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목적 없는 스턴트를 이어가는 브랜드의 실루엣

# 1.
무엇보다 남편 토미가 너무 불쌍해요. 이 사람의 죽음엔 아무 이유가 없어요. 사샤가 그냥 싱글이었더라도 내러티브는 전혀 달라질 게 없거든요. 남편과의 사별을 거대한 트라우마로 삼아 그 내적 투쟁을 외부로 투사한 이야기라고 보기엔, 영화는 죄책감이나 위험 충동을 너무 성의 없이 다뤄요. 정말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레저 스포츠나 하고 다닐 게 아니라, 남편의 죽음을 현재 행동양식 속에서 계속 재연했어야죠. 자기 파괴적인 충동이 반복된다거나, 빌런의 존재가 그 상처를 집요하게 비틀어 자극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그런 게 거의 없어요.
죽은 남편은 결국 사샤에게 ‘비극적인 과거가 있는 사람’이라는 프로필 한 줄 추가해 주는 역할밖에 못 해요. 영화가 인물을 소비하는 방식을 단번에 드러내는 셈이죠. 그래도 에릭 바나는 샤를리즈 테론이랑 뽀뽀라도 하니까 다행이에요. 마지막에 희생된 일가족의 죽음엔 정말 아무 가치가 없거든요.
사샤의 서사와 벤이 타이트하게 연결되지 않으니까, 빌런의 과거도 그냥 사이코패스의 구색 맞추기처럼만 보여요. 감독 나름대로 유아퇴행적 오컬트 사이코를 열심히 묘사하려 함에도 아무 감흥이 없는 이유예요. 석궁에 벌벌 떨고, 이빨 뾰족한 걸로 소스라치게 놀라기엔 미안하지만 지금은 2026년인걸요.
그래서 빌런이 나타나면 역으로 지루한 이상한 영화가 만들어졌어요. 보통 이런 류의 액션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더 강한 서사 압력을 받기 마련인데요. 이야기의 존재감이 없다 보니 오히려 익스트림 시퀀스의 스펙터클이 빌런과의 서스펜스보다 더 도드라져요. 갈등을 기능적인 이벤트로만 굴리면 결국 이렇게 돼요.

# 2.
이야기를 위해 스턴트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턴트가 그 자체로 목적인 영화라는 건데요. 그럼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죠. 스턴트가 목적이면 안 되는 거냐구요. 아뇨, 괜찮아요. 구조가 액션을 단단히 떠받치고 있다면 말이죠.
데이비드 리치의 영화들은 꽤 괜찮은 예시예요. 액션 무비 버전의 바빌론 같다는 평을 들었던 스턴트맨도 썩 훌륭한 영화였구요, 존 윅은 훌륭하다는 말도 부족한 끝내주게 재미있는 영화였죠. 물론 데이비드 리치에게도 아토믹 블론드 같이 망한 영화가 있긴 한데, 그 영화도 하필 샤를리즈 테론이 주연이네요. 다들 샤를리즈 테론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
결국 익사이팅 스턴트와 그것을 수행하는 샤를리즈 테론의 '몸선'뿐이에요. 인물의 내면이나 갈등을 깊이 구축하기보다, 배우의 스타 이미지를 끌어다 '상황을 통과하는 신체'로서 소비하는 방식이죠. 장담하건대 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사샤가 아니라 샤를리즈 테론을 기억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걸요.
샤를리즈 테론은 캐릭터가 아니라 브랜드로서 기능하고 있고, 영화는 그녀가 무엇을 느끼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멋있게 위험을 돌파하는가에만 관심이 있어요. 심리보다 실루엣을 더 사랑한다는 뜻인데요. 그래서 영화의 감상은 어처구니없게도 고급 아웃도어 광고를 보는 느낌과 닮아있어요. 환경은 위험이 아니라 멋있음으로 소비되기에 죽음조차 아무런 질량감이 없고, 따라서 희생된 가족이나 남편의 죽음, 주인공의 고통, 벤의 최후까지 모두 손쉽게 증발되어 버려요.
끝내 주는 절경에서 클라이밍 하고, 급류 타고, 하이킹하는 걸 보는 그 말초적인 즐거움은 있어요. 그걸 해내는 샤를리즈 테론을 보는 재미도 있구요. 다만 그게 전부라는 거예요. 액션 영화가 아니라, 액션 클립을 느슨하게 이어 붙인 넷플릭스식 체험 상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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