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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Art

에피타이저 탕수육 _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아녜스 바르다 / JR 감독

그냥_ 2019. 10.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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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사실 작년에 본 영화입니다. 독립극장의 예술영화관에서 봤었죠. 하지만 리뷰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꿀잠을 잣기 때문입니다.

 

나랑 안 맞는 영화였나 보다 하며 잊고 지냈는데요. 최근 넷플릭스에 이 영화가 걸렸더라구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 영화의 무엇이 20년 차 모범 불면증 환자인 저마저 숙면에 빠트리게 한 것일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쌩돈 들여 간 영화관에선 잠을 쳐 잔 영화를 스트리밍으로 다시 보고 말았습니다. 물론 2017` 칸 특별부문 초청작이라는 걸 알고선 마음이 조금 더 동하기도 했구요. 권위에 굴복한 것 맞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아녜스 바르다', 'JR' 감독,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 Visages, Villages』입니다.

 

 

 

 

 

# 1.

 

서른셋의 파릇파릇한 포토그래퍼와 여든 하고도 팔 년을 더 살아낸 영화감독입니다.

 

포토그래퍼는 키가 크고 남자고 젊고 육체적이며 과감합니다. 영화감독은 키가 작고 여자고 늙었고 정신적이며 신중하죠. 자기 철학이 확고한 대조적 색깔의 두 예술가가 50년의 시간을 넘어 삶 속에 숨은 예술이라는 교두보를 디딤돌 삼아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버디무비인 거죠.

 

 

 

 

 

 

# 2.

 

거대하고 담대한 예술적 가치를 찾아 떠나는 여정, 그런 거 아닙니다. 우연과 일상의 접점에서 자신의 삶을 '예술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얼굴들을 발견하러 다니는 소풍과 같습니다. 소박한 사람들의 삶에 특정한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건 두 감독이 펼쳐 놓은 드넓은 스팩트럼 덕입니다.

 

현대의 공간에 과거의 '아녜스 바르다'라는 누벨바그의 대가가 소환되어 그의 기준으로 평가하거나, 역으로 과거의 가치에 'JR'이라는 현대적인 존재가 부딪힘으로 인한 파열음을 다루는 영화가 아닙니다. 중립적인 공간에 통시적으로 존재했던, 존재하는, 그리고 존재할 무언가를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한다는 감각입니다. 군집한 사람들과 그들의 사진에서, 여러 가지 모습이 수집된 것이 아니라 단일한 존재의 다양한 면모가 한데 모여 찍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파블로 피카소'의 『우는 여인』을 훨씬 친절한 형태로 영상화한 것 같달까요. 다소 뜬금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영화에는 묘하게 입체주의의 냄새가 납니다.

 

그 느낌은 비단 '얼굴들' 뿐 아니라 '바르다'와 'JR'에게도 적용됩니다. 'JR'이 삶의 회한을, '바르다'가 생명의 화려함을 주목하면 주목할수록, 사람들을 만난 후 둘이 뒷모습으로 나란히 앉아 논평하는 구조가 반복되면 반복수록 두 인격의 경계는 모호해져 갑니다. 개성적인 예술가의 동행이었던 영화가 어느 순간엔 길게 늘어나 이어지는 다면적인 하나의 존재처럼 보인 달까요.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카메라를 타고 다니는 마녀와 광대가 세상과 분리된 관념의 의인화처럼 여겨지는 게 이채롭습니다.

 

 

 

 

 

 

# 3.

 

자신의 모습이 건물에 새겨지는 동안 사람들은 형언할 수 없는 미소를 짓습니다.

 

표정과 정서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공간에 거대하게 새겨지는 얼굴들은 삶의 흔적이자 그림자입니다. 말인즉, 벽에 걸린 사진은 사실 반쪽 짜리일 뿐이란 거죠. 중요한 건 벽에 걸린 사진을 배경으로 지금의 사람들이 서서 다시 찍는 사진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이면엔 은퇴하는 사람이 살아 있는 자녀들의 이면엔 세상을 떠난 부모가 비춰집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누구의 얼굴인 걸까요. 어떤 얼굴들인 걸까요. 얼굴이긴 할 걸까요. 얼굴이 중요하긴 한 걸까요.

 

'일상의 예술성'과 '예술의 일상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감독은 멋지게 잡아냅니다. 균형감이 뛰어난 화면과 색감이 인상적입니다. 장면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사진 작품 같다는 느낌입니다. 그만큼 화면의 밸런스가 안정적입니다. 여행하는 동안의 운동성과 포착하는 동안의 정적이 두 사람의 여정과 작품의 주제의식과 연출 방식 모두에 일관되게 적용됩니다. 이 특유의 리드미컬함 덕에 관객도 두 친구와 함께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공유하게 됩니다.

 

여러모로 근사하죠. 역시 유명 영화제에 초청될만합니다.

 

 

 

 

 

 

# 4.

 

멋있고 좋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좋을수록 멋있을수록 의문은 커져갑니다.

그런데 왜 지루한 걸까?

 

범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감독입니다. 정확히는 두 감독의 너무나도 강렬한 개성이죠. 두 예술가의 개성이 영화의 매력과 '얼굴들'의 존재감을 상당부분 잡아먹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아니라 『얼굴들을 사랑한 바르다』 같달까요.

 

일전에 모 방송에서 백선생이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산미가 있는 음식을 딱 먹고 나면 다른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달고 신 음식은 코스요리의 마지막에 놓아야 한다구요. 그래서 중화요리의 코스엔 탕수육이 마지막에 나온다고 말이죠. 그에 비유하자면, 이 영화는 마지막에 나와야 할 탕수육이 에피타이저로 나온 꼴입니다. 썬그라스를 사랑하는 스타일리시한 괴짜와 누벨바그의 대모가 집채만한 카메라를 타고 다니는 걸 보는 순간 '얼굴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삶이 지루해져 버립니다.

 

 

 

 

 

 

# 5.

 

물론 두 사람의 작업 그 자체의 의미는 살아 있습니다. 이 영화를 '두 예술가의 공동작업의 영상 기록물'이라 정의한다면 이 영화는 분명한 자기 가치를 가집니다. 하지만, 작업을 매개로 한 '영화'로서 효과적인가 라고 묻는다면 글쎄요.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군요.

 

좋은 작품이긴 합니다. 아니, 그 이상의 훌륭한 작품입니다. 여유가 되시면 언제든 보셔도 좋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영화를 본다기보다는 인상적인 예술가의 인터뷰 다큐멘터리이자 대중성이 물씬 가미된 미디어 아트를 본다는 감각으로 보시라 권하겠습니다. '아녜스 바르다', 'JR' 감독,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었습니다.

 

Rest in peace. Great director, artist, person

 "Agnès Varda" (1928 - 2019)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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