지도 '분노'에 차 있지도 못합니다.

 

복수는 허술합니다. 묘사는 빈곤합니다. 감정은 희미합니다. 영화의 단점 대부분은 '쿠로'가 수감된 8년의 시간을 전혀 활용하지 못해 파생되는 문제들입니다. '척 노리스' 닮은 분노의 남자 '호세'가 8년 동안 카드놀이나 즐긴 등신이 되어버리는 순간, 영화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기정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 2.

 

쿠로가 출소할 때까지 죽치고 있다가

감옥을 나오면 범인들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겠다!!!!

 

... 라는 게 감독이 야심차게 준비한 호세의 계획입니다. 저기, 감독님... 그 8년 동안 '쿠로'가 공범이랑 연락하고 있을 거란 보장은 어디서 나오는 거에요? 사망자가 발생한 미결 중범죄 용의자들인데 외국으로 튀었으면 어쩌죠? 심지어 카드치는 8년 동안 자살한 범인도 있다면서요. 그럼 결국 걔한텐 복수 못한 게 되지 않나요?!

 

마지막 반전이랍시고 쿠로의 동생 '후안호' 역시 공범이었다!! 라는 카드를 꺼내는 순간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 반전이 얼마나 멍청한 반전이냐면 우리의 조용한 남자 호세는 '자기 아내 죽이고 아버지 식물인간으로 만든 범인 리스트조차 만들지 못했다'는 의미가 되거든요. cctv 영상까지 가지고 있었으면서요. 이 덜떨어진 남자에게 줄줄이 죽어나가게 되는 범인들은 대체 얼마나 한심한 인물들인 건가요.

 

 

 

 

 

 

# 3.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당연히 복수의 대상은 쿠로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죽이는 것 이상의 철저한 복수를 위해 아내와 처남에게 접근했다는 식으로 흘러가리라 예상하는 게 상식적이니까요.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과 친구들과 돈, 그 모든 것들을 빼앗아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현실의 지옥으로 밀어 넣겠다! 절규하며 저주의 말을 퍼붓는 쿠로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차가운 표정의 조용한 남자 호세!!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 식이라면 8년 동안 죽치고 앉아 카드놀이 즐기는 걸 주변 인물들을 정서적으로 포섭하는 과정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치 보다 처절한 복수를 위해 장경철을 풀었다 잡았다 반복하던 『악마를 보았다』처럼 말이죠.

 

 

 

 

 

 

# 4.

 

복수의 대상이 쿠로가 아닌 그의 공범들이 되어버리면서 초반 대부분의 분량을 잡아먹는 아나와의 정서적 교감은 모조리 붕 뜨게 됩니다. 애초에 목적이 쿠로를 협박하기 위함이었다면 굳이 꼬셔서 별장에 모셔다 둘 필요 없이 납치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고 경제적이라는 걸 관객이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아무런 서사적 대우를 받지 못한 탓에 남편 내버려 두고 외간 남자랑 잠자리를 가지고 잠적해버린 아나는 그냥 정신 나간 불륜녀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되어버리고 맙니다.

 

백번 양보해서 공범들을 잡아야 하니 쿠로를 이용한다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죠. 그렇다 하더라도 마지막에까지 굳이 쿠로를 살려두는 건 너무 억지스러운 것 아닐까요. 아무리 쿠로가 직접 가족을 해친 건 아니라지만 어쨌든 공범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텐데요. 직접 죽이지 않은 사람들은 용서해 준다라고 하기엔 훌리오를 죽인 시점에서 말이 안 되구요, 아나에 대한 연민이나 정이 있었다고 하기엔 후안호를 죽인 시점에서 말이 되지 않습니다.

 

 

 

 

 

 

# 5.

 

처참히 죽은 아내와 병원 신세를 면치 못하는 아버지를 둔 복수에 눈먼 남자가 '기여도에 따른 경중'을 쳐 따지고 있는 순간, 도살용 공기총을 들고 사람들 머리통에 바람구멍을 내는 안톤 쉬거 같은 무자비함을 뽐냈어야 할 호세는 마을 보안관으로 전락합니다. 이게 무슨 『조용한 남자의 분노』인가요. 『서부의 보안관』이지.

 

행위의 합리성은 감정이입의 근거가 되고, 감정이입이 되어야 감독의 의도대로 장르가 작동될 수 있다는 건 당연합니다. 서사의 치밀함은 스릴러로서의 완성도뿐 아니라 주인공이 상황을 얼마나 진지하고 치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증명하는 근거이기도 하죠. 주인공이 상황을 진지하게 대해야 관객 역시 상황을 존중할 수 있다는 건 상식입니다.

 

8년 동안 카드놀이 하다 마지막에 쿠로까지 방생하는 걸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대체 무슨 감정을 기대한 걸까요. 얼싸안는 쿠로와 아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호세를 통해 대체 어떤 효과를 기대한 걸까요.

 

 

 

 

 

 

# 6.

 

얼어붙고 말라붙은 내면을 추적한다기엔 주인공이 너무 서정적입니다. 풍부한 분노를 공유한다기엔 감정선은 모텔에서 우는 장면 외엔 전무합니다. 심지어 영화가 묘사하는 감수성의 상당 부분을 쿠로의 분노와 아나의 회한이 나눠 먹고 있기도 하죠. 가뜩이나 일관된 계획이 없는 영화가 중반 들어 버디무비로 급선회하는 순간 관객의 어처구니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맙니다. 호세와 쿠로가 같은 츄리닝을 맞춰 입고 드라이브를 다니는 걸 보며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건가라는 현타가 오고 말죠.

 

# 7.

 

백번 양보해 연출상이나 신인감독상 까지는 그렇다 치겠습니다. 이런 골 때리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다른 상도 아니고 <작품상>과 <각본상>을 탔다는 건 솔직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나름 네임드 시상식인 <고야상>의 판단에 한 차례 큰 실망을 하게 되는군요. '라울 아르바로' 감독, 『조용한 남자의 분노』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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