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좋은 서부극은 죽음과 동행한다.

# 1.
고전 서부극의 낭만은 풍요로운 시대의 낭만과 달라요. 현대 로맨스나 어드벤처의 낭만은 여유에서 나오지만, 서부극의 낭만은 결핍에서 비롯되요. 내일 살아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세상에서 총 한 자루와 말 한 필이 전부인 사람들은 자신을 신화로 포장해야 해요. The Searchers, Rio Bravo,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심지어 Unforgiven 같은 후기 서부극까지 죄다 허세를 부리고 있는 이유예요.
모두가 모두를 공격할 수 있는 야만과 무법의 시대이기에, 허세마저도 생존 무기로 끌어 써야 했달까요. 그래서 많은 서부극의 인물들은 실제 능력보다 평판으로 살아가요. 상대가 저 사람은 위험하다 믿으면 총을 뽑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겁쟁이라는 소문이 돌면 아무 이유 없이 표적이 되기도 하거든요.
때문에 서부극의 영웅들은 약간 우스꽝스럽기도 해요. 표현은 허세 덩어리인데, 그 허세는 늘 절박함에 근거하고 있어요. 아무리 거창한 현상금이 걸린 유명 총잡이라 한들 총알 한발 잘못 맞으면 죽는 건 어차피 똑같아요. 모두는 명백히 살기 위해, 얻기 위해 아등바등하지만, 태도는 기이할 정도로 여유롭고 낭만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 그 부조리는 다른 장르들이 쉬이 대신하기 힘든 서부극만의 매력이에요.
그래서 좋은 서부극은 죽음과 동행해요. 누구나 죽음은 두려워요. 하지만 너무 자주 마주하다 보면 무덤덤해지기도 하죠. 모두는 죽음을 농담하며 태연한 척 술을 마시지만, 총성이 울리면 즉시 긴장해요. 삶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예요. The Wild Bunch나 Pat Garrett and Billy the Kid 같은 작품 속 인물들은 좋은 예가 될 거예요.

# 2.
제임스 새무얼은 서부극의 '미학'을 가져오는 동안, 서부극의 '조건'은 망각하고 말았어요.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영화 속 스타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움직여요. 왜 저런 행동을 취하는지가 먼저 보이는 게 아니라, 멋있는 태도를 보여준 뒤 거기에 서사를 끼워 맞추는 느낌이에요. 생존 본능이 스타일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거죠.
심지어 죽음조차 스타일의 일부로 편입돼요. 죽음은 인물들의 실존적 조건이 아니라 멋진 장면을 만들기 위한 장치처럼 기능하고 있어요. 그래서 총격이 벌어지는 순간에도 긴장감보다 퍼포먼스가 먼저 눈에 들어와요. 당연하죠. 인물들이 자기 죽음을 가벼이 여기고 있는 데 관객인 내가 대신 긴장해 줄 이유가 없잖아요.
오해하지 않아야 해요. 스타일을 터부시 하는 게 아니에요. 서부극은 원래 끝내주게 멋있는 장르물이에요. 나의 어린 시절 영웅들은 늘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구요.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까지 거슬러 가지 않더라도 타란티노의 Django Unchained만 해도 엄청 스타일리시한 영화예요. 하지만 장고는 모두가 경멸하는 노예 출신 흑인이구요, 그는 캔디랜드에 들어가는 순간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닥터 슐츠 역시 까딱 실수하면 끝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장고와 슐츠의 스타일 아래에는 이 생존 압박이 단단하게 유지되어 있어요. 감독의 다른 영화인 The Hateful Eight나, 코엔 형제의 The Ballad of Buster Scruggs 모두 마찬가지죠.
더 하더 데이 폴의 세계에는 그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아요. 모두는 위험을 연설할 뿐 위험과 공명하지 않아요.

# 3.
때로 죽음조차 수단이 될 수는 있어요. 돈, 복수, 명예, 사랑, 영토, 자유 등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는 않아요. 인물들은 종종 무모해 보이지만 그 무모함조차 나름의 계산 위에 있어요. 관객은 그 판단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인물들이 자기 논리 안에서 진심이라는 건 이해해요.
본 작의 인물들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조차 일관되지 않아요. 가령 숙적 루푸스 벅이 출소한다는 걸 알게 된 냇 러브는 동료들을 떼어내고 혼자 복수를 떠나는데요. 자신의 사적 복수를 위해 친구들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겠다는 태도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연인 스테이지코치 메리가 혼자 레드우드를 염탐하러 가는 걸 용인하고, 예상대로 그녀는 인질로 전락해요. 영화가 원하는 건 둘 사이의 낭만적인 순간과, 여성이 혈혈단신 적진에 뛰어드는 그림이었으니까요.
결말에서 루푸스 벅은 죽음을 자처해요. 냇이 사실 루푸스의 친동생이었다는 반전인데요. 그러니까 '냇이 루푸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 '루푸스 역시 죽은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이야기'였다는 거죠. 문제는 그 욕망이 인물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갱단을 만들고, 감옥을 출소하고, 레드우드를 장악하고, 은행을 털고, 사람을 죽이고, 동생이 은행을 털게 만든 것까지 모두 두 아들이 악당이 된 미래를 아버지에게 돌려주기 위함이었다는 건데요. 그 과정과 목적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어요.
때문에 영화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설명하기보다, 마지막 반전을 성립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고 받아들여져요. 인물이 선택한 죽음이 아니라, 반전이 요구한 죽음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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