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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 (2011, dir. 글렌 피카라, 존 레쿼): 무력한 로맨스

그냥_ 2026. 5. 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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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인간은 그렇게 우스꽝스럽고 무력함에도 또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테니까요.

 

 

 

 

 

 

# 1.

 

로맨틱 코미디가 매력적인 건 사랑과 웃음 이면에 감독이 바라보는 인간상이 드러나기 때문이에요. 가령 우디 엘런의 영화들이 유독 그렇죠. 전형적인 스티븐 카렐스러운 이 로코에서 나는 무력감을 느꼈어요.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는 사랑의 승리로 귀결되기 마련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영화 역시 그렇게 읽고 있는 듯한데요. 나는 정반대로 읽어요. 사랑은 승리하는 대신 발생할 뿐이고, 인간은 그 발생을 통제하지 못하거든요.

 

인물들은 전부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듯 보여요. 칼은 변신하고, 제이콥은 기교를 부리고, 에밀리는 외도를 저질렀어요. 해나는 고백하고, 로비는 집착하고, 제시카는 사진을 찍죠. 모두는 욕망을 행위로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써요.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가'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해요. 영화는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반복적인 실패를 보여줘요.

 

보통 이런 영화는 중년 남성의 자기 회복을 꽤나 영웅적으로 찍잖아요. 새 옷을 입고, 자신감을 되찾고, 다시 매력적인 남자가 되는 식으로요. 그런데 이 영화는 계속 칼을 우스운 상태에 남겨둬요. 멋있어진 순간조차 완전히 멋있게 두지 않아요. 바에서 어색하게 굴고,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결국엔 잔디밭 위에서 몸싸움이나 벌이죠. 영화는 인간을 정돈된 존재로 복구하지 않는 거예요.

 

숱한 할리우드 로코에서 소울메이트는 일종의 운명론처럼 작동해요. 우주가 미리 예정해 둔 영혼의 단짝 같은 것이죠. 이 영화에서의 소울메이트는 객관적인 운명의 상대가 아니라, '내 의식이 그 사람을 그렇게 경험해 버린 것'에 가까워요. 그래서 사랑은 비합리적이에요. 논리적으로만 생각하면 다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어요. 칼은 굳이 자신을 상처 입힌 관계로 돌아갈 이유가 없어요. 해나는 제이콥보다 훨씬 안정적인 약혼자를 여전히 선택할 수 있어요. 제이콥은 계속 이전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죠.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인간은 자기감정의 합리적 관리자가 아니거든요.

 

 

 

 

 

 

# 2.

 

제이콥은 클리셰적인 플레이보이를 넘어 '욕망 통제의 환상' 그 자체에 가까워요. 그는 욕망을 알고 있다고 믿는 인물이에요.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시선과 타이밍이 필요한지 알아요. 사랑을 기술화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영화 초반 칼을 대하는 방식과 그 자신감에서 가감 없이 드러나죠.

 

그런데 해나를 만나며 그의 신화는 와르르 무너져요. (물론 엠마 스톤은 끝내주게 아름답지만) 중요한 건 그녀가 특별히 더 아름답거나 더 순수한 인물이어서가 아니에요. 그녀는 제이콥의 통제 밖에 있는 인물인데, 그보다 더 당황스러운 건 왜 하필 이 사람이냐는 걸 설명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제이콥은 욕망의 규칙을 모조리 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욕망은 설명할 수가 없어요. 외도를 저지른 에밀리를 잊지 못하는 칼처럼요. 그래서 뺨을 때리는 코미디가 재미있어요. 그는 칼의 무력감을 경멸하며 등장하지만, 결국 완전히 동일한 자리로 추락해요.

 

처음엔 칼과 제이콥을 극단적으로 분리해요. 한쪽은 낡고 무기력하고 버림받은 남성, 다른 한쪽은 세련되고 적극적이고 사랑받는 남성이죠. 영화는 둘을 거의 before/after처럼 배치하고 있어요. 관객은 자연스럽게 before의 칼이 after의 제이콥에 다가갈 거라 기대하죠. 하지만 웬걸 제이콥이 칼에 다가가요. 제이콥의 스타일링은 인간 조건 자체를 극복시켜 주진 못하기에, 둘은 같은 고백을 하고 같은 표정을 짓고 같은 방식으로 상처받아요.

 

비단 칼과 제이콥의 관계뿐 아니라 다른 세대에 위치한 다른 인물들 사이에서도 무수히 반복돼요. 칼과 로비, 제이콥과 제시카, 에밀리와 해나 모두 그렇죠. 모두는 멀리서 출발해 자기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만나요. 영화는 사랑의 다양한 형태보다 오히려 '인간이 반복적으로 같은 상태에 빠지는 방식'에 가까워요.

 

 

 

 

 

 

# 3.

 

그래서 영화의 깊은 곳엔 일정한 슬픔이 있어요. 쏟아지는 비처럼요. 일반적인 로코들처럼 '진짜 나 자신이 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식의 자기 계발 서사가 아니거든요. 오히려 진짜 나 자신이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것에 가깝죠. 그래서 엔딩은 완전한 해피엔딩이 아닌 거예요. 서로의 무력감을 인정한 사람들이 다시 한번 관계를 시도해 보는 것 정도에서 거리를 두고 있어요.

 

엔딩은 재결합의 가능성을 암시하지만, 그것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는 확신은 누구에게도 없어요. 그래도 사랑은 위대하다 같은 게 아니라, 인간은 또 저 상태로 오갈 것이다 같은 관조적인 스탠스죠. 물론 그 슬픔을 냉소로 이해하면 곤란해요. 인간은 그렇게 우스꽝스럽고 무력함에도 또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테니까요. 미쳤고, 어리석고, 그래서 사랑스러운 존재들이죠.

 

 

 

 

 

 

# 4.

 

그래서 영화의 제목은 재미있어요. 일반적인 로코식 독해에서는 “Love”가 중심 명사이고, Crazy와 Stupid는 그 사랑의 성질을 꾸며주는 형용사처럼 기능하죠. 즉, 사랑은 여전히 특별하고 초월적인 무언가인데, 인간이 그 앞에서 우스워질 뿐이라는 구조예요. 하지만 이 글의 관점에선 세 단어는 병렬 관계일 뿐이에요. Crazy. Stupid. Love. 전부 인간에게 발생하는 상태들인 거죠. 사랑은 특별한 진리라기보다 그냥 인간을 휩쓰는 여러 상태 중 하나일 뿐이고, 심지어 그중 가장 고귀한 위치에 있지도 않아요.

 

그래서 영화 속 사랑은 굉장히 자주 우스꽝스러운 형태로 발현돼요. 로비의 선언은 진지하지만 황당하고, 제시카의 욕망은 민망하며, 케이트의 진정성은 놀림당해요. 제이콥의 유혹은 지나치게 숙련되어 있어서 거의 코미디처럼 보이고, 칼의 서글픈 절망조차 우습죠. 절정의 고백도 그래요. 일반적 로코에서는 낭만적 선언처럼 연출되지만, 이 영화에선 다 큰 성인들이 거의 십 대처럼 감정을 토해내거든요.

 

이 톤이 스티브 카렐과 썩 잘 어울려요. 카렐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우스움이 동시에 보이는 얼굴을 가진 배우잖아요. 그는 비극적 상황에서도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상황에서도 이상하게 슬퍼요. 덕분에 칼은 전통적인 로코 남주처럼 사랑을 통해 진짜 자신을 회복하는 인물이 아니라 자기 통제력을 상실한 채 허우적거리는 인물이라는 인상이 잘 살아남아요. 나는 짐 캐리를 전적으로 사랑하지만, 역시 이런 영화에는 카렐이 더 잘 어울린다 생각해요.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Netflix, Tving, WatchaPlay, CoupangPlay, Appletv,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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